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안에서 밥 짓고 밭 가는 사람의 기록이다. 영국에서 10년을 살며 스톤헨지와 솔즈베리의 유적을 순례하던 눈으로, 강화도를 바라본다. 위대한 유산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쓰려 한다.
조선의 이수광은 토마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남만시(南蠻柿)는 풀감이다. 봄에 나서 가을에 열매를 맺고 맛은 감과 비슷하다. 본래 남만에서 났는데, 근래에 한 사신이 중국에서 종자를 얻어 왔다. 이 또한 기이한 과일이다. - <지봉유설>, 1614
남만시, '남만에서 온 감'이라는 이름이다. 다음에는 초시(草柿), 곧 '풀에서 자라는 감'이라고 설명했다. 봄에 심으면 가을에 열매를 맺고, 맛은 감과 비슷하다고 했다. 조선의 기록에서 이 낯선 열매를 처음 보고 붙인 이름이 '풀에서 자라는 감'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낯선 것을 만나면 사람은 반드시 이미 아는 것의 이름을 빌린다. 조선은 '감'을 떠올렸다.
옛 사람들이 본 토마토

▲감 토마토이 토마토는 이름이 감 토마토인데, 색이며 모양이 감을 닮았다. 이걸 보고 이수광은 토마토를 감이라고 불렀을까? ⓒ 최수안
이보다 70년 전 이탈리아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가지가 들어왔는데, 익으면 황금빛이 되고, 가지처럼 갈라서 소금과 후추와 기름에 볶는다고 했다. 유럽인들이 토마토를 이해한 최초의 이름은 가지였다.
1553년 플랑드르의 도도엔스가 인쇄물로는 처음 토마토 그림을 실었을 때, 그 장의 제목은 '황금 사과'였고, '사랑의 사과(poma amoris)'라는 별명도 함께 붙어있었다. 토마토는 황금 사과이자 사랑의 사과였다.
그런데 왜 황금이었을까. 유럽에 처음 간 토마토는 우리가 아는 매끈한 붉은 공모양이 아니었다. 노란 것이 흔했고, 세로로 골이 깊게 파여 쪽쪽이 나뉜 모양이었다. 이탈리아 의사 마티올리가 토마토를 유럽 문헌에 처음 적어 넣을 때 "쪽으로 갈라 먹는다"라고 기록하였는데, 이건 비유가 아니었다. 실제로 쪽이 나 있었다.

▲아코디언 토마토내 밭에는 빨갛고 노랗고 주황색인 세가지 아코디언 토마토가 자란다. ⓒ 최수안
내 밭에도 그런 토마토가 있다. 노랗고 주름이 깊어서 아코디언이라고 부른다. 처음 이 토마토를 키워 주위 사람들에게 주고, 파머스 마켓에서 판매한 적도 있었는데 여행 중에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반가워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신기해 했다. 지금은 '에어룸'이라고도 불리는 가보(heirloom) 토마토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져 내가 처음 키웠던 13년 전만큼 낯선 토마토는 아니지만 말이다.
완전 다른 유럽 토종 토마토의 생김
영국에서 살던 시절, 보로 마켓과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일요일마다 열리던 파머스 마켓은 내가 가장 사랑하던 장소였다. 그곳에 놓인 토마토들은 내가 알고 있던 토마토의 얼굴과는 전혀 달랐다. 쭈글쭈글한 토마토, 하얀빛이 도는 토마토, 초록과 붉은 줄무늬가 뒤섞인 토마토, 심장처럼 생긴 토마토까지.

▲텃밭의 다양한 가보 토마토들사탕을 닮은 캔디 체리 토마토, 노란 태양을 닮은 샤를 롤루아즈, 파인애플 토마토 ⓒ 최수안
'이게 다 토마토라고?' 나는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속으로 되뇌었다. 유럽에서 대를 이어온 가보 토마토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놀라움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토마토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다름이 새로운 변종이 아니라 오히려 오랜 시간을 지켜 내려온 토종이라는 점이 나를 완전히 매혹시켰다. 모양도 쭈글쭈글 각기 다른 이 토마토들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
밭에서 토마토가 맞는 결말은 둘뿐이다. 익거나, 썩거나. 중간이 없다. 배꼽 쪽이 검게 주저앉는 병이 오면 아무리 붉어도 그건 익은 게 아니라 썩은 것이다. 나는 매년 그런 것을 몇 개씩 밭고랑에 던진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랬다. 해는 없는데 기온만 높은 장마가 길게 이어졌다. 처음엔 열매를 잘 맺었던 것들이 결국 제대로 익지 못했다. 파는 것도 아니니 손해랄 것은 없다. 다만 나눌 것이 없어졌다. 예전에는 여름이면 이걸 상자에 담아 여기저기 보내곤 했다. 그래서 토마토 농사가 아쉬운 올 여름이다.

▲토마토. 가지. 고추모두 가지과이다. ⓒ 최수안
토마토와 함께 밭에 늘 같이 심는 가보종 가지와 고추는 모두 가지과다. 토마토와 고추는 아메리카에서 왔고 가지는 인도에서 왔는데, 유럽에 도착한 뒤 대접은 제각각이었다. 고추는 당시 어마어마하게 비쌌던 후추를 대신하며 바로 자기 자리를 찾았지만, 토마토는 마녀의 약초 옆에 놓였고 가지는 '미친 사과'라 불렸다. 특히 북유럽에서 토마토는 오랫동안 먹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셋 다 유럽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들이 되었지만 말이다.
같은 씨앗, 다른 맛

▲가보 토마토피렌체의 주름진 토마토와 여러가지 가보 토마토들 ⓒ 최수안
영국과 유럽에서 먹어 온 토마토들을 강화에 심은 지 벌써 10년을 훌쩍 넘었다. 강화도의 흙에 씨앗을 묻을 때 나는 기대한 것이 있었다. 내가 먹었던 그 토마토의 풍미, 내 기억의 맛 말이다.
강화에서 키우는 유럽 토마토들은 결코 순순하지 않았다. 햇빛, 수분, 바람이 중요한 작물들에게 이곳은 낯선 땅이었을 것이다. 바다는 가깝고, 바람은 생각보다 거칠었고, 여름의 습기는 토마토가 기억해 온 공기와는 달랐다.
토마토들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걸까. 처음 수확한 토마토를 잘라보았을 때, 기대하던 향은 약했고 단맛도 뚜렷하지 않았다. 대신 수분이 많고 맛이 퍼지지 않는 느낌이 남았다. 뭔가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말을 걸지 못한 채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게 내가 그토록 동경하던 에어룸 토마토가 맞을까. 실망이라기보다는 당황에 가까운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같은 씨앗이라고 해서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영국 남부 해안의 토마토는 짭조름한 해풍과 흐린 하늘을 견디며 천천히 익는다. 이탈리아 캄파니아의 토마토는 베수비오의 화산 토양과 뜨겁게 내리꽂히는 지중해의 햇빛을 품는다. 그리고 강화도의 토마토는 습기 많은 여름, 바람 많은 섬의 공기, 고요한 산속 텃밭의 바람과 새소리, 그리고 그걸 돌보는 농부의 시간이 담겨 있다.
토마토는 과거를 복제하는 열매가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를 증명하는 열매다.
먹고, 남기고, 다시 심는 일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씨앗을 건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