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반구대 암각화
- 이명윤
저 호수에 낚싯바늘을 던지면
시간의 파문이 일고
와와, 수천 년 전의 함성과 북방긴수염고래와
작살을 든 사내들이 줄줄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를 것 같다
망원경으로 보세요
배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바람은
암벽 속에 꼬리를 감추었지만
고래의 피 묻은 손이 철철
검은 아이를 받아내고
동굴 속 긴 울음을 먹여 살린
우리는 위대한 사냥꾼의 후예들,
일행 중 누군가 가늘게 탄식했다
오늘은 물에 잠겨 고래가 가져간
손목을 볼 수가 없군요
지금도 공중을 유영하는 치명적인 햇살
혹은 화살에 대하여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린 모두 먼 길을 돌아 여기에 왔음을 안다
암벽 속의 사내가 웃고 있었다
이곳에 오실 땐 고단한 사냥 도구는 잠시
내려놓고 오실 것
가깝고도 먼 나라를 순례하듯이
피고 지는 들국화의 걸음으로 다녀가실 것
우리는 거대한 암벽 속의 무늬들,
사냥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니까
출처_시집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걷는사람, 2024
시인_이명윤: 2007년 <시안>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화기 속의 여자>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가 있다.

▲멸종한 울음의 무늬 속에서 사냥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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