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됐다! 헉.. 의료급여는 아니래ㅠㅠ"2021년 세종시 정부청사의 보건복지부 담벼락에 기초법행동 회원들이 부양의무자기준에 폐지하는 피켓을 붙였다. ⓒ 빈곤사회연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선정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하나는 본인의 소득인정액(소득과 자산)이 선정기준 이하여야 하고, 두 번째로는 부양의무자기준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은 본인의 소득과 재산 외에 따로 사는 1촌 직계혈족과 그들의 배우자(사위, 며느리, 계부, 계모)의 소득, 자산을 본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아직도 안됐을 줄이야
이미 폐지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은 여전히 남아있다. 2015년 교육급여에서, 2018년 주거급여에서 폐지된 이후 2021년 생계급여에서 완화되었으나 의료급여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중증장애인에 대한 완화만 추가됐을 뿐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지금까지 무척 여러 번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선언하고 자찬해왔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은 헷갈린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된거 아니야?' 그런데 막상 복지신청을 하려고 찾아간 사람들은 진땀을 빼고 온다. '부양의무자기준, 아직도 있네!' 하고 말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오랫동안 복지사각지대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분류되어 왔다. 따로 살고 있는 자녀나 부모의 소득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다 할지라도 실제 부모나 자식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탈락자는 사각지대 가운데에서도 악성 사각지대 평가를 받아왔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일부 급여에서 폐지되고, 또 완화도 되었으니 이정도면 괜찮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폐지의 효과로 지난 10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숫자는 늘어났다. 그러나 늘어난 사람의 대부분은 주거급여만 받거나 의료급여를 이용하지 못하는 '미충족 사각지대'다.
부양의무자기준의 '진짜 얼굴'
현장에서 만나는 부양의무자기준의 현실은 단지 자식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봄, 한 공공임대주택 단지에서 만난 할머니는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의료급여를 신청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픈 몸으로 매일 끙끙대다보니 차라리 죽음이 오길 바란다는 할머니에게는 그리 소득이 높지 않은 딸이 한 명 있다.
딸의 소득을 기준으로는 부양의무자기준을 너끈히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딸에게 정식으로 이혼하지 않은 남편이 있다. 십 년 이상 따로 살았지만 이혼 절차를 밟을 여력이 없었다. 할머니가 수급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 전원의 '금융정보제공동의서' 서명이 필요한데, 할머니는 본인의 수급신청을 위해 십 년 넘게 연락하지 않은 사위의 서명을 받아오라고 딸에게 청할 수 없었다.
이렇듯 부양의무자기준이 빚는 현실의 모순은 제도가 가족관계에 직접 개입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여러 이유로 어긋난 가족관계는 복지신청 가능 여부로 전이되고, 수급신청이 필요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구원에게 이 관계의 결과가 전가된다. 딸을 보호 하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이 본인의 병원 이용 포기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 실제 부양의무자기준이란 그런 모습이다.
시민들과의 약속, 기어코 10년을 미룰 것인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의 첫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박능후 장관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농성장을 찾아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완수하겠노라 약속했다. 단지 특정 정권의 약속이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약속이라 믿었지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됐다. 2018년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이후에는 급여별 폐지 수순을 멈춰버렸다. 올해도 계획이 나오지 않는다면 2027년이 되는데,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약속이 10년간 지켜지지 않았다니. 황당한 일 아닌가.

▲2017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장을 찾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전 장관박능후 전 장관이 농성장을 찾아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의 단계적 폐지를 약속했다 ⓒ 빈곤사회연대
현재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의 경우 소득과 재산기준이 완화되어 부양의무자 가구의 연소득이 1억 3천, 자산이 12억 이하인 경우 수급자가 될 수 있다. 그래도 당연히 사각지대는 발생한다.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소득이 1억이 넘는 가구는 전체 가구의 24%에 달한다.
의료급여의 경우 중증장애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화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수급자 숫자 또한 동일하다. 한국의 빈곤율은 15%에 달하지만, 의료급여 수급자 숫자는 인구의 3%가 채 되지 않는다. 전국민 건강보험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당하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의료급여가 만들어졌지만, 의료급여와 건강보험 사이에는 수많은 사각지대가 있다. 그 중 핵심사각지대가 바로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발생한다.
부양의무자기준, 이제 제발 폐지하면 안 될까?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면 자산을 모두 가족에게 이전하고 수급을 신청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신청 이전 자산 기록을 기간 제한없이 조회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주장이다. 즉, 이전에 불명확한 자산 이전이 있는 경우 이를 소진했다고 인정받기 전까지 수급자가 될 수 없다.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부정수급은 제도 개선과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어떤 제도나 부정수급자가 있다. 작은 부정 때문에 제도 전체의 개선을 막는 것은 제도의 효율과 신뢰를 해친다.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된 미래는 무엇일까? 간명하다. 본인의 소득과 재산만이 복지제도 선정의 기준이 된다. 타인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소득과 재산만 보는 것,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미래를 앞당기는 일, 지금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논의해야 한다.

▲"연락 안 하는 엄마있다고 수급자가 안 된다고 한다"2020년 7월 3일 열린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장 앞에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오랫동안 수급을 신청하지 못했던 당사자가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빈곤사회연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윤영 활동가는 빈곤사회연대 소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