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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교육행정의 학문 공동체를 지향했던 사람들이 유대를 도모하고자, 중국 역사문화 탐방길에 올랐다. 현재 중국문화에 속해 있지만, 한때 우리 고구려인들이 끝없는 만주벌판을 향해 말 달리며, 호령했던 흔적들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라고 했던가.

걸으면서 하는 독서답게 지난 26일 이른 아침, 일행은 역사적 흔적을 찾아 단동 호텔에서 아침 조식을 가볍게 한 후, 길림성 집안시로 향했다. 집안시로 가는 어느 길거리엔 철조망이 쳐져 있고, 압록강 상류가 흐른다. 생뚱맞게 철조망이라니. 사람들이 강을 건너지 말라는 경고인 듯하다. 강 건너편에 근접한 북한 땅이란다. 상류 지역이라 그런지 압록강답지 않게 물도 많지 않다. 낡은 북한 집들이 스친다.

드디어 고구려 옛 수도 국내성으로 알려진 집안시 유적지에 도착이다. 무엇보다 압권은 고구려 제20대 장수왕릉이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든 피라미드형 장군총이다. 5세기경 세워진 동방의 피라미드. 정교한 석조공예로 능묘의 최고봉이다. 79년을 재위했던 절대 제왕답게 당당함과 호방한 숨결이 엿보인다.

장수왕릉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든 피라미드형 장군총.
장수왕릉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든 피라미드형 장군총. ⓒ 김병모
가이드에 따르면 장수왕릉 축조에 사용된 돌은 집안 지역의 돌이 아니라고 한다. 이 거대한 돌들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아직도 미스터리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서울시 석촌동 고분과 집안시 장수왕릉은 결이 같은 적석총으로 알려진다. 이 무덤을 통해서도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계로 뿌리가 같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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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릉 유적에 압도된 일행은 눈으로 담기엔 벅차다. 한쪽으로 규모가 작은 장수왕릉 1호 동반 무덤도 보인다. 고구려 왕족의 동반 무덤이란다. 왕족으로서 죽어서까지 주군을 지키겠다는 충성심일까. 완벽하게 보존된 장수왕릉과 달리, 세월의 힘에 부쳐 일부가 무너져 있다. 주군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1500년 이상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듯하다.

일행은 해동 제일의 고비(古碑) 광개토대왕 비석으로 향했다. 비석이 위치한 곳으로 가는 길옆으로 망초꽃들이 하얗게 피어있다. 고구려 역사 속에 묻힌 대왕을 위로하듯 바람에 살랑거린다. 묘한 기분이다. 하필 망초꽃이 대왕을 위로하며 일행을 맞이하다니.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제19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비석이다. 중국 사람들은 광개토대왕을 호태왕이라 부른다고 한다. 414년에 세워진 이 묘비는 아들인 제20대 장수왕이 부친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높이 6.39 미터, 넓이 1.342 미터로 된 이 비석은 고구려 건국 신화와 부왕인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가장 유구한 역사와 문자 기록으로 된 고구려 시기 고고학적 자료이다.

흥미롭게도 비석을 지키는 공안(公安)의 성향에 따라 관객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단다. 오늘따라 공안은 호의적이다. 비석을 배경으로 마음 놓고 촬영해도 별 반응이 없다. 일행 중 일부는 대왕 비석을 배경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촬영한다. 위대한 대왕으로부터 기(氣)를 받겠다는 제스처. 우리 역사문화를 탐방하는데 공안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다.

광개토대왕 비석 뒤 담장으로 석문 탁본이 전시되어 있다. 해동 제일의 고비(古碑)라고 쓰여있다. 바로 옆쪽으로 큰 칼 앞에 세운 구척장신 광개토대왕 동상이 근엄하다.

특히 광개토대왕비 남서 방향으로 360미터 떨어진 곳에 391년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릉이 있다. 광개토대왕릉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태왕릉이 산악처럼 견고하고 영원하길 바란다"라는 문자가 새겨진 벽돌과 연대기가 새겨진 연꽃무늬 와당이 대왕릉에서 발굴되어 광개토대왕릉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대왕릉 바로 앞 압록강 상류 건너편에 거대한 굴뚝이 눈에 띈다. 북한 자강도 만포시(만포진) 은 제련소라고 한다. 제련소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연거푸 품어져 나오고 있다. 추측건대, 북한 쪽에서도 광개토대왕릉을 볼 수 있으리라. 그들도 광개토대왕릉이 궁금하지 않을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안 역사 문화 유적지를 돌아 나오는데, 누군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에 뒤돌아본다. 부왕인 광개토대왕과 천수를 누렸던 장수왕이 역사 속에서 잠시 일어나 타국살이가 서럽다는 눈물 젖은 하소연일까.

#집안시#광개토대왕릉#장수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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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 (mo6503) 내방

본인은 오마이뉴스, 대전일보 등 언론사나 계간 문학지에 여론 광장, 특별 기고, 기고로 교육과 역사 문화, 여행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심오한 사고와 과감한 실천이 저의 사회생활 신조입니다. 더불어 전환의 시대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면서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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