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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전 11시, 충북 영동문화원 다목적홀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짙은 그리움이 깔렸다. '한국전쟁 전후 희생자 영동유족회'가 주최하고 영동군과 영동군의회가 후원한 '제76주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제5회 영동합동위령제'가 엄숙히 거행되고 있다.
18일 오전 11시, 충북 영동문화원 다목적홀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짙은 그리움이 깔렸다. '한국전쟁 전후 희생자 영동유족회'가 주최하고 영동군과 영동군의회가 후원한 '제76주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제5회 영동합동위령제'가 엄숙히 거행되고 있다. ⓒ 심규상

영문도 모른 채 차디찬 골짜기에서 쓰러져 간 이들의 넋을 달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충북 영동 지역에서 전쟁의 포화 속,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의 불씨가 18일 다시 피어올랐다. 7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을 기리는 공식 추모행사는 고작 다섯 번째에 불과하다.

이날 오전 11시, 충북 영동문화원 다목적홀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짙은 그리움이 깔렸다. '한국전쟁 전후 희생자 영동유족회'가 주최하고 영동군과 영동군의회가 후원한 '제76주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제5회 영동합동위령제'가 엄숙히 거행됐다. 현장에는 정영철 영동군수, 김오봉 영동군의회 의장, 안원경 충북연합회장, 박덕흠 국회의원을 비롯해 오랜 세월 가슴에 피멍을 안고 살아온 유족과 군민 등 1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흰 수건 끝에 맺힌 눈물, 76년의 한을 풀다

 정영철 영동군수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으로 참여해 잔을 올리고 있다. 영동군은 최근 지원 조례를 제정해 위령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정영철 영동군수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으로 참여해 잔을 올리고 있다. 영동군은 최근 지원 조례를 제정해 위령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 심규상

위령제의 문을 연 것은 소복을 입은 조희열(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도살풀이춤 전수자)씨의 진혼무였다. 허공을 가르는 거친 숨조차 죄스러웠던 세월, 희생자들의 넋을 불러오는 살풀이 수건이 흩날릴 때마다 객석에 앉은 백발 유족들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던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그 춤사위 하나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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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진행된 전통 제례는 단순한 형식을 넘어, 살아남은 이들이 먼저 간 이들에게 바치는 뒤늦은 참회의 조심스러운 술잔이었다. 임두환 영동유족회장이 첫 잔을 올리는 초헌관을 맡았고, 정영철 영동군수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으로, 김오봉 영동군의회 의장이 마지막 잔을 채우는 종헌관으로 나서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극진히 기렸다.

이날 위령제는 개제 선언을 시작으로 국민의례와 묵념, 추모사, 그리고 절절한 추모시 낭송과 헌화·분향으로 이어지며 내내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이번 제5회 위령제는 의미가 남달랐다. 지난 2009년 첫 위령제를 치른 후 중간에 맥이 끊겨 지난해가 되어서야 겨우 제4회 위령제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중단 없이 지난해에 이어 곧바로 제5회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임두환 회장 "더는 끊기지 않게 하겠다"... 영동군수 ""명예회복 소홀함 없게 할 것"

 임두환 유족회장(88)은 "유족들의 맺힌 상처가 씻어질 수 있도록, 더는 위령제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임두환 유족회장(88)은 "유족들의 맺힌 상처가 씻어질 수 있도록, 더는 위령제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심규상

임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과 지역사회는 한목소리로 위령제의 연속성을 강조해 왔다. 영동군도 이에 발맞춰 늦은 감 있지만 최근 지원 조례를 제정해 위령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덕분에 이번 위령제는 군비 지원을 통해 유족회가 직접 주관해 추진할 수 있었다. 국가의 잘못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이제야 비로소 온전한 추모의 주체로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유족은 "국가가 죽여놓고 숨도 크게 못 쉬게 하던 세상이었는데, 이렇게 군에서 조례까지 만들어 군민들이 함께해주니 이제야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영철 영동군수는 이날 추도사를 통해 "국가의 보호 대신 감시와 차별로 인해 한 많은 세월을 버텨오신 유족 여러분의 눈물에 영동군수로서 고개 숙여 깊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사의 올바른 정리와 희생자분들의 명예 회복, 유족 여러분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두환 회장은 "유족들의 맺힌 상처가 씻어질 수 있도록, 더는 위령제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영동군에서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국민보도연맹원에 가입한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했다. 학살명령은 이승만 정부가 치안국과 경찰서, 방첩대(CIC) 등을 통해 내려졌으며 옥천군 청산면 샘티재, 영동군 상촌면 상대리와 고자리, 영동읍 부용리 어서실, 설계리 석쟁이재,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등에서 500여 명이 희생됐다. 가해자는 영동군에 주둔해 있던 육군특무부대 추욱지구 영동분견대, 영동경찰서 소속 경찰 등이다.

#위령제#영동군#한국전쟁#영동합동위령제#제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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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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