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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일 서울 대학로 거리에서 <극장은 달린다!> 출연진이 장구와 북, 징을 연주하며 '제철연극'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8월 1일 서울 대학로 거리에서 <극장은 달린다!> 출연진이 장구와 북, 징을 연주하며 '제철연극'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 sfac

연일 체감온도 40도를 육박하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외출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오후 5시의 뜨거운 햇볕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던 지난 1일 토요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복판에 북과 장구 소리가 울려 퍼져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꽃무늬 셔츠를 맞춰 입은 여러 배우들이 악기를 들고 거리로 나오자 오가던 사람들의 걸음이 하나둘 느려졌다. 공연을 보러 서둘러 가던 사람도, 주변 상점을 둘러보던 사람도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공연이 시작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꺼냈고, 누군가는 장단을 따라 대학로센터의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현장에서 만난 한 60대 어르신은 예정에 없던 공연을 만난 덕분에 평소보다 천천히 대학로를 둘러보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거리의 소음에 묻혀 있던 공간이 잠시 무대가 되자 배우들을 에워싼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원형의 객석을 만들었다.

이날은 서울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대-락(樂)로'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날이었다. 오후 5시에는 개막을 앞둔 작품을 먼저 만나는 '제철연극'이, 밤 10시에는 공연이 끝난 뒤의 여운을 음악과 이야기로 이어가는 '애프터시어터'가 관객을 새롭게 맞았다.

거리로 달려 나온 극장, 공연 전의 시간을 열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1층에서 북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극장은 달린다!> 출연 배우가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1층에서 북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극장은 달린다!> 출연 배우가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다. ⓒ sfac

'제철연극'의 첫 작품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기획한 8.15 광복 특별기획 창작 초연작 <극장은 달린다!>였다. 작품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오늘의 서울까지 이어진 고려극장 90여 년의 역사와 고려인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다. 강제이주와 상실 속에서도 예술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여정을 음악과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으로, 오세혁 작가와 변영진 연출이 함께 만들었다.

출연진으로 나선 배우들은 장구와 북, 징, 트럼펫, 아코디언을 들고 거리에서부터 공연을 시작했다. 힘차게 북을 두드리는 배우 앞으로 다른 배우가 뛰어들었고, 악기 소리와 몸짓이 서로를 밀고 당겼다. 우연히 대학로를 지나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장면을 지켜봤다.

 대학로센터의 열린 공간을 둘러싼 시민들이 <극장은 달린다!> 쇼케이스를 관람하고 있다.
대학로센터의 열린 공간을 둘러싼 시민들이 <극장은 달린다!> 쇼케이스를 관람하고 있다. ⓒ sfac

대학로센터 1층의 마당으로 들어서자 배우와 관객 사이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높은 무대도, 줄을 맞춘 객석도 없었다. 관객들은 계단과 출입구, 복도와 카페 주변에 서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북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배우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장구채가 빠르게 오가고 징 소리가 공간을 가르는 동안 배우들의 땀과 거친 숨소리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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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셔츠를 입고 악기를 멘 배우들이 대학로를 달리는 모습은 단순한 사전 홍보 행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도 공연을 멈추지 않았던 고려극장 예인들의 생명력과, 사라지지 않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했던 사람들의 시간이 배우들의 몸을 통해 현재의 대학로로 건너오는 듯했다.

과일과 채소가 가장 맛있는 시기를 제철이라 부르듯, '제철연극'은 개막을 앞둔 작품이 관객을 만나기 가장 좋은 순간을 먼저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극장은 달린다!>의 출연진은 극장 안에서 관객을 기다리지 않았다. 거리로 나와 시민을 만나고, 시민을 다시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이끌었다.

