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엊그제부터 여름 휴가가 시작됐다. 딱히 휴가 계획을 잡지 않아 도서관 사서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을 읽기로 했다. 그중 첫 번째로 읽은 것이 청예 장편소설 <일억 번째 여름>(2025년 5월 출간)이다. 책 제목만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여름이 일억 번째라니 엉뚱해 보였다.
책은 공상과학 판타지 소설이다. 지구가 멸망 후 '여름만 지속되는' 행성에서 신인류인 두두족과 미미족 두 종족 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린 '솔라펑크 소설'이다. 솔라펑크 소설은 자연과 기후 재난 등의 세계관을 담은 소설을 말한다.

▲<일억 번째 여름>은 기후변화에 따른 행성의 위기와 재난을 극복하는 서사이다. ⓒ 이혁진
책은 멸망 위기의 지구가 맞이한 '끝없는 여름'을 은유한다. 두두족과 미미족의 대결 구도에서 미미족은 두두족으로부터 식량을 지원 받는 입장이다. 두두족은 미미족이 반항할 경우 지진과 메가 쓰나미를 가할 수 있다.
여기서 한 종족이 멸망할 것이라는 선조의 예언에 미미족의 족장인 주홍이 부족을 살리기 위한 힘든 여정에 나선다. 주홍, 이록, 일록, 연두, 백곰 등 다섯 아이들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여기서 특히 이록은 고대 선조들이 예언한 '궁극의 원천'을 해독할 수 있는 인물로, 주홍과 함께 소설을 이끌고 있다.
지구 멸망의 위기 속에 아이들의 희생과 심리적인 공포가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다. 힘든 상황에서 주홍 족장은 엄마가 해주는 말에 힘을 얻고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로 결심한다.
"희생이란 용감한 사람들의 특권이야, 우리는 지키는 사람들이란다."(114쪽)
열일곱 살 아이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희생과 연대가 대견하면서도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이 소설을 '영어덜트 소설'로 분류하기도 한다. 어린 젊은이들의 활약으로 결국 일억 번째 여름을 끝내고 가을을 맞이한다는 서사이다.
요즘 기후변화로 전 세계를 강타하는 기온 40도 이상의 폭염과 태풍, 강진 등 재난을 떠올리면 소설이 이야기하는 미래의 자연 재해와 위기는 이미 현실로 다가온 느낌이다. 이 점에서 책이 시사하는 의미가 심장하다. 작가는 소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로 다른 우리가 차이를 이해하고 공존하기에 오늘도 우주에는 별이 반짝인다. 누군가를 밝혀주고 또 빛을 받으며 우리는 쓰임새를 완성한다. 그러니 당신도 세상을 이루는 별이자 빛임을 말하고 싶었다."(225쪽)
개인적으로 책을 덮으면서 머리에 깊게 박힌 대목은 따로 있었다. 이록의 형인 일록의 어머니가 전하는 '행복론'이다. 소소한 일상에 행복이 숨어있다는 말이다.
"행복은 함께 걷는 해안가 산책, 행복은 나눠 먹는 주먹밥, 행복은 나를 필요하다고 말해 주는 어떤 사람, 행복은 나처럼 애매하고 능력도 부족한 작은 아이, 행복은 내일도 나눠 받고 싶은 누군가의 서글픔, 참 별거 아니었다. 정말로 누구나 가질 수가 있구나.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195쪽)
요즘처럼 폭염이 계속되는 한여름에 즐길 공상 과학 소설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독서하면서 '이열치열'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