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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서 힘없이 누워계시던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며, '나 아프면 병원 갈 생각하지 말고 너희들 모여서 찬송 부르는 중에 하늘나라 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유언장을 보며, 앞으로의 내 삶을 상상해보며, '마지막까지 자신이 살던 집에서 살고 싶은' 많은 사람의 소망에 마음이 머물렀다.
이 소망은 어떤 바람을 품고 있는 걸까? 이 소망은 어떻게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집에서 돌봄 받으며 살다 떠나는 것, 어마어마하거나 염치없는 꿈은 아닌 듯한데, 누가 뭐라 할세라 대다수가 서둘러 그 바람을 접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부터 늙고 아프고 불편하면 집을 떠나야 하는 게 당연해져 버린 걸까? 등등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누구나 예외 없이 살던 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개인의 상황과 바람이 다르기에, 각자의 여건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늙고 아프면 선택의 여지없이 뿌리뽑히듯 시설이나 병원으로 서둘러 옮겨져야 하는 현실은 의아하고 아프다.
조금만 각도를 바꾸어보면, 노년기에는 그동안 속도와 경쟁에 내몰리느라 놓쳐온 자신의 삶을 보듬고 돌아보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텐데, 마치 궁지로 내몰리듯 쫓기듯 이리저리 옮겨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자 미래라니... 우리가 이런 궁지를 목표로 평생을 달려온 것은 아닐 텐데...
뭐라도 하고 싶었다. 자신이 살아온 집에서 불안에 떨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그러려면 우선 내 집의 대문을 열고 찾아오는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 등이 꼭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국가가 제도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마침 국가도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통합적인 돌봄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과거에 비해 아주 많은 것이 변하고 있지만, 앞을 보면 여전히 불안의 안개가 짙다. 그 안개 속에서 '이웃'과 '마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국가 제도나 의료와 같은 전문 기술이 아니더라도 '이웃'이어서 가능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뭐라 내세우기 힘든 우리의 작은 손길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 사람의 삶을 살만하게 하는 데 조금은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이웃들이 서로 힘을 모아 서로를 돌보는 모임을 만들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이 생각을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난해 어느 날 교회 권사님이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뒤늦게 공부하셨는데, 동기들과 가끔씩 만난다는 이야기를 지나치듯이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생각을 권사님께 말하면 혹시 공감해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6월, 권사님께 프러포즈를 했다. 사회복지 쪽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은데, 같이 이야기 좀 해보면 좋겠다고. 그렇게 내민 손을 권사님이 잡아주셨고, 그 이야기 자리에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등이 우연히 함께 하시게 되었다. '좋은 일 같지만 막연하기 짝이 없는' 내 제안을 들으시고는, 좋은 생각 같으니 어떻게든 해보라는 긍정적 힘을 보태주셨다.
절실했지만 자신은 없었고, 막연하게 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내가 불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간 생각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가 보았지만, 여전히 엉켜있는 채로 9월에 다시 모였다. 내가 제안하는 '협동조합'이라는 모임도 낯설고 하려는 일도 막연했지만, 교회는 장소를 제공해주셨고 여러 분들이 조합원 가입도 하기로 하셨다. 가끔 오름과 바다를 함께 걷고 이야기 나누며 나의 이런 생각에 공감해주던 마을 이웃도 성당 동료와 함께 참여했다.
그렇게 2025년 10월 19일, 8명의 발기인이 혼디살게 협동조합 '혼디살게' 창립총회를 열었다. '혼디살게'는 '함께살자'는 뜻의 제주어다. 큰돈을 내거나 대단한 희생을 하거나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아도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자신의 작은 것들을 정성껏 모아나갈 수 있다면, 마을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막연하지만 강하게 있었다. 출자금도 대부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준인 1인 10만 원으로 정해서 총 재산 80만 원인 모임이 만들어졌다.
