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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된 국가의 경계선... 헝가리에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헝가리 제2의 도시, 데브레첸(Debrecen)으로 간다.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3시간 남짓 걸린다. 240km쯤 되니 서울에서 광주 조금 못 되는 거리다. 당일치기로 다녀올 계획이어서 이른 아침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데브레첸은 헝가리 독립운동의 성지다. 도심의 코슈트 광장에는 코슈트 러요시의 동상과 그가 헝가리 공화국을 선포한 칼뱅파 개혁 교회가 우뚝하다. ⓒ 서부원
데브레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우리가 대부분 잘 아는 헝가리의 도시는 사실상 수도인 부다페스트다. 당연히 헝가리 여행도 부다페스트가 처음이자 끝인 경우가 많다. 헝가리, 나아가 유럽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데브레첸은 부다페스트 못지않은 위상을 지닌다. 헝가리인들에게 데브레첸은 독립운동의 성지다. 우리로 치면, 망명 정부일지언정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중국 상해와 비슷하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가 발흥 하였다. 각국은 이를 억압했고, 이전의 왕정 체제로 되돌리려는, 이른바 '빈 체제'가 성립되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선이 임의로 그어졌고, 지역마다 민족주의적 분노가 폭발했다. 당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고, '빈 체제'라는 제국의 퇴행적인 반동 정치를 주도한 이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였다. 곧, 헝가리 민족주의는 '빈 체제'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자 저항이었다.
데브레첸 여행

▲부다페스트에서 데브레첸으로 가는 3시간 동안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다. 지리 교과서에서 강조하는 중부유럽의 대평원 '푸스타'다. ⓒ 서부원
당시 헝가리 민중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부정하고 최초로 헝가리 공화국을 선포한 도시가 바로 데브레첸이다. 오스트리아는 다급히 러시아에 원병을 요청했고, 집단적 살육이 자행 되었다. 끝내 공화주의 혁명은 실패했지만, 민중의 저항은 지속되었다. 당시 헝가리 민중을 이끈 지도자는 '코슈트 러요시'였다. 그는 망명 후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죽어서야 고향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계속된 민중의 저항은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라는 나름의 결실을 맺었고, 그는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그는 헝가리에서 '백범 김구'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데브레첸 여행길의 첫인상은 조금 의외였다.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선물 꾸러미를 건네받은 느낌이었다. 데브레첸엔 과거사 뿐 아니라 헝가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도시였다. 우선, 데브레첸으로 가는 '분주한' 기찻길의 모습부터 낯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화물열차들의 행렬이 창밖 풍경을 자주 가렸다. 특히 최신형 자동차를 위아래로 포개 싣고 어디론가 운송하는가 하면, 수십 개의 컨테이너를 매단 열차가 기차역마다 여럿 정차 되어 있었다.
마치 하역을 기다리는 수출항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헝가리는 바다와 인접하지 않은 내륙국이며, 농축산물의 수출에 의존하는 농업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일부 지리 교과서에는 헝가리를 '푸스타(Fuszta)' 평원에 기반 한 농목업 중심의 국가로 소개되어 있다. 학창 시절 맹목적으로 암기했던 기억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팜파스', 브라질은 '캄푸스', 북아메리카는 '프레이리', 그리고 헝가리 하면 '푸스타'였다. 대평원 지역으로 세계적인 곡물 창고이자 기업적 목축이 행해지는 곳이라고 배웠고, 각종 시험의 단골 출제 문항이기도 했다.

