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교사를 그만두고 자유와 예술의 삶을 택한 남자.멕시코 남부, 산호세 델 퍼시피코의 산중 호스텔에서 기타 연주로 하루를 시작하는 서른여덟 스페인 남자. 미켈 ⓒ 이안수
지난 6월 말, 해발 2600m 멕시코 산호세 델 퍼시피코(San José del Pacifico)의 호스텔 아침, 한 청년이 마당 끝 시에라 마드레 델 수르(Sierra Madre del Sur) 산맥의 첩첩한 먼 산을 마주하고 놓인 벤치에 앉아 기타를 뜯고 있다. 내가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
"작곡 중이에요. 이 품 너른 자연을 대하면 저절로 노래가 가슴에 차올라요. 이 거대한 엄마가 제게 주는 것을 받아 적는 거지요. 저는 좀 구식이에요. 이렇게 노트에 연필로 그것을 하거든요."
그는 컴퓨터 앞에서 AI가 프롬프트에 답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음악이 아니라 이렇게 자연이 답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미켈(Mikel), 성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오리올스(Orriols)였다. 바르셀로나 인근의 작은 도시, 카탈루냐 타라고나 지방 살로(Salou) 출신의 서른여덟 스페인 남자였다.
서른 살, 교사를 그만둔 날
그는 한때 초등학교 교사였다. 6세에서 12세 사이 아이들을 가르쳤다. 대학 시절부터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웨이터로, 테니스 강사로, 패들 강사(물 위에서 노를 사용하는 스포츠 지도자)로 일하며 생계를 스스로 꾸렸다. 그렇게 치열한 시간 뒤에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런데 교실은 그가 기대했던 곳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한 명 한 명에게 내가 원했던 만큼의 관심을 기울이며 모두를 함께 끌어갈 수 없었어요. 게다가 아이들도 더는 교사를 존중하지 않아요. 인터넷에서 모든 걸 찾을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학부모들의 지지도 예전 같지 않고요."
완전히 달라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로서의 기준을 바꾸지 않는 한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여겨졌다. 그는 교사 생활 5년 만인 서른 살 생일이 되는 날 교장을 찾아갔다.
"지난 5년간 교사로 살기 위해 했던 나 자신과의 투쟁을 여기서 멈추려고 합니다. 서른 살까지만요. 오늘이 그날이지만 학생들에게 대한 책임으로 이번 학기가 끝날 때까지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교단을 떠났다.

▲그의 작곡은 컴퓨터의 AI 프롬프트 대신 연필과 노트를 사용한다. ⓒ 이안수
2019년, 산호세 델 퍼시피코에서 시작된 것
그가 처음 멕시코를 찾은 것은 2019년이었다. 푸에르토 에스콘디도(Puerto Escondido)를 여행하던 중 버스를 타고 우연히 이 산속 마을에 닿았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속세가 아닌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내가 찾고 있던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어요. 이곳에서는 중압감이 사라지고 영감이 떠올라요."
이후 멕시코를 찾을 때마다 이곳으로 돌아와 같은 경험을 반복한다고 했다. 스물여덟에 그는 음악을 시작했다. 어떤 계기로 마음이 바뀌었는지는 스스로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그 무렵부터 여행과 예술을 향한 갈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기타는 그때부터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는 마순테(Mazunte)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곳의 한 호스텔에서 자원봉사를 약속했다고 한다. 8년 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멕시코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손님을 맞고, 침대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는 8개월 정도 멕시코와 중남미를 여행할 목적으로 스페인을 떠났다. 이미 테포스틀란(Tepoztlán)의 한 호스텔 캠핑장에서 1개월을 보냈다.
"저는 호스텔의 공동체적인 생활과 자유로움이 좋아요. 누군가는 음악을 연주하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죠. 또 누군가는 당신처럼 글을 쓰기도 하고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자발적인 일들이에요. 의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일들을 하죠. 저는 작은 텐트 캠핑에 하루 150페소를 지불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질까요? 멕시코 마법 같아요. 그 마법은 자연만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죠. 늘 웃고 낯선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주려고 해요. 자신들도 가진 것이 많지 않으면서요. 그런 편안함은 제 마을에서는 찾기 힘든 풍경이에요."
지난 7년간의 멕시코 여행과는 달리, 이번 여행에서는 한 가지 목적을 더 가지고 왔다고 했다.
