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히스토리텔러'입니다. 국내와 해외의 주요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조만간 KBS에서 새로운 대하사극을 선보인다. 제목은 <대왕 문무>. 문자 그대로 통일신라 시대의 군왕이었던 문무(김법민)를 집중적으로 조명할 예정이다. 문무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삼국을 실질적으로 통일한 군주이자, 외세인 당나라를 몰아내고 자주성을 지켜낸 왕으로 평가 받는다.
삼국통일과 나당전쟁의 주역
문무는 왕세자 시절부터 남다른 활약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태종 무열왕(김춘추)의 아들이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외교와 군사를 열심히 학습했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압박을 동시에 받으며 생존 자체를 위협 받는 상태였다. 문무는 김유신,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함께 용감하게 전장에 나가 맹활약을 펼쳤다. 그 결과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 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
문무의 진면목은 지금부터 발휘된다. 고구려와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까지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를 통해 한반도를 직접 지배하려 했다. 실제로 옛 백제 지역에 웅진도독부, 옛 고구려 지역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문무의 신라는 물러서지 않고 당나라와 치열한 일전을 치르게 된다.
'나당 전쟁'은 670년부터 약 6년 간 전개됐다. 이때 문무는 뛰어난 외교와 신속한 군사력 동원, 김유신 등 훌륭한 장수들과의 유기적 협력 등을 통해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신라군은 매소성, 기벌포 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며 당나라군을 한반도에서 패퇴 시키는 데 성공했다.
문무는 전쟁 영웅으로서만이 아닌 '정치가'로서도 두드러졌다. 그는 통일 이후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배척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포용했다. 중앙 집권을 강화함과 동시에 지방 통치를 정비했다. 귀족 세력 간 절묘한 균형을 잡기도 했다. 문무의 훌륭한 정치력과 신료 및 백성들의 일치단결에 힘입어, 전쟁으로 황폐해졌던 신라는 빠르게 재건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대왕의 호국 정신

▲경북 경주 문무대왕릉. ⓒ 권우성
개인적으로 문무왕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호국 정신'이다. 이는 살아 생전에 충분히 발휘됐지만, 말년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었다. 문무는 죽기 직전에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 나를 동해에 장례를 치러 달라."
이에 따라 다른 왕들처럼 거대한 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동해의 한 바위섬에 화장된 유골이 안치됐다. 이곳이 오늘날의 '문무대왕릉'이다. 먼 발치에서 보면 작은 암초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문무의 아들인 신문왕은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감은사지에 절을 세웠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절 아래 수로를 통해 드나들며 나라를 지켰다고 한다. 비록 설화적 요소가 강하지만, 문무왕이 후대에 얼마나 호국 군주로 기억됐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문무도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외세의 힘을 빌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 시켰다는 점, 그리고 삼국 통일이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대동강 이남 지역으로 한정됐다는 점이 대표적 비판 지점이다. 이것은 뼈아픈 사실이기에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문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까지 비판할 수는 없다. 그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한민족의 역사가 지켜지고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다. 이는 대하사극으로 문무를 조명하기에 합당한 이유가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최경식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