형체가 없이 떠돌던 것들이 조금씩 꼴을 갖추어갔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총회를 열면서 조금씩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정관을 만들고 공증과 등기 등 법적 절차를 법무사의 도움 없이 하는 것이 꽤 낯설고 까다롭긴 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법무사 없이 직접 공증을 받으려는 우리를 탐탁치 않아 하시던 공증 사무실 변호사님도 나중에는 "이젠 나보다 더 잘 아네"라는 농담을 건네실 만큼 편하게 대해주셨다. 그렇게 혼디살게는 법적 존재, '법인'이 되었다.
이웃들에게 우리를 알리는 일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모자란 편집 능력으로 홍보물을 만들고 마을 이장님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혼디살게 협동조합이 따뜻한 마을을 꿈꾸며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라는 문구로 신생아 혼디살게를 알렸다.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 경제, 제주의 역사 등에 너무나 박학다식한 이장님도 만났고, 돌봄이 필요한 이웃의 정보를 미리 적어두시고 함께 방문하고 소개해주시는 이장님도 계셨다.

▲봉사활동이웃집을 방문해보니 오래된 방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괜찮다고 하셨지만 고쳐드리겠다고 하니 아져씨는 고맙다고 하셨다. 밝게 열심히 살아가시는 아져씨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꾸준히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들을 챙겨가려 한다. ⓒ 이진순
그렇게 이웃을 만나기 시작했다. 방문한 집의 거실은 앉아있기 힘들 만큼 냉골이었다. 일단 바닥에 카펫을 깔아드리기로 하고 혼디살게와 교회 단톡에 알렸다. 방과 거실에 필요한 두 개의 카펫 기증자가 바로 나서주셨고, 집수리를 잘하시는 분이 고장난 문 등을 수리해 드렸다. 국가의 지원은 제대로 받고 계신지 알아보기 위해 함께 읍사무소를 방문했다. 꼭 필요한데 국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혼디살게'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궁리 중이다.
차 없이 걸어서 이웃들을 찾아가다 보니, 별로 갈 일이 없었던 옆 마을 길을 걸으며 '이 마을 분위기가 엄청 편안하고 좋네~'라며 짧은 여행을 하듯 기분 좋은 순간을 즐기게도 된다. 마을 길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 자고로 삶은 재미와 의미가 잘 버무려져야 제맛이지~.
월 1만 원 후원회원도 모집하고 있다. 아직 그렇다 할 활동이 드러나지 않는 꼬물거리는 신생아지만, 태어난 것 자체를 대견해 하며 튼튼하게 성장하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후원회원들은 몇 달간 조금씩 늘고 있고, 그 범위는 제주는 물론 서울, 지리산, 부산 등 전국에 걸쳐 있는 전국구이다.
지난 5월에는 멀리 미국에 사시는 분까지 후원회원이 되었다. "이제 혼디살게는 국제 조직이야"라며 웃기도 한다. 명함이나 홍보물 제작을 도와주는 분, 좀 더 많은 홍보물을 만들어서 알리자며 홍보비 후원을 해주시는 분, 이웃의 고장 난 전등과 수도 교체 등 집수리에 참여해주시는 분, 차가 없는 내가 아쉬울 때마다 기사를 마다하지 않는 분, 필요한 서류들도 신경 써서 내주시는 조합원들 등 감사의 마음을 품게 하는 분들이 많다.
조합원들이 총회 때 전원 참석의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다 참석을 하셔서 일단 기분이 좋았는데, 공증 등 법적인 처리 과정에서도 전원 참석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혼디살게'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함께 나누며 힘을 모으고 있다. 이웃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인사드리고, 고장 난 전등과 수도를 교체하고 선풍기와 에어컨 청소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아주 작은 우리의 움직임들이 이웃을 연결하는 끈이 되고, 표정과 눈빛이 살아있는 마을을 가꾸어가는 씨앗이 되기를 꿈꾼다.
아직 옹알이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신생아 '혼디살게'가 앞으로 옹알이도 하고 뒤집기도 하고 애써 우뚝 서기도 할 그날을 그려본다. 물론 다치고 아프기도 할 것이다. 육아의 과정에서 느낄 아픔, 기쁨, 신기함 등을 차근히 또박또박 써나가려 한다.
덧붙이는 글 | - 후원 문의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쪽지를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