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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시간이 맞으면 학원 마중을 간다. 이제 다 커서 길 잃을 염려는 없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귀가하고, 휴대전화도 있다. 그럼에도 가끔 아이를 데리러 나간다. 같이 걸으면 사춘기 딸과도 대화가 풀린다. 집에서 가만히 있을 때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아빠, 여기 여기!"

육교에서 웬 대학생이 손을 흔들었다. 자세히 보니 딸이었다. 분만실에서 탯줄을 자르고, 품에 안은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덧 키가 엄마를 따라잡을 기세다. 뒷모습만 보면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다. 느낌 상으로는 볼 때마다 조금씩 키가 크는 것 같다. 함께 사는 가족도 그렇게 느낄진대, 타인이 보면 그 속도가 엄청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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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때처럼 보폭을 맞춰줄 필요가 없었다. 문득 발밑을 보는데 최근에 구입한 딸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250밀리미터 사이즈로, 여성용 카테고리에서 구입한 제품이었다. 모든 지표가 딸이 성장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나 물통 찾았어. 이거 씻어줘."
"오랫동안 방치된 된 플라스틱 통은 못 써."
"힝, 학교 기념품이라서 엄청 좋아하는데."

3주 전에 잃어버렸던 투명 텀블러에는 여전히 물이 담겨있었다. 집으로 가던 중 계단을 올랐다. 태양을 피해 그늘진 곳으로 걸었다. 그런데 딸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맨날 이쪽으로만 가."

계단인데 이쪽이 어디 있고, 저쪽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딸은 우리가 원래 걷고 있던 그늘이 아닌 왼쪽으로 갔다. 날도 더운데 왜 이러는 걸까. 계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산책 중인 강아지도 없었다.

 딸이 키운다고 믿고 있는 계단 소나무와 잡초
딸이 키운다고 믿고 있는 계단 소나무와 잡초 ⓒ 이준수

"여기에 내가 키우는 아기 소나무가 있어."
"아기 소나무?"

나는 고개를 크게 좌우로 움직여 살폈다. 계단에 소나무 같은 건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그러나 딸의 움직임에는 확신이 있었다. 성큼성큼 걷다가 갑자기 쭈그려 앉았다.

"얘야. 나 학교 갈 때마다 얘한테 물 주고 갔어."
"어? 어! 진짜네."
"또 줘야지. 근데 옆에 잡초 자란다."

과연 계단 틈새로 작은 소나무 줄기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아이 새끼손가락보다도 얇고 작은 소나무였다. 아기 소나무라는 이름이 정확히 어울렸다. 그리고 그 소나무 옆에서 엇비슷하게 키를 맞추고 있는 이름 모를 잡초 한 포기. 사이좋은 친구처럼 보였다.

"이 물 줘도 되겠지?"
"뭐, 상관없지 않을까? 안 주면 오히려 죽을 것 같은 날씨인데?"
"주는 김에 잡초도 줘야지."

딸은 물통 뚜껑을 열었다. 삼겹살 굽는 돌 불판처럼 달궈진 계단 틈으로 물을 부었다. 쉬이익 김 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네가 키운 거야?"
"작년부터 키웠어."
"뭐, 작년?"

딸의 증언에 따르면 4학년 때부터 소나무 싹이 있었다고 했다. 가만히 두면 죽을 것 같아서 보일 때마다 물을 줬다고 했다. 나도 허리를 굽혀 '아기 소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줄기 부분이 갈색으로 변해 단단했다. 딸은 자기가 아기 소나무를 키우고 있다고 진지하게 믿었다.

아마도 작고 여린 존재를 성장 시키는 것에 크나큰 보람을 느끼는 듯했다. 딸이 소나무 줄기처럼 단단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소나무 옆 잡초처럼 이따금 학원 마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아기 소나무' 같은 사연도 들을 수 있을 테니.

#딸#소나무#돌봄#관계#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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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글쓰기와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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