▲철길 위에는 자동차과 콘테이너를 실어나르는 화물열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농목업 국가 헝가리가 제조업 위주의 공업 국가로 변모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 서부원
그 '푸스타'의 중심 도시가 데브레첸이다. 헝가리의 제1호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르토바지(Hortobágy) 초원'은 '푸스타'의 경관을 대표하는 곳이며, 데브레첸은 호르토바지로 통하는 관문이다. 기차나 버스로 30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호르토바지는 헝가리의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머저르족의 전통 유목 문화와 때 묻지 않은 자연 풍광이 보존된 곳이다. 2천여 년 전 헝가리의 시원을 보여주는 문명사적 공간으로, 모든 헝가리인들의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기차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푸스타'의 위용은 여전하다. 부다페스트에서 데브레첸까지 가는 3시간여 동안 산은커녕 야트막한 언덕 하나 볼 수 없다.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대평원. 이보다 더 '푸스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은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버려진 듯 잡풀만 우거진 땅이 곳곳에 보이고, 대신 새뜻한 공장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고 섰다. 역마다 줄지어 늘어선 화물열차의 출발점일 터다. 헝가리가 농목업 중심 국가에서 제조업 위주의 공업 국가로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풍경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부다페스트를 비롯한 헝가리의 도시들은 죄다 '공업 도시'다.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이 앞다퉈 헝가리에 공장을 짓고 있다. 특히 유럽 내 자동차 조립과 이차 전지 관련 산업은 모두 헝가리에 밀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벤츠와 베엠베(BMW), 아우디 등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 생산 거점이 헝가리로 옮겨졌다. 전기 자동차의 대명사가 된 중국 비야디(BYD)의 공장도 소도시 세게드에 자리한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 스즈키도 국경의 소도시인 에스테르곰 외곽에 대형 공장을 지었다. 우리나라 대기업 삼성과 엘지도 부다페스트 인근에 공장을 세웠다는 건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헝가리 공화국이 선포된 독립 운동의 성지이자, '푸스타'의 중심 도시인 데브레첸도 변화의 물결을 거스르진 못했다. 외국 기업의 공장들이 도시 전체를 포위하듯 감싸고 있다. 북쪽엔 독일의 베엠베가, 남쪽엔 중국의 배터리 기업 CATL이 산업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과거 곡물을 생산하던 비옥한 '푸스타'가 이젠 해외 기업들의 공장 부지로 활용되고 있다. 코슈트 러요시가 사자후를 토했던 현장은 지금 '코슈트 광장'으로 명명되었다. 한 가운데 그의 동상이 서 있고, 그 뒤엔 그를 호위하듯 칼뱅파 개혁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헝가리는 가톨릭 국가이지만, 데브레첸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 지역은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종탑의 꼭대기에 십자가가 없는 교회의 모습이 낯설다. 당시 개신교가 보수적인 주류 가톨릭에 저항 했듯 오스트리아 제국의 압제를 거부한 헝가리 민중의 저항 정신을 드러내는 표식처럼 느껴졌다. 개혁 교회는 독립운동의 영웅 코슈트 러요시의 정신과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진짜 헝가리를 만나다

▲의학과 보건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데브레첸 대학의 본관 모습. 외국인 유학생이 많다는 이곳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한국인 유학생도 여럿 만났다. ⓒ 서부원
데브레첸의 역사는 '푸스타'와 코슈트 광장에 서려 있고, 현재는 도시를 포위한 해외 대기업의 클러스터를 통해 읽을 수 있다면, 미래는 단연 데브레첸 대학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헝가리의 최고 명문으로, 특히 의학과 보건 분야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 네 명 중 한 명꼴로 재학생 중 외국인 유학생이 많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대학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언뜻 세계 박람회장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개중에는 한국인 유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부러 다가가 말을 걸어보니 여름 학기를 수강 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데브레첸에서 진짜 헝가리를 만났다. 수도 부다페스트가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헝가리의 가면'이라면, 데브레첸은 역사와 삶,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헝가리의 민낯'이었다. 뻔한 관광 말고 진짜 헝가리를 보고 싶다면, 일부러라도 데브레첸을 방문할 일이다. 하루 정도 발품을 팔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데브레첸의 대표적 미술관인 데리 뮤지엄에는 헝가리 화가 문카치 미하이의 '예수 수난 3부작'이 전시되어 있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화가인 그가 15년 동안 그렸다고 전해지는 헝가리의 보물이다. ⓒ 서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