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주요 내용 비교 ⓒ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은 광고상품이 아니라 공적 자산이다. 시청자의 권익은 방송사업자의 수익보다 앞선 가치이며, 방송 공공성은 시장논리로 대체될 수 없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방송 공공성과 시청권을 훼손할 우려가 큰 이번 방송광고 규제완화 입법예고를 철회하고, 방송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시민의 시청권을 함께 보장할 수 있는 종합적인 미디어 정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아래 방미통위)가 6월 15일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7월 27일까지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한다. 방송프로그램 편성시간당 광고시간 규제를 폐지하고 하루 단위 광고총량 규제로 전환하는 한편, 중간광고가 허용되는 프로그램의 최소 길이를 현행 45분에서 30분으로 줄이고 프로그램 길이에 따른 중간광고 허용 횟수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자막광고와 가상광고, 간접광고의 크기도 화면의 4분의 1에서 3분의 1까지 확대하고, 가상광고 허용 대상 역시 어린이·보도·시사·논평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으로 넓히겠다고 한다.
방미통위는 방송광고 시장의 침체에 대응하고 방송시장 활성화와 양질의 콘텐츠 제작재원 확충을 위해 광고규제를 개선·보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방송산업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종합대책이 아니라 방송사업자가 프로그램 곳곳에 광고를 더 많이, 더 크게, 더 자주 배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전면적인 규제완화에 불과하다. 광고 확대가 시청권과 프로그램의 완결성, 방송의 공공성에 미칠 영향은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사업자의 단기 수익 확대를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상위법 목적에 역행하는 시행령 개정안
방송법 제1조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민주적 여론형성과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며,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이라는 방송법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방송법 시행령은 이러한 상위법의 목적과 원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하위법령이다. 따라서 시행령을 개정할 때 최우선 기준은 방송사업자의 수익 확대가 아니라 시청자 권익과 방송의 공적 책임,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여야 한다.
이번 개정안은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방송법의 목적은 뒷전으로 한 채 사업자의 광고수익과 시장 활성화만을 앞세웠다. 광고시간과 횟수, 크기와 허용범위를 일제히 확대하면서도 시청자의 불편과 광고 회피권, 프로그램의 완결성, 광고와 콘텐츠의 명확한 구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청자의 화면과 시청시간을 더 많은 광고에 내주는 것이 방송의 발전이나 공공복리 증진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시청자 권익과 방송 공공성을 후퇴시키는 이번 개정안은 방송법의 목적을 구현하기는커녕 그 근간을 뒤흔드는 조치다.
시간당 규제 폐지는 광고의 '집중 편성'을 허용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 단위의 변경이 아니다. 시청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광고량은 하루 평균이 아니라 자신이 시청하는 프로그램과 시간대에 얼마나 많은 광고가 몰려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하루 총량만 지켰다는 이유로 특정 프로그램에 광고를 집중한다면 시청자의 선택권과 시청 흐름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방미통위는 시간당 규제 폐지로 광고가 어느 정도 집중될 수 있는지, 시청자 불편과 방송 이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지 않았다. 방송사가 확보할 추가 광고수익이 실제 콘텐츠 제작으로 얼마나 이어질지에 대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입법예고 자료는 규제영향분석서 항목을 '규제대상 없음'으로 처리했을 뿐, 광고 확대가 시청자에게 미칠 영향은 분석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은 사업자에게는 규제완화일 수 있지만 시청자에게는 광고 노출 확대와 시청환경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이다. 시청자에게 돌아갈 영향을 검증하지 않은 채 사업자의 재원 확대 효과만을 전제로 규제를 풀겠다는 것은 정책기관의 책임 있는 태도라 할 수 없다.
30분 프로그램까지 중간광고, 방송법의 분리 원칙마저 흔든다
중간광고 허용 프로그램의 최소 길이를 45분에서 30분으로 줄이고 프로그램 길이에 따른 허용 횟수를 늘리는 것도 문제다. 이제 비교적 짧은 프로그램에서도 방송 도중 광고가 삽입될 수 있고, 긴 프로그램일수록 시청 흐름이 여러 차례 끊길 가능성이 커진다.