 장구와 아코디언 등 다양한 악기를 든 <극장은 달린다!> 출연진이 현장을 찾은 120명의 관객들에게 곧 이어질 공연을 보여주고 있다.
장구와 아코디언 등 다양한 악기를 든 <극장은 달린다!> 출연진이 현장을 찾은 120명의 관객들에게 곧 이어질 공연을 보여주고 있다. ⓒ sfac

'대-락로'는 공연 한 편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존의 대학로 관람 방식을 바꾸려는 문화 캠페인이다. 오후 5시 '제철연극'에서 개막 전 작품을 먼저 만나고, 저녁에는 관객이 직접 선택한 대학로 공연을 관람한 뒤, 밤 10시 '애프터시어터'에서 공연의 여운을 이어간다. 공연 관람 2시간을 전후의 문화 경험과 연결해 약 6시간 동안 대학로에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커튼콜 뒤에도 계속된 대학로의 뜨거운 밤

 붉고 푸른 조명 아래 전자음악을 들려주는 키라라가 애프터시어터의 첫 번째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붉고 푸른 조명 아래 전자음악을 들려주는 키라라가 애프터시어터의 첫 번째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 sfac

밤 10시, 서울연극센터에 들어서자 오후와는 전혀 다른 대학로의 풍경이 펼쳐졌다. 파란 조명이 천장과 관객들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고, 붉은빛과 연기가 공간 안쪽에서 번졌다. 객석은 따로 없었다. 관객들은 무대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서 있었고, 연극을 보고 온 관객과 전자음악을 들으러 온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첫 번째 '애프터시어터'의 무대에는 전자음악가 '키라라'가 단상에 올랐다. 강한 비트가 쏟아지자 앞쪽에서 손이 하나둘 올라갔고, 뒤편에서는 휴대전화 카메라가 켜졌다. 키라라가 한 손을 높이 들자 수십 개의 손이 동시에 공중으로 뻗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관람했다고 밝힌 한 관객은 저녁에 연극을 보고 나왔을 때는 하루 일정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밤 10시에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또 다른 공연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객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관객들이 서로 마주 보고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경험이 낯설면서도 신선했다고 했다.

오후까지 공간을 채우던 북소리는 밤이 되자 전자음악의 비트로 대학로의 공간 분위기를 강하게 뒤바꿨다. 관객은 음악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손을 흔들고 몸을 움직이며 공연의 일부가 됐다. 유리창 밖에서는 지나던 시민들이 안쪽을 들여다봤고, 일부는 입구에 멈춰 공연을 지켜봤다. 문화공간 안에서 시작된 에너지가 다시 거리로 흘러나오는 모습이었다.

 키라라의 전자음악에 맞춰 손을 들고 몸을 움직이는 관객들. 커튼콜이 끝난 뒤에도 서울연극센터가 위치한 대학로의 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키라라의 전자음악에 맞춰 손을 들고 몸을 움직이는 관객들. 커튼콜이 끝난 뒤에도 서울연극센터가 위치한 대학로의 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 sfac

이날은 키라라의 전자음악으로 문을 열었지만 '애프터시어터'는 단순한 심야 파티가 아니다. 제철 먹거리를 곁에 두고 방금 본 공연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연극과 음악, 영화와 토크를 매개로 공연의 여운을 다른 관객과 나누는 밤의 살롱이라면 맞을까.

오후의 '제철연극'이 아직 개막하지 않은 작품을 관객에게 먼저 소개했다면, 밤의 '애프터시어터'는 공연이 끝난 뒤 흩어지던 관객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공연은 2시간, 대학로 경험은 6시간"이라는 문장은 이날 단순한 홍보 문구에 머물지 않았다. 오후 5시에 시작된 장단은 저녁의 공연 관람을 지나 밤 10시 전자음악의 비트로 이어졌다.

8월의 첫 토요일, 대학로에서는 극장이 거리로 달려 나왔고 관객들은 밤늦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공연의 시작과 끝 사이의 시간이 대학로의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었다. 이 행사는 연말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대학로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출구 앞에 위치한 서울연극센터 1층을 가득 채운 200여 명의 관객들이 키라라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출구 앞에 위치한 서울연극센터 1층을 가득 채운 200여 명의 관객들이 키라라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 sfac

#대학로#대락로#제철연극#애프터시어터#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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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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