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보더링랩(Trans-border-ing Lab)은 국경과 종(種)을 넘은 몸들이 통제와 구금, 박탈과 추방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주목하고, 난민과 비인간존재의 안전하지 않음이 ‘국민’과 ‘인간’인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되어 온 담론에 문제를 제기하며 실천적인 앎을 모색하는 것을 활동의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12화에 걸친 이번 연속 기고는 2025년에 기획한 '디딤돌 걸림돌 애매한 돌, 판례로 만나는 이주/난민 이슈'에서 논의된 결과물입니다. 난민/이주민이 겪는 상황들이 지금-여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함께 질문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A는 도망치기로 했다. 지인이 한국을 추천했고, 그렇게 한국에 도착했다. 2017년 여름이었다. ⓒ 오마이뉴스
트랜스젠더 박해를 피해 도망친 난민신청자
A(가명)는 말레이시아 국적의 무슬림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망 후에 가장이 된 친오빠로부터 극심한 혐오 폭력을 겪었다. 국가에 피해를 호소하고 구제받을 길도 없었다. 말레이시아 연방 형법과 주별 샤리아 형법이 규범적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벗어난 자기표현 및 성/관계 양식을 범죄로 규정하고, 벌금형, 태형, 투옥형 등으로 처벌하기 때문이다.
공문서상 성별이 남성인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이른바 여성의 복장을 하는 것 또한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여성은 표적이 되기 쉽다. 친오빠의 폭행과 살해협박은 계속됐고, 공권력의 성소수자 탄압도 잇따랐다. A는 도망치기로 했다. 지인이 한국을 추천했고, 그렇게 한국에 도착했다. 2017년 여름이었다.
묵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의 어떤 손님이 A의 사정을 듣고 난민신청을 권유했다. 그의 도움으로 난민신청을 했다. 신청서를 쓰는데 괴로운 과거가 무수히 되살아났다. 신청 사유를 기입하며 내내 울었다. 그러나 절박한 심정으로 신청한 난민심사는 짧은 면접이 다였다. 통역도 A가 구사하는 언어가 아니라, 비슷하되 같지 않은 인접 언어로 이루어졌다. 결과는 난민지위불인정. 2018년이 저물고 있었다.
이의신청을 했다. 난민위원회는 면접에 그래도 몇 시간을 들였다. 타국에서 가슴 수술을 하고 귀국해서도 그것을 숨기고 남자 행세를 해야만 기본적인 사회 생활이 가능했던 국적국의 적대적 환경, 숨기고 사는 가슴마저 되돌리라고 강요하며 여자이려거든 차라리 자기 손에 죽을 각오를 하라던 폭압적 친오빠, 친오빠가 경찰이라는 사실이 가중시킨 통제와 단속과 처벌의 공포에 대해, A는 복받치는 감정을 다스려가며 최선을 다하여 진술했다. 하지만 난민위원회가 내린 결정은 또다시 난민불인정. 어느덧 2019년도 세밑이었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A가 난민불인정결정으로 막막해 하던 2020년 초 그와 처음 만났다. 당시 법무부 난민과에서 A를 성심껏 도왔던 담당자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A에게 우리는 그가 한국에 들어와 난민신청을 한 이후 2년 반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관계 맺게 된 한국 사회의 본격적인 지지망이었다.
