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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동궁'
넷플릭스 '동궁' ⓒ 넷플릭스

한국형 장르물의 계보를 잇는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은 젊은 세자의 비참한 죽음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드라마 속의 세자는 새벽 산책 중에 목숨을 잃고, 그 시신이 연못가에 놓여진다. 세자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해 궁궐이 발칵 뒤집어지는데, 왕실 여성들은 이를 귀신의 소행으로 생각한다. <동궁> 1화, 아들의 시신 앞에서 흐느끼던 중전(박수연 분)은 "귀신이 내 아들을"이라는 울부짖다 기절한다.

손자의 시신을 확인한 대비(장영남 분)는 주상(조승우 분)의 집무실로 급히 가서 "동궁들이 죽어 나갑니다"라며 "장평세자와 윤평세자에 이어 지금의 세자를 그 연못 귀신이..."라고 하다 말을 멈춘다. 임금이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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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그만하십시오"라며 "귀신 따위는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이어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는 이 나라 왕실에서 귀신이라니요"라며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사실 임금도 이 모든 사건이 귀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일이 원인이 되어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고 직감한다. 그래서 문제의 원인을 풀어줄 두 명의 해결사를 은밀히 불러들인다. 두 눈으로 혼령을 볼 수 있는 귀신잡이 구천(남주혁 분)과 구천을 감시하며 활동을 보조할 생강(노윤서 분)이 그 임무를 받는다.

스무 살에 요절한 왕세자

 일본 내 신사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일본 내 신사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haogang on Unsplash

<동궁>의 설정을 보며 헤이안시대(794~1185)인 923년 4월 14일 일본 왕실에서 벌어진 일이 떠올랐다. 923년이면 왕건이 고려를 세운 지 5년 뒤다. 1036년까지의 역사를 담은 <일본기략(日本紀略)> 후편 제1권 다이고일왕(醍醐天皇) 편은 이때 일어난 일을 "(일본력 3월) 21일, 국기일(國忌日)이었다. 인명(仁明)의 기일이었다"라는 문장과 함께 명시한다.

일본력 3월 21일에 죽은 닌묘 일왕은 다이고 일왕의 증조부였다.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런 날, 왕실에서 변고가 발생했다. <일본기략>에 이렇게 적혀있다.

"황태자가 와병 중이라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자시 무렵에 황태자 보명친왕(保明親王)이 훙서했다. 천하의 뭇사람 중에 슬퍼 울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만 20세의 왕세자인 야스아키라 친왕이 고조부의 기일에 세상을 떠났다. 일본인들은 우레와 같은 울움소리를 내면서도, 왕세자의 죽음이 왕실에 대한 귀신의 보복이라고 봤다. 이어 야스아키라가 태어나기 9개월 전인 903년 3월 26일(일본력 2.25)에 58세 나이로 죽은 충신 겸 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떠올렸다.

스가와라노가 죽었을 당시의 일왕이 야스아키라의 아버지인 다이고다. 다이고는 선대 임금인 우다 일왕의 충신이던 스가와라노가 반역을 시도했다며 스가와라노를 부산 건너편의 규슈섬 북부로 추방했다. 스가와라노는 고통을 겪으며 살다가 90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해 연말, 다이고의 아들인 야스아키라가 태어났다.

다이고는 사실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의 고발 때문에 스가와라노를 추방했을 뿐, 반역의 확실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그래서 당시 일본인들은 스가와라노가 억울하게 모함을 당했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서 야스아키라가 스무 살 나이로 요절했다.

일본인들은 이를 스가와라노의 원혼에 의한 비극이라고 해석했다. 위의 <일본기략>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스가와라노의 영혼이 오랫동안 품은 원한 때문에 일어난 일(야스아키라의 죽음)이라고 말했다"라고 언급된 이유다.

스가와라노를 고발한 후지와라노 도키히라도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스가와라노가 죽은 지 6년 뒤인 909년에 3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균수명이 지금보다 짧은 때였이지만, 그 시절에도 상류층은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 죽음 역시 당시 사람들은 스기와라노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스가와라노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사람, 주변인들이 연이어 일찍 죽었기에 스가와라노의 혼령이 왕실을 괴롭힌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당시의 일본인들은 스가와라노 사후에 발생한 역병·홍수 등의 재앙도 그의 죽음과 연결해 해석했다.

