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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너무 덥다는 말이 자연스러운 요즘입니다. 더위와 함께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침부터 휴대전화가 폭염경보 알림으로 요란하다. 창문을 열면 뜨거운 열기가 확 밀려든다. 해마다 여름이 조금씩 길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계절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유치원 방학을 맞은 손자 로리와 나는 아침마다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늘 같다. 우리 동네 복합문화도서관과 집 앞 어린이도서관을 번갈아 찾는다.

사실 도서관은 평소에도 자주 가는 곳이다. 글을 쓰는 나는 혼자 있는 날이면 책을 읽고 글을 쓰러 도서관을 찾곤 했다. 무엇보다 혼자 있는 집에서 에어컨을 켜 둔 채 하루를 보내는 일은 마음이 편치 않다.

방학이 시작되고 교사인 며느리도 집에 있게 되면서 식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 종일 냉방에 의지하기보다 모두 함께 집을 나서는 편이 훨씬 건강하고 의미 있는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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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것이 우리 가족의 '도서관 산책'이다. 전력 소비를 줄이는 지혜이자, 시원한 공간에서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침 열 시만 넘어도 아스팔트가 달궈지는 날씨에 도서관은 너른 품을 내어주는 피서지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로리는 가장 먼저 어린이자료실로 달려간다. 책장 앞을 몇 바퀴나 서성이며 신중하게 책을 고른다. 좋아하는 자동차 그림책을 발견하면 먼저 편안한 자리에 앉아 혼자 책장을 넘긴다.

"이건 나 혼자 볼 수 있는 책이야."

아이에게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면서도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잠시 후 로리가 그림책 한 권을 들고 다가온다.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편하고 즐거운 곳이다.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편하고 즐거운 곳이다. ⓒ 신혜솔

"할머니, 이 책 읽어 주세요."

로리가 골라온 책은 <수박 수영장>이었다. 커다란 수박을 반으로 갈라 만든 수영장에서 아이와 어른들이 풍덩풍덩 뛰어노는 장면이 펼쳐지자 로리의 눈이 반짝였다.

"할머니, 나도 수박으로 만든 수영장에 가고 싶어요. 시원하고 달콤하고 정말 멋있을 것 같아요."

순간 나도 웃음이 났다. 아이에게 그림책은 종이 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들어가 뛰어놀 수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에어컨 바람보다 먼저 상상력이 더위를 식혀 주고 있었다. 나는 북극곰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얼음이 녹아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을 보며 바깥의 뜨거운 여름과 책 속의 차가운 북극이 묘하게 겹쳐졌다. 우리가 견디는 폭염과 북극곰이 잃어가는 얼음은 결국 하나의 지구에서 이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에 잠시 책장을 넘기는 손이 느려진다.

로리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3월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은 어느덧 1000권이 넘었다. 읽은 책마다 독서일기에 기록해 두고 있다. 책을 읽고 난 느낌 한 마디를 곁들인 그 기록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만나고 자라온 시간의 흔적이다. 책 한 권 한 권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세상을 이해하는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도서관은 가장 자주 찾는 공간이자 가장 든든한 쉼터가 되었다.

책을 읽다 쉬고 싶으면 2층 휴게실로 올라간다. 이 도서관은 휴게실에서 지하 수영장을 볼 수가 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모습을 내려다 보며 차가운 음료 한 잔을 마신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진다.

"할머니, 나도 물놀이하고 싶어요!"
"오늘은 책 속에서 먼저 놀고, 다음에 진짜 수영하러 오자."

로리는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수영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조금은 잊히는 모양이다.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니어도 하루는 금세 지나간다. 책을 읽고, 전시를 둘러보고, 수영장을 바라보며 쉬는 시간까지.

복합문화공간인 도서관은 폭염 속 시민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쉼터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부담 없이 머물 수 있으며, 책과 함께 상상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올여름 우리 가족은 특별한 휴가 계획이 없다. 대신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고 이야기를 나누며 여름을 보내고 있다. 집 밖을 나서면 고생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계절이지만, 우리에게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산책이자 시원한 피서가 되었다.

도서관을 나서는 길, 로리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묻는다.

"할머니, 내일도 도서관에 올 거지요? 내일은 주먹밥 도시락도 싸 올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좋지. 내일은 역사박물관부터 둘러보고 점심 먹은 다음 도서관에 오자."

그 말이 끝나자 로리도, 엄마도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폭염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여름의 풍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여름을 견디는 방법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여름#폭염#피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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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육아와 놀이,그리고 삶

사람과 풍경 사이에서 이야기를 찾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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