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을 파는 게 힘들다고 하지만, 읽기도 쉽지 않은 시대다. 인공지능(AI), 유튜브 숏츠 등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게 많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5>에 등장하는 장난감들이 전자기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넷플릭스와 인스타그램이 있는 시대에 책을 사수하는 게 덧없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 곁에는 굳이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시각, 청각적인 자극을 주는 유튜브가 있고, 질문 하나에 맥락을 파악한 답변을 주는 AI가 있다. 어렸을 때는 독서를 향한 목표도 더 컸고, 읽는 것도 힘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마음을 먹고 책을 집어야 읽을 수 있다. 책도 전자책, 오디오북 등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그 앞날이 걱정되곤 한다. 독서는 취미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읽는 여성의 역사> 표지 올해 6월에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출판된 <읽는 여성의 역사> 표지
<읽는 여성의 역사> 표지올해 6월에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출판된 <읽는 여성의 역사> 표지 ⓒ 어크로스

<읽는 여성의 역사>(2026년 6월 출간)는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주진 않지만 생각을 전환하게 한다. 이 책은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책 읽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 '책을 왜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바꾼다. 지난 21일 북토크에서 이 책을 쓴 최현미 작가는 "어떤 작품을 읽을 때 읽기의 역사 속 어떤 상황에서 나온 작품인가를 알고 읽으면 훨씬 재밌을 것"이라며 출판 동기를 밝혔다.

최 작가는 책의 미래가 건재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책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세계는 책만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 속 많은 여성의 독서를 책에 담았다면, 북토크에서는 현재의 독자들이 제인 오스틴과 박완서, 빨간머리 앤과 함께 그 시간의 주인공이 됐다. 한 공간에 모인 작가와 독자는 책을 이정표 삼아 독서의 세계를 함께 여행했다.

독서의 주변인이었던 여성들, 주인공이 되다

AD
<읽는 여성의 역사>는 단순히 '여성'이나 '책'을 소개하기보다 여성 독자들이 구성해 온 독서 문화를 주목한다. 책의 시작인 1부와 2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편견과 억압 속에서도 책을 읽어온 여성들을 조명한다. 지식과 책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때 책을 향한 열망을 보여준 여성들의 이야기에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하게 된다.

3부에서는 책을 지킨 여성들에 힘입어 한 단계 나아간 여성들을 알 수 있다. 최현미 작가는 여성 독자(women readers), 여성 작가(women writers), 여성 주인공(women protagonists)을 '3W'라고 부르며 강조했다. 더불어 "소설과 생활서 등 여성들의 책이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귀중한 보물"이라고 설명했다. 4부는 이야기를 지금까지 읽어온 여성들에게 또 한 번의 도전을 권유한다.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까지. 여성들이 나아갈 길은 무한히 펼쳐 있다.

책은 여성들을 설명하고, 전달한다. 역사를 다뤘기 때문에 매우 많은 이름이 나오는데도 서술은 군더더기 없다. 브론테 자매, 버지니아 울프 등과 같은 익숙한 이름이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잘 몰랐던 이름이 나오면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최현미 작가는 북토크에서 분량으로 인해 다루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책과 함께한 여성들은 억압 받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남성들이 무시한 소설로 자신의 삶과 사회를 담았고 혁명을 일으켰다. 읽는 여성들은 결국 쓰는 여성이 됐고, 남성들이 논의와 대화에 끼워주지 않자 '소로시스'(Sorosis)와 같은 대체 집단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여성들의 용기와 집념은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와 여성의 목소리를 키웠다.

최현미 작가가 소개한 18세기에 등장한 순회도서관은 읽는 여성들의 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여성 독서 혁명의 폭발적인 인프라로 자리 잡아 역사에 남았다. 현재의 여성들은 그런 역사의 발자취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둘 써 내려가고 있다. <읽는 여성의 역사>는 그 이어지는 역사의 일부다.

같이, 함께하는 독서

<읽는 여성의 역사> 북토크 지난 21일 서울 중구 알라딘 빌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제공된 읽는 여성 빙고 보드와 질문 카드, '읽는 여성의 아카이브 북마크'다. 읽는 여성 빙고 보드는 출판사 어크로스의 SNS(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읽는 여성의 역사> 북토크지난 21일 서울 중구 알라딘 빌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제공된 읽는 여성 빙고 보드와 질문 카드, '읽는 여성의 아카이브 북마크'다. 읽는 여성 빙고 보드는 출판사 어크로스의 SNS(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한별

북토크는 서울 중구에 있는 알라딘 빌딩 1층에서 열렸다. 비가 오던 날이었지만, 북토크가 시작된 저녁에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었다. 차분하게 책과 미처 책에 다 담지 못한 내용을 설명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명쾌했고, 청중의 눈빛은 반짝였다.

독자들은 2권 등 후속편이나 미처 다뤄지지 못한 여성들에 대해 질문했고 , 독서에 대한 고민도 나눴다. 예전만큼 책 읽기가 힘들다는 독자의 고민에 최현지 작가는 "책을 읽는 법은 굉장히 다양하다. 넘겨 읽거나 띄엄띄엄 읽어도 괜찮다. 꼭 완독하겠다는 부담보다는 유연하게 생각해도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함께 진행한 '읽는 여성 빙고'는 애독가들이라면 눈을 반짝 빛낼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날의 북토크는 단순히 저자와 독자의 만남이 아닌 독자들의 연대와 에너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독서란 오롯이 홀로 읽어내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책과 북토크를 통해 함께 독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읽는 여성의 역사>는 그동안 독서 문화를 지켜온 여성들을 향한 기록이면서 앞으로 계속해서 책을 읽어낼 여성들을 향한 찬사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책 속의 여성들과 함께해 외롭지 않았다. 함께했던 여름 밤의 기억처럼, 여성의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역사 속 수많은 여성도 그들의 족적을 통해 함께 했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다. 현재 삶의 토대가 된다. <읽는 여성의 역사>는 그 증거다. 억압 받고, 실패 속에서도 지켜낸 여성들의 독서는 어떤 사회 변화에도 계속됐다. 이름을 남기고, 지식을 쌓고, 소설을 통해 재미를 찾고, 남성 기득권에 저항해온 여성 독자의 역사는 이 책으로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s://blog.naver.com/burn_like_a_star에도 실립니다. 필자 블로그와 인스타그램(@a.star_see)에 취재 후기와 함께 공유됩니다.


읽는 여성의 역사

최현미 (지은이), 어크로스(2026)


#읽는여성의역사#최현미#어크로스#여성독자#북토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별 (onestar720) 내방

별안간 마주한 순간의 반짝임을 기록합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