야스아키라가 죽은 지 2년 뒤인 925년, 왕실의 불운은 이어졌다. 야스아키라의 장남인 요시요리왕이 만 4세 나이로 죽었다. 결국 일본 왕실은 스가와라노의 원혼을 달래는 작업에 착수했다. 왕실은 그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그를 신으로 받들었다. 지금도 일본 곳곳에 스가와라노를 모시는 덴만구 혹은 덴진샤라는 신사가 있다. 일본인들은 그를 액막이와 재난 방지의 신, 학문과 지혜의 신 등으로 추앙한다.

세조의 의구심

 넷플릭스 '동궁'
넷플릭스 '동궁' ⓒ 넷플릭스

왕실에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왕세자를 괴롭힌다는 인식은 한국 왕실의 역사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런 인식은 세조(수양대군)가 장남인 의경세자를 잃은 직후에 보인 이상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를 비롯한 단종의 측근들을 살상(1453년)하고 자신이 직접 즉위(1455)한 뒤인 1457년이었다. 그해 9월 20일(음력 9.2)에 19세 된 의경세자가 요절했다.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인용된 작자 미상의 <축수편>에 따르면, 의경세자가 죽기 직전에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네가 죄 없는 내 아이를 죽였으니 나도 네 아이를 죽일 터이니, 너는 반드시 알아두어라"고 경고했다.

아들이 죽자 세조는 16년 전에 죽은 단종의 어머니에게 분풀이했다. 장남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어야 할 세조가 엉뚱하게도 사당을 정리하라는 지시를 예조에 내린 것이다.

세조 3년 9월 7일 자(양력 1457.9.25.) <세조실록>에 따르면, 교육과 예법을 관장하는 관청인 예조는 현덕왕후의 신주와 의례품을 종묘 사당에서 철거했다고 세조에게 보고했다.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인용된 작자 미상의 축수편(逐睡篇)에 따르면, 세조는 사당뿐 아니라 무덤도 건드렸다. 현덕왕후의 무덤인 소릉의 파묘를 단행했다.

현덕왕후의 무덤과 사당을 건드린 세조의 행동은 단순하게 해석할 일이 아니다. 조선에서는 사당을 혼령이 거한다고 보며, 무덤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런 시대에 사당의 기물을 철거한 건 사당에 모셔진 사람에 대한 최대한의 불경을 표시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단종은 의경세자가 죽고 한 달 보름 뒤에야 죽었다. 그렇기에 <축수편>에 나오는 '네가 내 아이(단종)를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의경세자)을 죽이겠다'는 현덕왕후의 경고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네가 내 아이를 쫓아냈으니'라고 쓰여야 할 대목이 '네가 내 아이를 죽였으니'라는 과장된 문구로 잘못 쓰인 셈이다.

옛날 사람들은 거대 권력이 범한 잘못을 당장에 바로잡을 힘이 없는 경우에 귀신이 등장하는 설화를 만들어냈다. 정치적 원한이 해결되지 않은 억울한 상태로 누적되면 귀신이 해결사로 등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일본 사회에도 조선에도 공통되게 드러났다.

귀신을 등장시켜서라도 복수의 서사를 써보고 싶은 대중의 열망이 문학적·설화적 방법으로 구현된 셈이다. 그렇게 마음의 응어리를 달랜 것이다. 이러한 서사와 생각이 2026년 넷플릭스 <동궁>에 깃든 저주의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연못 귀신'의 저주와 궁궐 깊은 곳에 숨겨진 어두운 비밀은 누군가의 억울함과 '한'이 스며들어 있다.

한편, 지난 17일 전편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은 넷플릭스 '오늘의 대한민국 TOP10 시리즈'에서 1위(7월 20일 기준)에 올랐다.

#동궁#일본기략#다이고일왕#야스아키라친왕#의경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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