방송법 제73조 제1항은 "방송사업자는 방송광고와 방송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광고와 프로그램의 구분은 단순한 형식상의 문제가 아니다. 광고가 프로그램을 침범하거나 프로그램인 것처럼 위장하지 못하도록 하고, 시청자가 광고와 콘텐츠를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방송의 기본원칙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원칙을 강화하기는커녕 광고가 프로그램 내부로 더욱 깊숙이 들어오도록 허용한다. 중간광고는 프로그램 앞뒤에 붙는 광고와 달리 시청자가 콘텐츠를 계속 보기 위해 사실상 피하기 어려운 광고다. 허용 범위를 넓히고 횟수를 늘리면 광고는 프로그램의 흐름을 반복적으로 끊고, 시청자는 광고를 보지 않고서는 프로그램의 나머지 내용을 시청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그램의 서사와 흐름, 제작자의 편집 의도를 광고 편성에 종속시키고 방송법이 보호하려는 프로그램의 독립성과 완결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방송프로그램이 하나의 완결된 콘텐츠가 아니라 중간광고를 배치하기 위해 나뉘고 재구성된다면 프로그램과 광고의 구분 원칙도 형식적인 고지에만 머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개정안은 중간광고 시작 전 고지 자막의 크기 규제까지 폐지하려 한다. 중간광고를 확대하면서 광고 고지 기준은 완화하는 것은 시청자의 알 권리보다 사업자의 편의를 우선한 조치다. 이는 방송법 제73조가 요구하는 광고와 프로그램의 명확한 구분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화면 3분의 1을 광고에 내주면서 시청권 보호 말할 수 있나
자막광고와 가상광고, 간접광고의 크기를 화면의 4분의 1에서 3분의 1까지 확대하는 것은 시청자의 화면을 사업자의 광고공간으로 더 많이 내주는 조치다. 데이터방송채널 최초화면의 자막광고 역시 같은 수준으로 확대된다. 화면의 3분의 1은 결코 작은 면적이 아니다. 자막광고가 영상이나 자막, 재난·생활정보 등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을 가릴 수 있고, 가상광고와 간접광고가 프로그램 자체보다 더 두드러질 가능성도 커진다. 광고의 크기와 노출 정도가 커질수록 시청자가 프로그램과 광고를 명확히 구분하기도 어려워진다.
특히 가상광고 허용 범위를 어린이·보도·시사·논평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으로 확대하면 드라마와 예능은 물론 교양 등 다양한 장르에서 광고가 프로그램 영상의 일부처럼 등장할 수 있다. 방송법 제73조가 광고와 프로그램의 명확한 구분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시행령은 오히려 광고가 프로그램 화면과 내용 속으로 더 깊숙이 침투하도록 허용하려는 것이다.
이미 간접광고와 협찬이 출연자의 대사와 행동, 프로그램의 구성과 연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광고의 크기와 허용범위가 확대되면 방송 제작자가 시청자보다 광고주 요구를 우선하고, 프로그램의 내용과 편집이 광고 노출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왜곡될 위험도 커진다. 광고가 프로그램의 일부처럼 보이고 콘텐츠가 광고 노출을 위한 수단으로 변한다면 방송법 제73조의 분리 원칙은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광고수익 증가가 양질의 콘텐츠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방미통위는 광고규제 완화가 양질의 콘텐츠 제작재원 확충으로 이어질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광고 허용시간과 크기를 확대해 얻은 추가 수익이 제작환경 개선이나 제작 노동자의 처우 향상, 공익적 프로그램 확대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추가 수익의 콘텐츠 재투자를 담보할 장치도 없이 광고규제부터 풀어주는 것은 방송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의 권리를 희생해 사업자의 수익을 보전하는 조치에 불과하다.
방송광고 시장이 위축된 원인은 광고규제가 많기 때문만이 아니다. 미디어 이용은 이미 온라인과 모바일, 글로벌 플랫폼으로 이동했고 광고시장 역시 거대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대한 대책 없이 기존 방송의 광고 노출만 확대하는 것은 산업정책이 아니라 시청자의 화면과 시간을 활용한 단기 처방일 뿐이다.
방송 경쟁력을 높이려면 글로벌 플랫폼의 시장지배력과 불공정 거래를 규율하고, 방송·영상 콘텐츠의 제작·유통구조를 개선하며, 지역방송과 중소방송, 공영미디어가 공적 역할을 지속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광고규제를 대폭 완화한다고 해서 방송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광고가 늘고 프로그램의 흐름이 자주 끊길수록 시청자는 기존 방송에서 더 멀어질 수 있다. 시청 경험을 악화시키면서 방송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시민 없는 방송정책은 방송 공공성을 무너뜨린다
방미통위는 방송시장 활성화와 제작재원 확충이라는 추상적인 명분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광고의 집중 편성과 중간광고 확대, 광고 크기 증가가 시청권과 프로그램 완결성, 방송 제작의 자율성에 미칠 영향을 구체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시청자단체와 시민사회, 제작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도 선행돼야 한다.
방송은 사업자의 수익을 위해 광고공간을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다. 민주적 여론형성과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해야 할 공적 매체이며, 방송정책의 최우선 기준은 사업자의 이익이 아니라 시청자의 권익과 공공복리여야 한다. 방미통위는 방송법의 목적과 광고·프로그램 분리 원칙에 역행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사업자 중심의 광고규제 완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방송 공공성과 시청자 권익을 보장하면서 방송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종합적인 미디어 정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