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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 스틸컷 '씨X' '세상에' 혹은 '미친', '어떻게 이런 일이' 정도가 전체 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다. 그래서 크게 공감했다. 내가 살아가며 했던 혼잣말 중에 저 말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그 못지않다.
영화 <호프> 스틸컷'씨X' '세상에' 혹은 '미친', '어떻게 이런 일이' 정도가 전체 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다. 그래서 크게 공감했다. 내가 살아가며 했던 혼잣말 중에 저 말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그 못지않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지옥이란 어떤 곳일까?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바라는 모습은 있다. 모든 악인이 매 순간 자신이 저지른 일의 정확한 맥락과 의미와 결과를, 단 한 순간도 망각하지 못하고 끝없이 생생하게 되새겨야 하는 곳. 그런 지옥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 역시 그곳의 방 한 칸에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지만.

영화 <호프>를 봤다. '액션이 기가 막히지만, 서사가 약하다'는 지배적인 평을 염두에 두고 봤다. 과연 그랬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함께 들었다. 서사가, 즉 자초지종이 완벽해야 좋은 영화일까.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겪는 일의 자초지종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부부가 단둘이 겪고 그 일에 대해 평생 논쟁을 벌이는 경우에조차 서로 다른 인식과 해석을 안고 고집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살아가며 겪게 되는 온갖 사건들의 정확한 배경과 맥락, 혹은 진정한 의미에 대해 우리는 사실 거의 아는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살아가며, 또 어떤 것이든 결과와 의미들을 만들어낸다.

상황에 대한 무지 속에서 나름 뭔가 안다고 착각하고, 혹은 자신이 이미 아는 아주 부분적인 것들을 통해 해석하고 대응한답시고 버둥대지만 결국 아무것도 뜻대로 되는 것은 없이, 대략 어느 정도 지점까지 미끄러진 채로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늘 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일이든 그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완벽한 서사'야말로 판타지다. 혹은 어떻게든 일을 치러낸 뒤에야 각자 짜맞추는 나름의 해석들이고 상상적 타협들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영화 <호프> 스틸컷 감독의 전작 <곡성>의 대사 '뭣이 중헌디'가 이번에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로 변주된다. 맞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영화 <호프> 스틸컷감독의 전작 <곡성>의 대사 '뭣이 중헌디'가 이번에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로 변주된다. 맞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호프>에는 자초지종이 없다. 그저 충격적인 상황이 던져지고, 그 앞에 선 인간들의 개연성 있는, 그러나 극적인 행동들을 놀라운 카메라워크로 생생하게 담는다. 극 중 대사는 거의 '세상에'와 '씨X'이 전부지만, 그것이 외계인의 습격이라는 상상 밖의 상황에서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반응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공감됐기에 또한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나도 살아오며 뜻밖의 상황을 처음 만나는 순간마다, 입 밖으로든, 안으로든 가장 자주 했든 말이 아마도 '씨X'이었다. 예컨대 입대 후 첫 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게 뱉었던 '하 … 씨이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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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시골 마을에 총기가 그렇게 많고, 또 어지간한 사람들이 다 그렇게 그걸 잘 다루고. 또 산중에 멋진 말들과 그 말을 더 멋지게 타는 사냥꾼들은 뭐고. 개연성 자체도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 슬슬 들고 일어서려던 순간, 감독이 친절한 대사로 미리 입을 막는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감독의 전작 <곡성>의 '뭣이 중헌디'의 반복이기도 하겠다만. 자신의 상상을 벗어나는 상황 앞에 선 인간을, 기왕이면 재미있고 신나게, 몰입해서, 간접적이지만 직접적인 것처럼 경험 좀 하자는데 지금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잖나.

그래서 종반부 외계인들의 대화를 통해 나름의 배경과 세계관이 있음을 비치는 대목은, 내 생각엔 그나마 좀 친절하게 설명해 주려던 거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미끼가 아닐까 싶다. 관객 스스로 자초지종을 상상해 보든가 말든가. 혹은 뭣 좀 있는 척해놓고 사실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으려는 장치. 나는 이 영화의 속편이 아마 나오지 않으리라고 본다. 물론 알 수는 없지만, 나온다면 최소한 나는 실망할 것 같다.

한 반년 넘게,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아들이 입대한 지 사흘째다. 들어가는 사람 마음만 심란한 줄 알았더니, 들여보내는 마음이 이렇게까지 거시기한 줄은 몰랐다. 삼십 년쯤 전 그즈음 내 부모님은 어땠을까, 처음 상상해 봤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을 낳고, 키우던 모든 순간과 함께 마주한 모든 상황을 나는 '씨X' 하면서 어떻게든 버텨왔다. 다들 겪는 평범한 일들조차 내 앞에 닥치면 외계인 습격 못지않은 재난이 되고, 어떻게든 지나고 난 뒤 돌아보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뻔한 자초지종이 된다. 또 이 시간도 어떻게든 버텨지겠지.

기상관측 사상 최고 기온을 갈아치워 가는 이 뜨거운 날들 속에서, 아들아. 나와 너의 시간 중 어느 것이 더 길었을까. 아, 씨X.

#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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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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