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협동조합이 심는 것은 꽃이 아니라 관계였다
봄이 되면 아파트 화단에는 꽃이 핀다. 하지만 그 꽃을 누가 심었는지 기억하는 주민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정원은 관리되고, 주민은 그 풍경을 지나칠 뿐이다. 마포구 아현동 자연학습장의 '봄봄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그 익숙한 풍경은 조금 달라진다.
누군가는 풀을 뽑고, 누군가는 흙을 만지고, 누군가는 꽃 이름을 적는다.
꽃보다 먼저 사람들의 손이 보인다.
민트협동조합은 식물을 키우는 조직이라기보다,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공간을 만드는 협동조합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봄봄정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도 아름다운 꽃보다 함께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었다.

▲‘봄봄정원’에서 마을정원사들이 식물을 들여다보고 있다. ⓒ 안도빈
꽃보다 먼저 사람을 심는다
민트협동조합은 2021년 설립됐지만 이야기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9일 만난 박신연숙 이사장은 도시농업을 시작한 계기를 이야기하면서 뜻밖에도 사업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부터 꺼냈다.
"30대 초반에 독립해서 살면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퇴근하고 집에 와 새싹이 나온 걸 보고 물을 주면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했어요. '이것이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구나'를 그때 처음 느꼈죠."

▲수업 후 예쁜 테이블보를 깔고, 각자 가져온 간식을 나눠먹는다. ⓒ 안도빈
그에게 가드닝은 취미가 아니었다. 자신을 돌보는 방식이었고, 삶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바탕에는 더 깊은 생각이 있다.
"저는 자연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태도와 사람을 대상화하는 태도가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주의가 성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것처럼, 생태 역시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저에게 여성주의와 생태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드닝은 그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개근출석한 정원사에게 ‘봄봄 정원사 앞치마’를 나눠주고 있다. ⓒ 안도빈
그 경험은 점점 더 깊어졌다.
"식물을 키운다는 건 흙을 돌보는 일이고, 살아있는 흙을 돌보는 게 결국 나를 돌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여기 정원에 와 있으면 계절의 변화와 날씨의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감각으로 알게 돼요. 그중에 나도 그냥 한 생명이고, 그런 연결과 순환을 이 안에서 체감하는 거죠. "
민트협동조합이 말하는 가드닝은 꽃을 예쁘게 키우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관계를 회복하는 방식이었다.
정원이 주민을 바꾼다
그 철학은 민트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봄봄 마을정원사' 과정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2019년부터 이어진 이 프로그램은 원예기술을 배우는 수업이 아니다. 참여자들은 1년 동안 같은 정원을 함께 가꾸며 계절을 배우고, 흙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운다.

▲‘봄봄 마을정원사’ 과정에서 키운 식물을 함께 분갈이한 모습 ⓒ 안도빈
봄에는 씨앗을 파종하고, 여름에는 풀과 사귀는 법을 배우고, 가을에는 씨앗을 채종하고, 겨울에는 한 해를 돌아보며 소회를 나눈다. 흙을 살리는 법, 퇴비를 만드는 법, 계절의 변화를 기록하는 법을 함께 익히며, 서울숲·하늘공원 같은 다른 정원을 답사하는 일정도 포함되어 있다.
민트는 이를 "우리의 내면과 공동체를 가꾸는 가드닝"이라고 표현한다. 몸을 움직여 자연과 협력하는 일이 결국 땅 위에 사는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함께 돌보는 행위가 된다는 의미다.