남다른 친화력의 보유자인 A는 거주하던 이태원과 보광동 일대에서 상인들과도 제법 교류했고, 서로 '우리'를 알아보는 눈치 빠른 퀴어 주민들로부터 보살핌도 받았으며, 같은 국가 출신 트랜스젠더 여성들과도 일상과 일자리 정보 들을 나누는 등 가까이 지냈으나,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고자 노력하는 과정의 실무적 조력자이자 동료로는 우리가 처음이었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의 구성원들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퀴어, 트랜스젠더, HIV/AIDS 감염인 등 성소수자 및 소수자 난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2017년에 결성된 한국의 연대 네트워크로, 박해와 혐오를 피해 한국에 온 난민 동료들을 지원하고, 환대하기 위한 연대 활동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A는 한국에서 난민인정을 받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난민불인정결정취소를 청구하는 행정 소송을 결심했다. 공익변호사의 법률 지원도 받게 되었다. 소송은 쉽지 않았다. 난민신청서, 난민면접조서, 법정 증언 등에서의 세부 사항 불일치나 번복 등의 이유로 A는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재판부는 원고가 떠나온 고국에서 제도적 성소수자 탄압이 심각하다는 정황을 인정하면서도, A가 본인의 트랜스젠더 정체성 뿐만 아니라, 귀국했을 때 트랜스젠더로서 박해받을 가능성에 대한 공포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A는 1심과 항소심에서 패소하고 상고심도 기각당했다. 난민지위를 끝내 인정받지 못한 A의 낙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심, 항소심, 상고심까지 만 3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는 5년 반, 결국 A에게는 이제 난민재신청이나 제3국행만이 선택지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난민 인정 의지가 없는 한국의 난민제도에 새삼스럽게 좌절하고 분노했다. A는 어찌할 바 몰랐다. 그렇게 2023년이 시작되었다.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은 타당한가
같은 국가 출신의 또다른 무슬림 트랜스젠더 여성인 B도 A와 비슷한 시기 한국에 도착해 난민신청을 했다. A와 마찬가지로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고 난 후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청구 소송 절차를 밟았다. A와 B의 1심 재판부는 판사가 동일인이었는데, 두 사람의 국적국이 성소수자를 제도적으로 차별하고 형사 범죄로 다루어왔으며 억압의 내용과 강도가 심각해지는 추세임은 인정하면서도, A와 B의 사정이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거나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으로 두 건의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A 사건: 서울행정법원2020구단3833, B 사건: 서울행정법원2020구단9411).
재판부는 A와 B가 소위 여성의 외모를 한 증명사진에 성별과 종교는 각각 남성과 이슬람으로 표기된 신분증, 그러니까 실제 성별정체성에 따른 증명사진 속 성별표현과 성별표기가 불일치하는 (또한 샤리아법의 적용을 받는 사림임을 나타내는) 신분증으로 생활해 왔고, 해당 신분증을 가지고 취업하여 여성의 모습으로 노동을 한 적도 있으며, 그와 같은 신분증으로 인하여 출국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는 점을 기각 이유로 들었다. 비규범적 성별 표현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삼엄한 환경 속에서 일상적인 불안과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의 압도적인 실감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더불어 A 사건에서는 가족의 폭행과 협박이 "사적 위협에 불과"하다고 축소 해석되었다. 사적 폭력을 공적으로 구제받을 방도가 없는 현실, 다시 말해 국가가 A를 보호하고 구제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난민이 고국에서 박해 받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박해 대상이 되기 쉬운 자신의 특성을 최대한 숨겨왔다면, 숨기는 데 성공했을수록 이를 난민불인정의 근거로 보는 판례가 한국의 대법원에서 나온 바 있다(대법원2016두56080).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한 성소수자는 고국에서 박해 받은 경험이 있다고 진술해도 '그만한 일은 별 것 아니지 않은가'라며 일축당하고, 입증할 만한 사건으로서의 박해 경험이 없다고 하면 앞으로도 이제껏 살아왔듯이 살면 괜찮을 테니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주문 받게 되는 것이다.
성별정체성을 숨기고 살면 되니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재판부에게
A와 B의 사정은 재판부가 파악한 것보다 높은 박해 가능성과 일상화된 박해 환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첫째, 실제 성별정체성에 따른 증명사진 속 성별표현과 성별표기가 불일치하는 신분증으로 생활해 왔다는 것은 그렇게 생활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충분히 그렇게 생활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그보다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과 자기표현을 공문서에 정확한 기호나 용어로 반영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사실상 신분을 온전히 증명할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성별정정이 불가한 상황에서 트랜스젠더인 나는 공식적으로는 내가 아닌 것이다.
둘째, A와 B가 이처럼 정체성과 정체성 표기의 괴리를 드러내는 신분증을 가지고 취업하여 여성의 모습으로 노동을 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노동 시장의 전반적 반차별 기조나 성소수자 노동권 보장의 증거로 보기보다는, 발각과 배척과 체포의 위험을 안고도 여성 패싱하여 근무가 가능한 환경을 기어이 찾아내고 스스로 생계를 책임진 두 사람의 생활력으로 읽는 편이 보다 현실적이다.
