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본 건 영화사의 소개 때문이었다. 시사회를 알리는 메일에서 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은 굵은 글씨에 밑줄까지 쳐가며 영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누나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현관문에 자물쇠를 채워 둔 부모와 그 가족의 시간을 20여 년간 담아낸 남동생의 사적인 기록'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조현병이 있는 누나, 그녀를 집에 가둔 부모, 그를 기록한 동생이 있다. 그동안 이와 같은 이야기는 그저 신문 기사 속 활자로, 그것이 사건화 되었을 때나 한두 번씩 들어보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도저히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러나 알고 있지는 못한 것.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바로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아야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스틸컷 ⓒ 엣나인필름
의대 6학년에 발병한 조현병... 모든 게 달라졌다
영화는 기대한 것과 달랐다. 평범한 가정을 붕괴시키는 몹쓸 병과 그를 떠맡은 가족들의 지난한 간병기를 기대했던 걸까. 이 영화를 보며 느낀 당혹감과 충격이, 배신당한 기대가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카메라를 든 감독 후지노 토모아키가 직접 제 가정사를 풀어놓는 것으로 출발한다. 모든 게 시작된 건 1983년의 어느 날 밤이다. 한밤중 갑자기 누나가 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안방으로 갔고, 한참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쏟아 놓았다. 그때 누나는 의대 6학년이었다. 오랜 꿈이었던 의사가 되기 직전이었다.
동생인 감독의 눈에 비친 누나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꽤 잘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런 그녀에게 첫 고비는 대학입시였다. 의대 문턱에서 번번이 고꾸라져 입학까지 4수나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입학했으니 다음은 탄탄대로일 터였다. 모두가 그렇다고 믿었다.
후지노 토모아키의 집안은 정말이지 남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의사였다. 1930년대생으로 패전 뒤 일본에서 청년기를 보낸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고 졸업 뒤엔 임상의가 아닌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돈보다는 명예를 좇았던 부부의 길을 딸 또한 따라서 걷고자 했다. 그것이 누나가 의대를 고집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누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거듭했다. 당시엔 조현병이란 병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던 때라, 원인을 진단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루는 아버지가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제자의 병원으로 누나를 데려갔는데 1시간 정도가 지난 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 돌아왔다. 하지만 감독의 눈에는 누나가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제 눈엔 그렇게 보이는 것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무 문제가 없는 양 외면했다. 그렇게 누나는 집에서 지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스틸컷 ⓒ 엣나인필름
갇혀 지낸 세월, 40년
감독이 느낀 공포는 대단한 것이었다. 수시로 발작하는 누나를 보며 언젠가는 제가 누나를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고 결심한 날도 있었다. 의사인 부모가 철벽을 치고 있는 탓에 누나는 세상과 차단된 채 지냈다.
대학에 진학해 깊은 우울 증상을 보였던 감독이 저를 봐주던 상담사로부터 누나를 봐주겠다는 말을 듣고 약속을 잡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약속한 날에 오기로 했던 어머니가 혼자 와서는 '상담사의 논문이 부실하여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통보만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변화는 요원했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얼마쯤의 시간이 흐르고,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감독이 본격적으로 제 집의 이야기를 찍기 시작한다. 부모의 완고한 태도로 도저히 바꿔낼 수 없는 것을 대신 기록하기라도 한 것이다. 부모는 그저 감독이 되려는 아들이 집안에서 가족을 대상으로 직업적 훈련에 나서는 것쯤으로 여겼으나 이 프로젝트는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이자 부모란 권위에 도저히 틈입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식이 누나를, 또 가족을 구출할 수는 없더라도 그로부터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 없다는 절박한 각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발병하고 40년 가까운,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하고도 20년에 달하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누나는 백발의 할머니처럼 변했다. 부모의 노쇠는 그보다도 변화가 역력하여 힘으로도 딸을 당해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엔 아버지가 혼자 쓰러져서 머리에 혹이 나고 이빨이 부러지는 일까지 있었다. 어머니의 말에서도 도저히 오랜 연구자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만큼 앞뒤가 맞지 않거나 비약하는 대목이 수시로 등장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스틸컷 ⓒ 엣나인필름
손바닥으로 하늘 가렸더니...
영화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통하여, 또 곁에서 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봄으로써 집안의 문제를 자연스레 드러낸다. 완전히 미쳤다고 해도 무방한 누나의 모습과 그럼에도 문제가 없는 양 천연덕스레 대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의사국가고시 시험과 관련한 책자를 가져와서 누나에게 주고 공부를 시킨다고도 한다.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지조차 못하는 누나에게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감독과 마찬가지로 보는 이 모두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는 모습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이지 누나에게 큰 문제가 없다는 듯이 군다. 그렇다고 있는 문제들이 사라질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조현병의 증상들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노쇠한 부모가 더는 막아내지 못하는 문제들이 이어진다.
영화가 처음 선언한 것과 같이 감독은 누나에게 조현병이 발병한 이유를 찾지 않는다. 또 사람들에게 조현병이란 이러한 것이라고 알리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제 집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할 뿐이다. 오로지 그것만으로도 관객은 스스로 묻고 답하며 이들에게 벌어지는 문제를 뒤따른다.
아마도 같은 병을 앓는 통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을 테다. 부모 모두가 의사라는 것이 도리어 병의 진단과 적절한 처치를 막는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일들은 이야기를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과 가정의 특수한 문제로 귀결시키는 듯 보인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포스터 ⓒ 엣나인필름
질문하는 영화의 힘
한편으로 이 이야기는 보편성도 갖는다. 명백한 문제를 외면하고 감추는 것이 오로지 이들만의 행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현병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좋지 못한 인식을 가진 질병과 장애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 아래 깔린 누군가의 편견과 고정관념일 수도, 혹은 비틀린 명예며 책임감일 수도 있다. 인간이기에 갖게 되는 문제들이 그 집합인 어느 가족과 특정 사회에서 발현될 때, 역시 인간인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가족과 사회 또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 가족의 비틀린 순간들이 영화를 보는 우리와 관계 맺는 방식이 바로 그러하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답을 내리는 영화가 아니다. 제목이 보여주듯 관객에게 질문하는 다큐다. 주어가 없는 것부터가 그렇다. 관객은 생각하게 된다. 처음엔 감독 자신의 것인 듯했던 이 물음이 어느 순간 아버지였다가 어머니가 되고, 다시 이 가정을 둘러싼 사회의 것이 된다. '너는 어떻게 해야 했어'를 넘어 '우리는 이렇게 해야 했다'로 이어지는 답이야말로 좀처럼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이 영화의 완성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는 과연 알고 있는가? 조현병을, 그를 겪는 이와 그 가족들을, 그를 대하고 비추는 언론과 우리 사회의 태도를 알고 있는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가 갖는 또 하나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