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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에 전남 고흥에 깃들었습니다. 마을 빈집과 빈터를 장만했고, 마을 앞 옛배움터(폐교)를 빌렸습니다. 국어사전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언제나 책살림을 잔뜩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저희 책살림은 옛배움터(폐교)쯤 되어야 비로소 건사할 수 있습니다.

전남 고흥으로 오기 앞서 인천 배다리에서부터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었습니다. 5톤 짐차 다섯 대에 실었던 책짐은 2026년에 이르러 5톤 짐차 20대에 이를 만큼 늘었습니다.

이제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모두 서울로 떠나 이곳도 옛배움터(폐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푸름이가 자취를 감춘 두멧마을에서 두 아이를 돌보고 살림한다면, 여러 젊은 이웃도 어린이와 푸름이를 데리고 돌아올 푸른터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우리가 어린이와 푸름이에게 물려줄 가장 큰 살림은 '온몸으로 뛰고 놀고 달리며, 온마음으로 익히는 숲과 들과 바다'라고 믿습니다.

옛배움터가 숲배움터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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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옛배움터를 빌려 쓴 지도 열여섯 해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고흥교육지원청과 전남교육청은 으레 '오래된 건물이니 철거해야 한다'는 말만 이어옵니다. 지난 열여섯 해 동안 고흥군과 전라남도에서는 문을 닫은 배움터가 참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닫을 수밖에 없는 배움터가 수두룩합니다.

커다란 토목사업이나 공공기관이 전라남도에 들어오더라도 정작 고장에만 이바지할 뿐, 논밭과 들숲바다를 품은 시골과는 멀기만 합니다. 더욱이 토목사업은 들과 숲과 바다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입니다.

전남과 광주가 어깨동무하는 올해, 이제라도 '폐교활용 전담부서'를 처음으로 열 만하지 않을까요? 이미 어린이와 푸름이, 젊은이가 모두 떠난 시골마을에서 옛배움터마저 허물어 땅만 내다판다면, 그나마 시골에 자리 잡아 푸른살림을 짓고 싶은 서울이웃을 가로막는 담벼락이 되지 않을까요?

서울에는 학원이 넘쳐나지만, 시골에는 읍내에만 학원이 조금 있습니다. 시골에는 학원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굳이 학원이 없어도 됩니다. 들과 숲과 바다, 해와 바람과 비, 풀꽃과 나무가 누구에게나 배움숲(학교·학원)입니다. 옛배움터를 허무는 길(정책)이 아닌 옛배움터를 '숲배움터'로 되살려 이모저모 고치고 손질하는 새길(대안)을 세울 때라고 봅니다.

저는 국어사전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빌려 쓰는 옛배움터를 '국어사전 도서박물관'으로 가꿀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조차 없는 책을 잔뜩 품은 저희 책숲인 터라, '책품책숲(책을 품은 책숲)'으로 일굴 수 있습니다.

기꺼이 몸을 내주어 종이책이 태어날 살림을 베푼 나무도 처음에는 모두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작은 씨앗이 하나둘 모여 아름드리숲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종이책을 손에 쥘 적에는 '온사랑을 베푼 푸른숨빛'도 함께 누리고 배울 만합니다.

작은배움숲이 살리는 시골

이제부터는 온나라 모든 옛배움터를 '새로배움숲(새롭게 푸른살림을 배우는 숲터)'으로 삼자는 마음을 틔울 시도지사와 군수와 국회의원, 대통령과 담당 주무관을 그립니다. 행정으로 보면 폐교쯤 가볍게 허물면 손쉬울 테고, 사업비 집행도 수월할 테지만, 시골에 아무런 앞날도 앞빛도 씨앗도 없고 못 남깁니다.

작은배움숲(폐교)을 밑거름 삼아 작은사람이 작은시골에 하나둘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면, 마을이 통째로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인구소멸 걱정부터 덜 수 있습니다. 이미 면소재지 시골배움터는 전교생이 열 남짓인 곳이 흔하고, 열 명도 안 되는 시골배움터도 수두룩합니다.

그래서 이런 작은 시골배움터로 '시골길(산촌유학·농어촌유학)'을 누리려는 서울이웃이 해마다 부쩍 늘고 있습니다. 바글거리는 서울과 달리 배움터 모든 어린이(1∼6학년 전교생)가 푸르고 해맑게 나란히 배우고 들숲메바다를 품는 시골에서 '마음밭'부터 가꿀 수 있거든요.

한겨울에는 눈 덮인 들판에서 마음껏 눈놀이를 누릴 수 있는 시골배움터입니다. 한여름에는 얼음바람(에어컨)이 아니라 들바람과 숲바람을 맞으며 골짜기와 바다를 품을 수 있는 시골배움터입니다. 리가 먹는 낟알과 열매와 푸성귀를 어린이가 손수 심어서 가꾸는 길을 배우고 익히면서 "이 삶이란 손수 돌보면서 놀랍도록 즐겁구나" 하고 알아갈 수 있는 시골배움터입니다.

면소재지에 아직 남은 시골배움터를 든든히 버티는 힘이 될 수 있는 작은배움숲(폐교)이라고 봅니다. 시골에는 따로 학원이 없어도 됩니다. 들과 숲과 메와 바다와 하늘과 별과 비와 풀과 나무와 나비가 스승이고 동무이고 길잡이입니다. 이제까지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다 떠나서 텅텅 비고 만 마을과 폐교이지만, 이제부터는 거꾸로 작은배움숲으로 살리면서 찬찬히 새길을 여는 새빛으로 삼을 만합니다.

크게 올려세우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크게 올려세우지 않기에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크게 올려세우려 하느라 자꾸 서울로 밀어내는 바람에, 서울도 붐비면서 고단하고 괴롭고 지칩니다. 이제부터는 시골배움터(공공학교)와 작은배움숲(폐교활용 문화예술공간)이 나란히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뜻있는 정치와 행정이 싹트기를 바랍니다. '폐교철거'가 아닌 '폐교활용'이라는 새싹이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에도 실립니다.


#숲노래책숲#흥양초#고흥#최종규#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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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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