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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아니었던 헝가리 물가, 깜짝 놀랐습니다에서 이어집니다.)
국가를 지켜내고 전성기를 일군 세체니와 언드라시 등과 함께 부다페스트의 어딜 가든 만나는 이름이 있다. 외지인들은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이름, 이슈트반. 그의 이름 앞에는 대개 '성(聖)'이 붙고, 뒤에는 '왕'이 이어진다. 곧, 그를 호칭할 때는 '성 이슈트반 왕'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의 이름을 딴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명실공히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다. 현재도 도심의 그 어떤 건물도 대성당의 종탑보다 높게 지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선지 시내 어디서든 대성당이 보이고, 여느 도시라면 도심을 뒤덮었을 마천루의 빌딩 숲을 부다페스트에선 찾아볼 수 없다.
헝가리의 국부로 추앙된 남자

▲교황이 성 이슈트반 왕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모습을 형상화한 기념물. 뒤로 헝가리의 대형 국기와 에스테르곰 대성당의 돔이 보인다. ⓒ 서부원
그는 헝가리인들에게 '국부'로 추앙된다. 10세기 말 그의 아버지인 게자(Géza)가 지금의 우랄산맥과 흑해 주변에 살던 유목민인 머저르족을 이끌고 이 땅에 정착한 뒤, 그의 맏아들인 이슈트반이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참고로, 헝가리의 공식 국명도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해 머저르 공화국이다.
이름 앞의 '성'은 가톨릭과 관련이 있다. 왕국을 수립하면서 동시에 가톨릭을 받아들여 국교로 삼았다는 사실을 기리려는 것이다. 가톨릭의 국교화를 통해 사분오열된 민심을 수습하고 교황으로부터 통치를 위한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포석이었다. 신라 시대 법흥왕과 측근이자 인척이었던 이차돈의 순교를 떠올리면 쉽다.
헝가리 땅은 유럽 대륙의 심장부에 해당하고, 넓고 비옥한 땅이어서 근래까지도 전란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머저르족이 이동해 오기 전부터 터를 잡고 있던 주변의 세력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던 그에겐 당시 왕권을 능가했던 교황의 지지가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교황 또한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왕이 필요했을 테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였다.
그가 헝가리를 건국하고 교황으로부터 왕관을 건네받은 곳은 지금의 수도인 부다페스트가 아니다. 부다페스트는 세력을 규합한 그의 가장 중요한 공략 거점이었을 따름이다. 지금이야 부다페스트는 성 이슈트반 왕의 도시로 기억되지만, 헝가리 왕국의 옛 도읍지는 이곳으로부터 북쪽으로 50여km 떨어진 에스테르곰(Esztergom)이었다.
헝가리 최대 규모의 대성당

▲부다페스트의 성 이슈트반 대성당 안에 모셔진 왕의 오른손 미라. 헝가리에서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 서부원
파란만장했던 헝가리의 과거를 찾아 잠시 부다페스트를 떠나 에스테르곰으로 간다. 그곳엔 헝가리 내 최대 규모이자 유럽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성 이슈트반 왕이 헝가리 왕국을 개창한 궁성이 있던 자리로, 교황이 직접 찾아와 대관식을 행한 유서 깊은 곳이다. 숱한 전쟁으로 허물어진 터에 이를 기념하여 성당을 세운 것이다.
부다페스트와 에스테르곰은 각각 기차의 기점과 종점으로, 30분 간격으로 기차가 오간다. 1시간 남짓 소요되어 당일치기 여행지로도 맞춤한다. 볼거리가 대성당 하나뿐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건국 당시를 보여주는 유적은 허물어진 성벽뿐이지만, 헝가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기차역에 내리면 대성당에 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내버스지만, 도시를 한 바퀴 빙 돌아갈지언정 모두 대성당을 경유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번호와 상관없이 아무 버스나 타도 된다는 뜻이다. 대성당은 에스테르곰의 랜드마크이자 등대와 같은 존재인 셈이다.
옛 궁성의 아랫마을이었을 현재의 도심에서 오랜 역사의 체취를 느끼긴 어렵다. 울퉁불퉁 돌이 깔렸을 도로는 아스팔트로 덮였고, 파괴된 마을엔 새뜻한 콘크리트 집들이 세워졌다. 비탈진 언덕에는 흡사 동화 속 귀족들의 별장 같은 예쁜 집들이 푸른 숲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대성당의 전경은 사진에 담기 힘들다. 정면 파사드 앞에 서면 돔이 보이지 않고, 기둥 하나를 에워싸려면 족히 대여섯 명이 팔을 벌려야 할 만큼 육중하고 거대하다. 제단 옆을 돌아 오르는 돔에는 카페와 야외 전망대까지 갖추고 있어 역사 유적이나 종교 시설이라기보단 관광지의 느낌이 강하다.

