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령도. ⓒ 진재중
한반도해조류포럼 탐사대가 지난 3일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로 향했다.
기후변화로 사라져가는 동해안 바다숲을 되살릴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인천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백령도에 가까워질 무렵, 짙게 드리웠던 해무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탐사대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북녘 땅이 바라보이는 암반 위에서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점박이물범이었다. 분단의 바다에서 마주한 생명의 풍경은 이번 탐사의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
바다숲의 해답을 찾아 백령도로

▲북녘땅이 보이는 암반 위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물범. ⓒ 진재중
갑판 위 탐사대원들의 시선은 멀어지는 육지가 아닌 바닷속을 향하고 있었다. 이들이 찾는 것은 단순한 섬의 풍경이 아니었다. 기후변화와 갯녹음 현상으로 사라져가는 동해안 바다숲을 되살릴 해답이었다.
한반도해조류포럼 김형근 대표와 전찬길 남북협력위원장, 회원들은 백령도의 다시마 양식 현장과 해양생태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백령도 바다에서 이어온 다시마 복원의 성공 경험을 동해안 바다숲 조성에 적용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찾기 위한 특별한 탐사였다.
탐사대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백령도 다시마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태헌 백령도 선주협회 회장이다.
한반도해조류포럼 회원이기도 한 그는 40여 년 동안 다시마 연구와 양식기술 개발에 매달려 왔다. 수없이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백령도 해역에 가장 적합한 포자 배양과 양식기술을 완성했다.
그 결과 백령도는 오늘날 우리나라 최고 품질의 다시마를 생산하는 지역이자, 바다숲 복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다.

▲다시마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태헌 회장. ⓒ 진재중
장 회장은 탐사대를 이끌고 다시마 양식장으로 향했다.
잔잔한 바다 위에서는 평범한 양식장처럼 보였다. 그러나 카메라가 수면 아래를 비추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수 미터 길이로 자란 다시마가 숲처럼 바다를 뒤덮고 있었다. 백령도에서 2년 동안 자라는 다시마는 두께와 품질이 뛰어나 '바닷속의 검은 황금'으로 불린다. 그러나 탐사대가 확인한 가치는 상품성만이 아니었다.
다시마 숲이 부른 생명의 귀환

▲양식장에서 자라고 있는 다시마. ⓒ 진재중
백령도의 다시마 숲은 수많은 생명이 공존하는 거대한 바다 생태계였다. 울창하게 자란 다시마 사이로 치어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고, 전복과 소라, 해삼은 줄기와 뿌리 주변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 작은 갑각류와 다양한 해양생물까지 모여들면서 다시마 숲은 먹이와 은신처, 산란장을 제공하는 생명의 터전이 되고 있었다.
수중촬영을 맡은 탐사대원 이동제 박사는 직접 바닷속을 촬영하며 백령도 생태계의 건강함을 생생하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백령도는 자연이 오랜 시간 만들어낸 살아있는 생태의 보고였습니다. 다시마 숲은 단순한 해조류 군락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런 바다를 직접 기록할 수 있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어 그는 "동해안도 해조숲이 복원돼 다양한 해양생물이 다시 돌아오고, 건강한 바다 생태계가 회복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풍성한 다시마 숲이 조성되면 먹이사슬도 함께 살아난다. 다양한 어류와 무척추동물이 다시마 숲에 모여들고, 이를 먹이로 하는 상위 포식자까지 찾아오면서 건강한 생태계가 완성된다. 다시마 숲 하나가 바다 전체의 생명력을 지탱하는 기반이라는 사실을 백령도의 바다는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백령도 바다숲 생태를 확인하기 위해 입수하는 잠수대원. ⓒ 진재중

▲다시마 숲을 벗삼아 살아가는 백령도 물범 ⓒ 진재중
한반도해조류포럼 탐사대는 이번 백령도 탐사에서 뜻밖의 성과를 거뒀다.
한때 동해안 사근진 해역에서 자취를 감췄던 토종 다시마가 백령도 바다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사근진 토종 다시마는 일반 다시마보다 엽체가 짧고 유연해 거친 파도와 강한 해류가 이어지는 동해안 암반 환경에 적응한 고유 품종이다. 오랜 세월 사근진 바다를 대표하는 해조류이자 지역 어민들의 중요한 소득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를 잇달아 겪으며 토종 다시마는 자취를 감췄다. 이후 2017년부터는 동해안을 대표하던 참다시마마저 급격히 감소하면서 바다 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이번 발견은 단순히 백령도에 토종 다시마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 그치지 않았다. 사라진 동해안 토종 다시마를 되살릴 가능성을 확인한 중요한 성과이자, 바다숲 복원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특히 토종 다시마의 흔적을 찾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까지 찾아다니며 연구를 이어온 전찬길 남북협력위원장에게는 더욱 뜻깊은 순간이었다. 백령도에서 확인한 토종 다시마는 잃어버린 동해안 바다를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소중한 희망이었다.
사근진에서 시작된 가능성