셋째, 큰 문제 없이 출국심사를 통과했다는 결과만을 가지고 그 과정이 무난했으리라고 단정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A는 자신이 공항에서 누가 보더라도 남자로 인식되기 위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 들려주었다. 공권력을 상대해야 하거나 국경을 넘어야 할 때마다 극도로 긴장한다는 이야기였다. 위험을 감지하고 단속을 우회할 기술을 구사해야 하는 사람의 생존 전략과 수행 역량에 대한 고백이었다.
재판부는 A와 B가 상존하는 박해의 가능성과 이미 그 자체로 박해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남고자 분투한 삶의 궤적을 오히려 박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박해를 견디다 못해 출국하여 타국에서 난민신청을 하기에 이른 주체적 결단과 행동을 박해 가능성 부재의 방증으로 삼아 난민불인정결정을 정당화했다.
이는 박해를 피해 비호를 구하는 난민협약상의 난민을 박해의 현장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지금처럼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생존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난민협약 가입국이자 난민법 운영국으로서 비호 의무를 회피하는 처사다. 재판부는 안전과 안녕을 아슬아슬한 운에 내맡기고 각자도생 하도록 난민에 대한 비호 책임을 방기하였다.
'성소수자'도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이라는 대법원 판시와의 충돌
재판부는 두 사건의 근거 법리로 앞에 언급한 대법원 판시 사항을 똑같이 가져왔다. 인용된 판결문에서 대법원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개인적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하는 특성으로서 이를 포기하도록 요구되어서는 아니 될 부분"으로 보고, 성소수자는 이러한 바를 공유하는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으로 바로 그 신분에 근거해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에 따라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국적국의 보호를 원하지 않는" 경우 난민에 해당한다고 확인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 난민을 인정할 법규범적 참조점을 제공해 준다는 차원에서 유의미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어서 성소수자가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출신국에서 이미 자신의 성적지향 내지 성[별]정체성이 공개되고 그로 인하여 출신국에서 구체적인 박해를 받아 대한민국에 입국한 사람으로서 출신국으로 돌아갈 경우 그 사회의 특정 세력이나 정부 등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가진 사람에 해당하여야 하고,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음은 난민 인정 신청을 하는 외국인이 증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박해가 두려워 자신의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철저히 숨기고 지냈기에 입증 가능한 특정 사건으로서의 박해 경험이 없는 성소수자가 진술만으로 난민지위의 필요를 증명하고 난민지위를 인정받는 것을 거의 불가능한 일로 만들었다.
한국의 대법원은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이 사회의 도덕규범이나 법규범에 어긋나 비난과 낙인을 피하고자 숨기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당사자가 경험하는 "부당한 사회적 제약"이기는 하더라도, "생명,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 혹은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에 이르는 박해로 볼 것까지는 아니라는 입장으로, 언제나 맞물려 작동하는 "제약"과 "위협‧침해‧차별"을 자의적으로 부당하게 대립시킨다. 이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개인적 정체성의 핵심을 구성하는 특성으로서 이를 포기하도록 요구되어서는 아니 될 부분"으로 동일 판결문에서 대법원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바와도 모순된다. '숨겨야만 한다'는 것은 '포기'하도록 요구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감추고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란 무엇인가
유엔난민기구는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제9호: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 제1조 제A항 제2호 및 1967년 의정서의 맥락에서 성적지향 또는 성정체성에 기반한 난민지위신청"을 말한다. (유엔난민기구, 문서번호 HCR/GIP/12/09, 2012. 10. 23.) 난민 지위의 인정기준 및 절차 편람과 지침 (한국어판 2023), 193쪽.이를 통해, "어떤 성소수자 신청인이 1951년 난민협약상 난민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신청인이 사회 내에서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명시해 두었다. 국적국에서 숨기고 숨죽인 덕분에 가시적이고 결정적인 박해의 경험이 없다는 지점에서, '숨기고 숨죽이고 살면 되니까 난민인정은 불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가서는 곤란하다.
감추고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란 박해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린 위태로운 시공간이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과 성별표현을 이유로 단속당하고 처벌받을 가능성,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약점으로 잡혀 공갈‧협박‧갈취 당할 가능성, 상해 입거나 살해 당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러한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당사자로 하여금 감추고 조심하며 긴장한 채로 살게 하는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