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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모자란 곳은 용인인데, 철탑은 다른 곳에 선다. 경기도 용인시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할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호남과 충청의 마을을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선로가 계획되고 있다. 1100km가 넘는 이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고, 경과지 주민들은 사업이 확정되고 노선이 그려진 뒤에야 설명회 자리에서 그 사실을 처음 들었다.

경남 밀양에서 벌어졌던 일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지만, 논쟁은 곧 '어느 지역이냐'로 옮겨갔다. 우리는 이 구도를 거부한다. 이것은 지역 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묻지 않고 결정한 정부와 그 대가를 떠안는 시민의 문제다.

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송전탑 반대 전국 대행진 참가자 일동은 7월 30일 해남에서 출발해 8월 20일 서울까지 걷는다. 송전선로가 지나갈 길을 사람의 걸음으로 다시 그리며,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의 절차적 정당성과 용인 반도체 산단 전면 재검토를 묻는다. 이 연재는 그 걸음의 기록이다.
7월 31일 오전, 5·18민주광장에 모인 대행진 참가자들. 무더위 속에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7월 31일 아침 8시 30분, 광주 5·18민주광장. 이른 시간인데도 아스팔트 위로 열기가 일렁였다. 곡성에서 온 주민들, 광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서울과 경기, 충청에서 이 먼 길을 함께 걷기 위해 내려온 얼굴들까지,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누구도 대신 걸어주지 않을 길을, 스스로 걷기로 한 사람들이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청 앞 기자회견 전남광주통합특별시청 앞 기자회견 사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청 앞 기자회견전남광주통합특별시청 앞 기자회견 사진 ⓒ 환경운동연합

금남로에서 시청까지, 뙤약볕 아래 반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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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단은 금남로 5가를 지나 양동시장, 서구청, 쌍촌동 가톨릭평생교육원, 운천저수지, 5·18기념공원을 거쳐 광주시청까지 걸었다. 한나절이 넘는 그 여정 동안 나는 계속 한 가지 질문을 곱씹었다. 우리는 왜 걷는가. 왜 트럭도 버스도 아닌, 두 발로 이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려 하는가.

답은 어제 해남 출정식에서 나온 한 마디에 있었다. 누군가의 장밋빛 희망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 희생을 요구하는 쪽이 개인이 아니라 국가나 기업이라 해도 마찬가지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정확히 그 반대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국가는 본래 개인과 지역,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공동체의 삶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와 기업의 이름으로, '반도체 강국'이라는 화려한 명분을 내걸고 지역의 삶과 국토를 유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용인에 전기가 부족하면 용인에서 답을 찾아야 할 텐데, 그 답은 늘 다른 곳의 마을과 논밭 위에 철탑으로 세워진다.

행진하는 시민 송전탑이 그려진 우산을 쓰고 행진하는 시민
행진하는 시민송전탑이 그려진 우산을 쓰고 행진하는 시민 ⓒ 환경운동연합

"지역 희생을 담보하는 첨단산업은 폭력적"

광주시청 앞 기자회견에서 노진철 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지역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첨단산업은 폭력적이며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지역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 문장이 단지 구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다.

며칠 전 나는 광주 반도체 사업을 두고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800조 원의 투자와 일자리는 화려한 도시가 가져가는데, 그 대가로 감당해야 할 위험과 불편은 영암과 나주, 함평과 장성, 담양 같은 이웃 지역이 짊어져야 한다면,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또 다른 불평등일 뿐이다. 내 마당에는 결코 두고 싶지 않은 송전탑을 이웃의 마당에는 아무렇지 않게 세울 수 있느냐는 질문. 나는 오늘 광주의 뙤약볕 아래를 걸으며, 이 질문이야말로 이 대행진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라고 느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기술도 재원도 아니다. 없는 것은 합의의 절차이고, 없는 것은 염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이웃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 그것이 공동체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태도다.

서울까지, 남은 걸음들

해남에서 시작된 이 걸음은 영암을 지나 나주 한전 본사를 거쳐 오늘 광주에 닿았고, 내일은 전북으로, 그다음은 대전과 충남·충북을 지나 용인과 서울로 향한다. 역대급 무더위 속에서도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 지치고 힘든 순간들이 분명 더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앞에, 청와대 앞에 다다를 때까지 이 걸음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걷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응답하는 것은 이제 국가의 몫이다. 나는 오늘 그 첫 대답을 요구하는 자리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걸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종필씨는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입니다.


#송전탑반대#용인반도체산단#광주#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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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반도체산단 재검토·송전탑 반대 전국 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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