▲거친 동해안 바다에 적응한 사근진 토종 다시마. 길이가 짧고 유연한 옆체를 지녔다. ⓒ 진재중
이번 탐사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장태헌 회장은 탐사에 앞서 지난 6월 강릉 사근진 앞바다를 직접 조사했다. 수온과 조류의 흐름, 암반 지형, 해조류 생육환경을 살피며 백령도에서 축적한 다시마 양식기술이 동해안에도 적용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을 둘러본 장 회장은 확신을 얻었다.
"강릉 사근진 앞바다는 바다숲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백령도에서 축적한 기술을 접목한다면 동해안에서도 다시마 바다숲 조성과 양식산업을 충분히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 백령도 탐사는 이러한 현장조사의 연장선이었다. 성공 사례를 직접 확인하고, 그 경험을 동해안에 옮겨오기 위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번 탐사에는 경포사근진 어촌계원 이충웅씨도 함께했다. 그는 백령도의 다시마 생육 환경과 양식기술을 직접 살펴보며 사근진 해역에 적용할 수 있는 복원 방안을 모색했다.
이충웅씨는 "예전 사근진 앞바다는 다시마와 미역이 풍부했던 생명의 바다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해조류가 사라지고 바다숲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다시마를 되살리는 일은 어민들의 삶은 물론 바다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바다숲 복원은 행정과 연구기관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바다를 가장 잘 아는 어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경포사근진 어촌계는 이번 탐사 결과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시범 바다숲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토종 다시마를 중심으로 어민이 주도하는 해양생태 복원의 기반을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
백령도의 성공을 동해안으로

▲강릉 사근진 다시마 현장을 둘러보고 관계자와 얘기하는 장 회장. ⓒ 진재중
김형근 한반도해조류포럼 대표는 이번 탐사의 목적을 말했다.
"기후변화와 갯녹음 현상으로 동해안의 다시마를 비롯한 해조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백령도의 성공 사례를 직접 확인하고, 그 기술과 경험을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에 접목할 방안을 찾기 위해 이번 탐사를 추진했습니다."
실제로 동해안은 수온 상승과 해양환경 변화로 암반 생태계가 빠르게 변하면서 해조류 군락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강릉 사근진은 한때 토종 다시마가 풍부했던 대표적인 해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군락 대부분이 사라졌고, 바다숲 복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김 대표는 "백령도의 검증된 기술을 동해안 환경에 맞게 적용한다면 사라진 다시마 숲을 되살리고 건강한 해양생태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령도를 찾은 한반도해조류포럼 탐사대원들. ⓒ 진재중
이번 탐사는 해조류 복원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전찬길 한반도해조류포럼 남북협력위원장은 백령도가 가진 지리적 의미에 주목했다.
"백령도는 서해 최북단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지역입니다. 앞으로 해조류 연구와 양식기술이 남북 해양협력의 기반이 되고,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로 발전하길 기대합니다."
해조류는 단순한 수산자원이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과 생태복원, 그리고 미래 협력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마 숲이 들려준 희망

▲백령도는 다시마 양식으로 또 다른 바다숲을 이루었다. ⓒ 진재중
백령도에서의 탐사는 짧았지만, 그 성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다시마를 이식하고 바다숲을 조성하는 일은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양식사업이 아니었다. 사라진 해양생태계를 회복하는 생명의 작업이었다.
기후변화로 바다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동해안 곳곳에서는 갯녹음 현상이 확산되며 해조류가 사라지고,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어민들의 삶도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백령도의 다시마 숲은 바다도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다는 하루아침에 되살아나지 않는다.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고, 과학기술을 더하며, 긴 시간을 기다리는 노력이 쌓일 때 비로소 생명의 터전은 다시 만들어진다.
백령도의 다시마 숲은 오늘도 바닷속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바다를 살리는 길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북녁땅이 보이는 곳에 평화로이 있는 갈매기. ⓒ 진재중

▲장 회장이 양식한 백령도 해역의 다시마.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