"오악사카 자연 속 어디에 공동체의 원형이 담긴 제 공간을 만들 땅을 찾는 거예요. 제가 지은 공간에서 음악 공연이 이루어지고 카카오 체험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하지만 그것이 모두의 즐거움이 되는 그런 곳을 만드는 것이에요. 하지만 또 다른 목적이 하나 더 있는데 한 여성을 제 곁에서 제가 모시는 거예요."
가족이라는 이름의 재구성
그의 가족사는 단순한 혈연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를 낳은 어머니는 그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그를 거둔 이가 있었다. 독신으로 살고 있던 53세의 여성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충격과 불안, 그리움 같은 정서는 프란시스카(Francisca)라는 여성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녀 손자 같은 그를 입양해 귀한 외동아들로 키웠다.
"제가 12살이 되던 해에 외삼촌께서 저를 데려갔어요. 외삼촌께서는 제가 형제들이 있는 평범한 가정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3남 1녀의 외삼촌 가정의 맏이가 되었죠. 어쨌든 저는 두 번 입양이 된 셈이죠."
이후 외삼촌과 외숙모가 부모가 되고 네 명의 외사촌들은 그의 동생이 되었다. 후에 외삼촌은 이혼후 재혼을 하게 된다.
"제게는 제가 존재를 알지 못하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제외하고 한 명의 아버지와 네 명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네 명의 동생을 뒀는데, 그들이 모두 성인이 되고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런데 그의 안정과는 달리 그의 재입양은 프란시스카에게 아들을 잃는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저는 주말마다 어머니, 프란시스카에게 가서 살았어요. 그리고 매일 꼭 전화를 드렸고요."
그와 모든 이들의 배려와 노력 덕분에 프란시스카는 크게 정서적 상처가 덧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프란시스카가 자신을 돌본 모든 정성을 잊을 수가 없다. 옷 가게 점원과 신발가게를 운영하며 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고 그의 모든 선택을 지지했다.
"그녀의 지지로 가능했던 교사를 그만둔다고 할 때도 내가 원한다는 이유로 저의 편이 되어주셨어요. 그 후 제가 세계를 여행하면서 스페인을 떠나 있을 때도 어머니는 저를 보고 싶어 하시지만, 제가 이걸 원한다는 것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고 계시므로 제가 없는 시간을 참아주셨어요."
하지만 그는 지난 4년간 스페인을 떠날 수 없었다. 프란시스카 어머니께서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저는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기 싫었어요. 보호시설보다 어머니가 익숙한 가정에서 생활하기를 원했죠. 지난 4년간 어머니 곁에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고 저를 대신해 어머님을 24시간 케어할 수 있는 두 분을 모셨어요. 한 분은 우루과이에서 오신 분인데 주중에, 한 분은 멕시코 여성인데 주말에 어머님을 보살피세요. 다행히 어머님 댁에 방이 4개이므로 두 개는 어머님과 제가, 다른 두 개는 그 분들이 사용할 수 있어서 24시간 안심할 수 있게 되었죠."
8개월간의 이번 여행은 자신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 꿈과 기억 상실로 3살을 향해가고 있는 여든여덟 어머니를 직접 모실 수 있는 자리를 찾는, 행복한 미래를 위한 출장 같은 여정이기도 했다.
"당신은 사랑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Gracias Madre Tierra (감사합니다, 어머니 대지).긴 이야기의 끝에 그의 노래를 들여주었다. 그가 자작곡한 사모곡이기도했다. ⓒ 이안수
그가 자작곡 한 곡을 들려주었다. 멕시코 여행에서 쓴 곡이었다. 더 느리게, 더 자유롭게, 그리고 땅과 더 깊이 연결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어머니들을 향한 그리움 가득한 독백이기도 했다.
"어머니 대지여, 감사합니다.
당신은 사랑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바다를 건너 나를 찾아 떠나리라,
만 개의 장소에서 잠들며 당신을 느끼리라,
당신이 입은 모든 상처를 위해 싸우리라,
어떤 값에도 당신을 팔지 않게 하리라.
당신이 내게 준 매 순간을 살아내리라,
내게 필요 없는 것은 내려놓으리라,
당신이 주는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리라,
당신이 베푼 모든 것을 돌보리라."
- 그의 자작곡 '감사합니다, 어머니 대지'의 가사 부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