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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 웃고는 있지만 영혼이 빠져나간 듯 맥이 없다. 최근 잘나가던 주식시장에서 숫자가 불어나는 재미를 알아가던 며느리였다. 큰 욕심을 부렸다기 보다 월급만으로는 더디기만 한 살림에 작은 희망 하나를 보탰을 것이다. 그런데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동안 쌓였던 수익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최근 급락으로 계좌가 형편 없이 되었다는 것.

그 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화면 속 빨간 숫자는 내 돈처럼 반갑지만, 파란 숫자는 단순한 숫자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고, 가족에게 미안해지고, 왜 그때 정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아침이면 장이 열리기도 전에 휴대전화부터 찾는다.

지난 28일 코스피는 하루에 10% 넘게 하락했다. 29일에도 코스피는 5.98% 빠졌다. 언론 보도들을 보면, 기업의 실적이 하루아침에 그만큼 나빠졌다기 보다 공포가 공포를 부른 측면이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고 손실을 본 사람의 아픔까지 '심리적인 문제일 뿐'이라며 가볍게 말할 수는 없다. 계좌의 손실은 실제이고, 그 돈에 담아둔 계획과 기대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마음부터 지키자"고 말하고 싶다

 코스피가 전장보다 360.42p(5.98%) 내린 5,663.24로 마감한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이날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후3시30분 기준 15.8원 내린 1,446.7원을 기록했고, 코스닥은 43.17p(6.12%) 내린 662.68으로 마감했다.
코스피가 전장보다 360.42p(5.98%) 내린 5,663.24로 마감한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이날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후3시30분 기준 15.8원 내린 1,446.7원을 기록했고, 코스닥은 43.17p(6.12%) 내린 662.68으로 마감했다. ⓒ 연합뉴스

이럴 때 가까운 사람이 "괜찮아, 곧 오를 거야", "힘내"라고 말하면 오히려 더 서러울 수 있다. 때로는 함께 속상해 하고, 때로는 가벼운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무조건적인 긍정보다 낫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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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하지. 그동안 애써 모은 돈인데 안 속상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오늘은 투자 판단을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네 마음부터 지키자."

급락장에서는 자꾸 확인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두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꺼두고 달리기를 해도, 사우나에 다녀와도, 장바구니를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도 시장은 시장의 속도로 움직인다. 다만 그 두 시간 동안 내 심장은 조금 천천히 뛰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공포는 한 칸 물러난다. 시세를 보지 않는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감정이 나를 대신해 섣부른 판단의 버튼을 누르지 못하도록 만드는 응급 조치다.

작은 규칙을 정해보면 어떨까. 시세 확인은 오전과 장 마감 뒤 두 번만 하기. 잠들기 한 시간 전에는 증권 앱을 열지 않기. 일기를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오늘의 날씨, 계좌를 봤을 때의 감정, 당장 팔고 싶은 이유, 내일 후회할 가능성, 처음 이 상품을 산 이유를 적어본다. '두렵다', '억울하다', '화가 난다'고 솔직히 써도 된다. 숫자 옆에 마음을 적는 순간, 우리는 공포에 휩쓸리는 당사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관찰자로 한 걸음 옮겨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꼭 구분해야 한다. 지금의 손실이 생활비와 빚을 위협하는지, 아니면 당장 쓰지 않을 여유자금의 평가 손실인지. 전자라면 혼자 버티지 말고 가족과 상의해 위험을 줄여야 할 것이다. 후자라면 오늘의 공포만으로 처음 세운 계획을 모두 뒤엎지는 말아야 한다.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날이면 나라에 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수많은 사람의 노후자금과 자녀 교육비, 작은 집을 마련하려는 꿈이 함께 흔들리니 개인의 일만은 아니다. 시장의 구조가 공포를 키웠다면 제도와 금융 업계도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내일의 판단을 위해

 내 삶이 주식시장보다 크다는 사실을 되찾는 일.
내 삶이 주식시장보다 크다는 사실을 되찾는 일. ⓒ martinscardoso_unsplash on Unsplash

그러나 대책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할 것은 계좌보다 사람이다. 오늘의 수익률이 나의 능력을 모두 말해주지는 않는다. 어제의 고점에서 팔지 못했다고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고, 손실을 보았다고 가족에게 미안해 할 죄인도 아니다. 시장은 숫자를 매기지만 사람의 가치까지 매기지는 못한다.

나는 오늘 며느리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함께 걷고 싶다. 걷는 동안 주식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아이 이야기며 저녁 반찬 이야기를 하고, 여름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휴대전화를 다시 켰을 때 계좌는 여전히 아플지 모르지만, 내 곁의 사람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대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이 오래 이어져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을 먹지 못하거나 일상을 감당하기 힘들어진다면, 투자 문제로만 여기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겠다. 돈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손실을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 내일의 판단을 위해 오늘의 마음을 살려두자는 말이다. 견딘다는 것은 이를 악물고 호가창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 삶이 주식시장보다 크다는 사실을 되찾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주식#우울#레버리지#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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