▲필자에게 꽃팔지를 만들어주는 주민 봄봄 마을정원사의 모습 ⓒ 안도빈
'봄봄 마을정원사' 과정에 참여중인 한 마을정원사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라고 느꼈는데, 3월부터 꾸준히 오다 보니 올 때마다 공간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정원이 커진 것이 아니라, 식물들이 자라면서 공간의 깊이와 풍경이 달라진 것이다.
정원은 그에게 새로운 눈도 열어주었다.
"예전에는 그냥 풀이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는 사초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보리사초, 무늬사초…. 예전에는 전혀 구분하지 못했던 식물들이 이제는 서로 다른 이름과 특징을 가진 생명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봄봄 정원’에서 함께 키운 수박을 한번 찾아보세요 ⓒ 안도빈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작은 텃밭에서 감자를 수확한 날이었다.
"'내가 심은 것이 자라서 먹을 수 있는 것이 되었구나.' 그 경험이 굉장히 신기했어요. 생명이 자라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식물을 보는 눈이 달라지자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도 함께 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경험이 아니었다.
민트협동조합은 정원교육을 넘어 주민 참여형 정원 조성,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환경교육, 생태문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주민이 자연과 마을을 함께 가꾸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이집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한 퇴비함을 만들고, 시니어클럽과 화분을 나누며, 70·80대 어르신을 위한 식물생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가드닝이라는 하나의 매개는 주민 참여와 환경교육, 돌봄, 지역 일자리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
정원이 마을로 번질 때

▲2025년 서울특별시 정원도시상 최우수상을 받은 ‘봄봄정원’ ⓒ 안도빈
민트협동조합은 정원을 단순히 식물을 가꾸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이 함께 만들고 기억을 쌓아가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씨앗을 채종하고 계절을 기록하며, 건축학자와 함께 골목을 걷고 조경 전문가와 아파트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과정은 정원을 통해 마을을 새롭게 이해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봄봄정원에서 만든 변화는 이 공간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여기 다녀간 분들 중에 자기 동네에 공유정원을 시작한 분들이 생겼어요. 이태원에 사시는 분은 자기 아파트에 작은 공유정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연희동에 사시는 분도 비슷한 시도를 하셨어요. 여기서 식물 소분도 드리고, 여기 식물들이 거기까지 가는 거예요."
봄봄정원을 경험한 주민들은 '나도 내가 사는 집 앞에서 시작해 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민트협동조합은 바로 그 작은 시작이 마을을 바꾸는 힘이라고 믿고 있었다.

▲박신연숙 이사장의 설명을 들으며 봄봄정원의 식물을 구경하고 있다. ⓒ 안도빈
함께 가꾸는 경험이 쌓일수록 식물에 대한 지식도, 이웃과의 신뢰도, 마을을 돌보는 책임감도 함께 축적된다. 박신연숙 이사장은 "우리가 함께 흙을 일구고, 함께 공간을 만들고, 함께 생태적이고 순환적인 가치를 쌓아가고 있죠. 그래서 여기에 오면 일반 공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간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땀, 시간, 애정, 그리고 소속감이 이 공간 안에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함께 만든 경험은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박 이사장은 "공유지의 기억이 사람들한테 '공유하는 감각'을 줘요. 거창하게 사회적 자본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여기 오면 이런 공유지의 삶이 너무 좋으니까 다른 관계 속에서도 계속 그런 걸 찾게 되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봄봄정원에서 시작된 마음이 이태원의 아파트로, 연희동의 골목으로 번져나가듯, 주민들은 자연을 이해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자신이 사는 지역을 함께 가꾸는 경험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시에도 공동정원이 필요하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삼삼오오 모여 가드닝을 하는 ‘봄봄정원사’들의 모습 ⓒ 안도빈
민트협동조합은 정원을 가꾸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주민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자신이 사는 동네를 직접 돌볼 수 있는 힘을 키운다. 실제로 봄봄정원을 경험한 주민들이 자신의 아파트와 골목에서 새로운 공유정원을 시작한 것처럼, 하나의 정원은 또 다른 정원을 낳고, 한 사람의 경험은 지역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봄봄정원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이곳에 남는 것은 꽃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함께 흙을 만지고, 계절을 기다리고, 이웃의 이름을 기억했던 시간이 오래 남았다. 그 작은 경험들이 쌓여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 간다.
사회연대경제는 주민이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민트협동조합이 정원을 통해 키우는 것도 바로 그 '공유하는 감각'이었다. 꽃을 심는 일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은 주민들이 마을을 함께 가꾸는 문화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포를 바꾸는 사람들' 다음 편에서는 마포구의 또 다른 사회적경제 조직을 만난다.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포를 바꾸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라이프인,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안도빈 기자는 마포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