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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안전 안내 문자가 자주 온다. 특히 무더위 속 야외 활동 자제, 충분한 물·그늘 휴식, 가족 안부 확인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연일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어 한 낮의 밭일은 절대 금지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무렵인 한 달 전, 낮에 혼자 밭에 나가면 안 된다고 친정아버지께 수차례 말씀드렸는데도 집에 안 계셨다. 확인해 보면 밭에 나가 계시는 일이 반복되어 결국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이후 아버지와 나는 뜨거운 폭염만큼이나 냉랭한 냉기가 흐르는 사이가 되었다.

한 달 동안 우리 사이에는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꼭 필요한 대화만 사무적으로 오갈 뿐, 친정엄마는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또다시 휴대전화가 울리며 폭염 안전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서로 언성을 높인 그날 이후부터 한 낮에 밭에 나가지는 않지만, 방문을 닫아걸고 방안에만 계실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대로 계속 서먹하게 지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의 고마움 느끼는 공간

도계나무나라(소리체험) 나무(목재), 금속, 돌의 소리를 직접 청각으로 들어보는 체험공간
도계나무나라(소리체험)나무(목재), 금속, 돌의 소리를 직접 청각으로 들어보는 체험공간 ⓒ 김희

"아버지, 내일(7월 31일) 한 번 더 가서 드시고 싶다던 막국수 맛집 가실래요?"
"뭘…. 돈만 쓰지…."
"가서 맛있는 거도 먹고 바람도 쐬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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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한 달간의 냉전을 끝내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날씨가 무더워 시원하게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정으로 내가 선택한 곳은 강원도 삼척에 있는 '도계 유리나라와 나무나라"였다. 도계 유리나라는 과거 탄광 지역이던 도계에서 석탄 폐석을 활용해 유리 생산에 성공한 역사를 바탕으로 재생과 예술을 결합해 체험형 공간으로 만들었고, 그 옆에 자리 잡은 나무나라는 강원도의 풍부한 산림 자원인 나무의 고마움과 가치를 오감으로 느끼고 배우는 힐링 공간으로 기획되어 있다고 했다.

폭염을 피해 들어선 '도계 유리나라'의 실내는 바깥의 뙤약볕이 무색할 만큼 시원하고 쾌적했다. 입장해 바로 마주한 화려한 유리 조형물을 보며 냉기가 흐르던 아버지와 나는 동시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1층 유리갤러리에 들어서자, 국내외 작가들이 정교하게 빚어낸 유리 예술품들이 조명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평소 감정 표현을 잘 안 하시는 아버지도 유리 작품을 보며 "삼척을 여러 번 왔는데 이런 데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하시며 유심히 들여다보셨다.

도계나무나라(피노키오전) 세계 각국, 다른모습의 피노키오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도계나무나라(피노키오전)세계 각국, 다른모습의 피노키오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 김희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구부정한 걸음으로 작품을 들여다보셨다. 하루 종일 집에 있기 답답해 소일거리로 잠깐씩 밭에 나가 둘러보는 것이 중요한 낙인데, 폭염에 밭에 나가면 안 된다고 언성을 높여 화를 내는 딸의 속내를 모를 리 없으면서도 딸에게 들은 큰소리에 서운하고 섭섭하셨던 모양이다. 옆에 있는 내가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처음 와서 좋다는 투박한 혼잣말은 아버지도 그동안 머쓱했던 감정을 내려놓고 있다는 화해의 표현이었다.

자리를 옮긴 2층 유리 역사관에는 유리와 관련된 과거와 현재 역사를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이어 사방이 전부 거울로 둘러싸인 거울방에서의 이색적인 경험과 커다랗고 동그란 도넛을 향하는 900여 개 유리로 만든 개미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은 '개미' 작품을 함께 감상했다. 출발할 때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바로 옆 건물인 '도계 나무나라'로 장소를 옮겼다.

알고 보니 이 두 곳은 폐광 지역의 경제 자립을 위해 2018년 동시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투명하고 영롱한 유리 세상에서 피톤치드 향 그득한 나무 세상으로 들어서기 전 가장 눈에 먼저 띈 것은 나무나라 건물 위에 걸터앉아 있는 '피노키오'였다. 피노키오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선 내부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나무를 좀 더 재밌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2층에 있는 세계 각국의 피노키오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피노키오 展'이었다. 나무라는 딱딱한 소재를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각국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유명한 목수 제페토의 나무 인형 피노키오를 모아둔 공간이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나라별 문화와 특색을 살려 저마다 다른 옷과 다른 표정을 지은 피노키오가 가득했다.

"아버지, 여기 보세요. 인도네시아 피노키오래요"
"그러게 말이다. 여기는 아프리카 피노키오도 있구나."

서먹했던 한 달간 냉전이 무색하게 우리는 피노키오 인형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유리나라와 나무나라를 둘러본 뒤 아버지가 한 번 더 오고 싶어 했던 막국수 맛집으로 향했다. 이미 대기 줄이 길었지만, 번호표를 받고 기다린 끝에 시원한 막국수에 갓 삶은 수육 한 접시를 주문했다. 아버지는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먹지 않아도 배부른 듯 마음이 푸근해졌다.

막 내린 냉전

도계유리나라(작품) 2층에 전시된 작품명 '개미' 유리로 만든 개미들이 도넛을 향해 가는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듯 보였다.
도계유리나라(작품)2층에 전시된 작품명 '개미' 유리로 만든 개미들이 도넛을 향해 가는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듯 보였다. ⓒ 김희

아버지와 나, 우리 둘 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한 달간의 냉전이었지만, 아버지의 일상에 다른 외출 거의 없이 밭에 나가는 것이 낙 이라는걸 알고 있는 딸과 폭염에 밭에 나갔다가 혹여라도 안전사고가 날까 봐 걱정되어 언성을 높인 걸 알고 있는 아버지…. 우리는 그렇게 한나절 외출과 맛집 투어로 한 달간의 냉전을 막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웃, 가족 안부확인'을 당부하는 무더위 안전 안내 문자가 또다시 도착했다. 땡볕에 밭에 나가는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언성을 높였고 한 달의 냉전이 있었지만, 오늘은 폭염으로부터 아버지의 몸과 마음을 다 안전하게 지켰다.

한동안 지금의 더위는 계속될 것이고 여전히 가족 안전 확인 문자가 날아오겠지만, 이제는 냉전 없이 아버지를 지키기로 했다.

"아버지, 지금 제일 더운 시간이니 에어컨 켜고 계시다, 해지고 저녁에 밭에 같이 가요."
"그래, 이제 낮에는 안 나간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지독한 이 더위가 얼른 끝나서 아버지가 안전사고 걱정 없이 일과 중 가장 중요한 낙인 밭에 나가는 일을 마음껏 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생각지도 못한곳에서 만난 피노키오 도계나무나라 건물 외관엔 피노키오가 오는 이들을 맞아준다.
생각지도 못한곳에서 만난 피노키오도계나무나라 건물 외관엔 피노키오가 오는 이들을 맞아준다. ⓒ 김희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도계유리나라#도계나무나라#유리작품#피노키오#나무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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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noheene) 내방

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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