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언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김상헌 변호사2026년 6월 2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초법행동은 중생보위에 기초법 개혁을 위한 요구안을 전달했다. ⓒ 빈곤사회연대
법률가로서 복지제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법 문언만 뜯어봐서는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운 개념을 하나 꼽아보자면 단연 '기준중위소득'이다. 기준중위소득의 이름만 보면 이건 분명 통계적 개념이다. '기초생활보장법'도 '기준 중위소득은 통계법에 따라 국가데이터처가 공표하는 통계자료의 중간값에 최근 가구소득 평균 증가율을 반영하여 산정한다'고 규정하여 통계적 개념이라고 확인해주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준중위소득은 실제 통계와는 관련이 없어보인다. 2025년, 국가데이처가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 상 1인 가구 중위소득은 290만 9천 원이다. 반면 '기준중위소득'은 239만 2천원이다. 즉, 실제 중위소득이 기준중위소득보다 약 21.6% 높다. 이 정도면 사실상 기준중위소득은 실제 통계값과는 상관 없는 개념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2014년 12월 개정(2015년 시행) 이전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6조를 보자. 당시 법률은 보건복지부장관이 국민의 소득, 지출,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여'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도록 규정했다. 그 결과 최저생계비는 사람들의 실제 삶과 유리된 채 재정 당국의 예산 사정에 맞춰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이른바 '고무줄 잣대'로 전락했다.
이러한 행정 편의주의적 구태를 타파하기 위해 단행된 것이 바로 2015년의 대대적인 법 개정이었다. 입법자는 장관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되던 '최저생계비'라는 모호한 개념을 폐기했다. 대신, 통계청이 공표하는 가구 소득의 중간값이라는 통계에 기반한 '기준중위소득'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했다.
이 개정은 단순한 용어의 변경이 아니다. 빈곤의 기준선을 국가의 '예산 사정'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통계)'에 단단히 묶어두겠다는 입법자의 결단이었다. 빈곤의 척도를 행정부의 편의가 아닌 실증적 통계에 두겠다는 법률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현재 기준중위소득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결정'되고 있으며, 실증적 통계값과의 오차는 늘어나고 있다.

▲"기분중위소득이라고 해라"2021년 세종시에서 열린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장 앞에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이 얼굴모양 피켓을 설치했다. ⓒ 빈곤사회연대
국가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착시유발'
국가는 왜 법률의 명령까지 무시하며 통계를 외면해 왔을까. 아마 보건복지부와 기획예산처 등 정부부처들은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명료하다. 국가는 재정 상태 등을 빌미로, 통계적 개념을 오염시켜가며 헌법적ㆍ법률적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ㆍ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보장급여법' 제4조 제3항은 '국민의 다양한 복지욕구를 충족시키고 생애주기별 필요에 맞는 사회보장급여가 공정ㆍ투명ㆍ적정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사회복지를 증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사회보장급여가 불공정ㆍ불투명ㆍ부적정하게 제공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이다. 현재 국가는 통계적 개념을 조작하여, 복지 기준선을 끌어내려 자신들이 헌법적ㆍ법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복지증대가 아니다, 기준의 '정상화'다
복지 예산의 현실화를 요구할 때마다 기획예산처 등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방어 논리가 있다. 바로 복지 지출을 한 번 늘리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영구적 복지 증대 불가론'이다. 이들은 기준중위소득을 실제 통계 수준으로 올리면, 국가 재정에 감당할 수 없는 영구적인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며 공포감을 조성한다.
하지만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은, 현재의 조작된 기준중위소득과 실제 통계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빈곤층에게 없던 혜택을 주는 '복지 증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국가가 예산을 핑계로 임의로 깎아내고 지연시켜 온, 법률이 애초에 의도했던 상태로 되돌리는 '기준의 정상화' 작업일 뿐이다. 통계와의 시차를 의도적으로 방치하며 책임을 미뤄온 것은 다름 아닌 국가다. 제때 수정되었어야 할 기준을 이제서라도 본래의 취지에 맞게 정상화하자는 요구를 두고 '영구적 복지 증대'로 매도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
더욱이 재정 당국이 내세우던 '예산이 부족하다'는 유일한 명분마저 사라졌다. 정부는 최근 역대 최대 수준의 세수를 기록했다. 지금이야말로, 재정적 충격 없이 기준중위소득의 왜곡을 실제 통계와 맞출 수 있는, '정상화'의 최적기다. 적기가 왔음에도 기준중위소득의 정상화를 외면한다면, 이는 국가가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취약한 국민을 방치하고 싶을 뿐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그림의 떡"2022년 7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가 열린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기초법행동이 오른 물가를 보여주는 탑을 쌓았다. ⓒ 빈곤사회연대
지금, 여기의 '사람'을 향한 투자
국가의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지닌 가치판단의 방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첨단 산업을 육성하거나 대규모 인프라를 짓는 수십조 원의 자금은 '미래를 위한 핵심 투자'이지만, 벼랑 끝에 사는 사람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은 '재정 낭비'이다.
그러나 국가 공동체의 가장 핵심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다가올 미래의 이익을 좇아 산업에 투자하는 것 못지않게 중시되어야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생존의 위협을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투자다. 극단적 빈곤으로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무너진 삶은 사후적으로 복구할 수 없다. 예산이 많을 때에도 무시되는 이들의 '기초적 삶'은 도대체 언제 보장될 수 있는 것인가.
헌법 제10조가 선언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국가가 경제적 논리로 함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이다. 한 명의 사람이 추락하지 않도록 단단한 바닥을 만들어주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국가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헌법적 의무이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기준중위소득을 통계값에 부합하도록 정상화해주기를 바란다. 나아가 보건복지부와 기획예산처는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위해 복지예산을 현실화해주기를 바란다. 경제적 양극화가 공동체를 와해하려는 현재 이 시점에서, 하나의 편지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띄워본다.
이 편지는 올해 기준중위소득 결정에 앞서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띄우는 아홉 편의 편지 중 하나이다. 회의를 공개하지도, 수급권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도 않는 폐쇄적인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이 편지가 닿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상헌 변호사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