▲에스테르곰 옛 성터에서 내려다 본 다뉴브강과 슬로바키아의 슈트로보 도시 풍경. 국경선 역할을 하는 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가 마리아 발레리아 대교다. ⓒ 서부원
대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압권이다. 유유히 흐르는 다뉴브강과 강 건너 마을 슈트로보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슈트로보는 헝가리와 접한 슬로바키아 땅으로, 다뉴브강이 두 나라의 국경 역할을 한다. 강 위에는 두 도시를 잇는 '마리아 발레리아 대교'가 놓여 있다.
참고로, 마리아 발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황제 프란츠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의 이름이다. 헝가리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황후의 영향으로, 마리아 발레리아 역시 헝가리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헝가리의 공주'라는 별칭을 얻었다.
대성당의 가장 중요한 볼거리는 건물 밖에 있다. 허물어진 성벽 끝 다뉴브강을 발아래 둔 곳에 세워진 '성 이슈트반 왕 대관식 상'이 그것이다. 지난 2001년 대관식 1천 년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교황이 무릎 꿇은 성 이슈트반 왕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곳이 헝가리 왕국의 탯자리임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그 어떤 안내문도 폐허로 남은 이곳에 거대한 대성당을 세운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진 못한다. 헝가리인들은 이곳에서 정체성의 시원을 찾는다고 하며, 그래선지 바로 옆에 대형 헝가리 국기를 세워 놓았다.
대성당을 돌아 나오면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대성당은 에스테르곰 여행의 종점이자 기점이기도 하다.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선 입구에 상시 대기 중인 '코끼리 열차'를 타야 한다. 이 열차에는 헝가리 국기가 아닌, 슬로바키아의 국기가 매달려 있다. '국제 열차'인 셈이다.
요금 결제도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뿐 아니라 슬로바키아에서 통용되는 유로 화폐로도 가능하다. '마리아 발레리아 대교'를 건너 슈트로보를 오가는 왕복 교통편이다. 종점은 슈트로보의 외곽에 자리한 물놀이장이다. 도중에 정차하지도 않는, 말 그대로 '시티투어 버스'다.
물론, 열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두 도시는 걸어서도 충분히 오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아스팔트의 열기와 여름 땡볕이 부담스럽긴 해도, 두 도시를 모두 둘러보는데 반나절이면 족하다. 여하튼 대성당의 전경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강 건너 슈트로보 여행은 필수다.
난 다리를 두 번 오갔다. 한번은 열차를 타고, 또 한번은 걸어서 다뉴브강을 건넜다. 누가 분단된 나라의 국민이 아니랄까 봐, 국경선이 주는 묘한 감흥 때문이다. 다리 위엔 국경선이 그어져 있고, 철골 구조물 사이엔 두 나라의 국기가 서로 등을 댄 채 국경임을 표시하고 있다.
이를 의식하는 이는 오로지 나뿐인 듯했다. 무시로 차량이 오갔고, 자전거를 탄 이들도 여럿 보였다. 드문드문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이들이 있었지만, 나처럼 국경선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빨간 선이 그어져 있지 않았다면, 국경인지도 몰랐을 듯한 일상적 풍경이었다.
적어도 이곳에선 헝가리인이냐, 슬로바키아인이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해 보였다. 그들의 지갑 속엔 포린트와 유로 화폐가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마치 한 동네의 이웃 같았고, 최고의 볼거리로 대성당을 꼽았다. 대성당이 에스테르곰에 있는지, 슈트로보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 이슈트반 왕은 두 도시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에스테르곰으로 돌아가는 길, 열차엔 운동복 차림의 꼬마 손님들이 탔다. 슈트로보 경기장에서 훈련을 마친 유소년 축구 클럽 선수들이었다. 순간 국적이 궁금했지만,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드는 그들에게 차마 묻진 못했다. 어딜 가나 두 나라의 국기 옆에 나란히 내걸린 EU 깃발이 답변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마리아 발레리아 대교 위에 그어진 국경선. SR은 슬로바키아의 약어이고, M은 헝가리의 약어다. H가 아니라 M인 이유는 헝가리의 공식 국명이 머저르 공화국이라서다. 뒤로 에스테르곰 대성당이 보인다. ⓒ 서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