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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부모의 불편을 먹고 자라나 보다. 첫 이앓이를 5주 넘도록 호되게 겪고 예쁜 쌀알 두 개가 올라왔음에도, 꿈나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는지 한 시간에 한 번씩 밤중에 깨서 울부짖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잠자리 곁을 지킨다 하더라도 울음소리가 워낙 커서 어차피 둘 다 밤잠을 설친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가끔은 짜증이 솟구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이 아이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힘들어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가라앉으며 오히려 아이가 애잔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부모가 불편한 만큼 아이가 잘 자라준다면 기꺼이 우리의 안락함을 내어주리라 다짐하곤 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이왕 불편할 거면 행복한 방향으로 불편해지기로 했다. 유의어처럼 느껴지는 '불행'과 '불편'을 정반대의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행위, 그것은 바로 여행이었다.

"가자! 많이 다니자!" 아이와 함께 떠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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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 다니는 것에 대해, 기억도 못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도 아이를 키워보기 전까지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숲 속에서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맞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돌아온 날,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아이의 눈빛을 보며 꼭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관련 기사 : 신기하고 요상한 옹알이 터지는 곳, 전주에 있습니다).

아이는 순간마다 무서운 속도로 커가고 있었다. 그리고 꼭 기억에 남아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자연이 선물해 주는 다양한 풍경과 소리는 기억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 자리 잡아 아이의 성장에 더욱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집에서 잘 못 자나 여행 가서 잘 못 자나 그게 그거 아니야? 차라리 여행 가서 고생했다고 생각하면 보람이라도 있을 것 같아."
"그것도 그러네. 가자, 가자! 많이 다니자! 별헤도 다양한 풍경 보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이리하여 이제 막 7개월의 관문을 통과한 아이는 인생 최초로 외박을 하게 되었다. 인접한 기간 동안 부안 고사포에서 1박 2일, 정읍 내장산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온 이야기를 간략하게 써본다. 즐겁게, 행복하게, 적극적으로 불편했던 여행기라고나 할까.

두 여행의 공통점은 국립공원 숙소에서 머물렀다는 것이다. 고사포에서는 특화야영장을, 내장산에서는 생태탐방원을 이용했다. 두 곳 다 자연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으면서도 영아기 아이와도 함께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안전함이 보장되어 있다. 물론 호텔 같은 안락함을 기대해선 안 된다. 하지만 자연의 품을 포근히 여길 수 있다면 좁은 실내와 부족한 편의시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다를 처음 본 아이

바다와 아이 처음 만난 풍경을 지긋이 흡수하듯 바라보던 아이
바다와 아이처음 만난 풍경을 지긋이 흡수하듯 바라보던 아이 ⓒ 안사을

고사포 야영장은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여행지로 점찍어 뒀던 곳이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에서 가장 넓고 긴 해변과 함께 그 만큼이나 우거진 송림이 일품이다. 특히 야영장의 개념을 유지하면서 냉난방을 해결할 수 있는 특화야영장이 있기에 자연과 가까우면서도 어린아이와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예약한 자리에 짐을 풀기도 전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돗자리를 먼저 깔았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일기예보와 달리 비와 구름은 물러가고 햇빛이 세차게 파도를 두드리고 있었다. 망망대해가 아이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참 궁금했다. 밀려오는 물보라와 뜨거운 모래가 서로를 얼싸안을 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때 울리는 '처얼썩' 소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한참 응시만 하던 아이는 이윽고 바다를 향해, 어쩌면 그보다 훨씬 머나먼 우주를 향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성량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마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에게 거침없이 출사표를 던지는 듯한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와 나도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특화야영장 송림 속에 자리잡은 특화야영장 가건물
특화야영장송림 속에 자리잡은 특화야영장 가건물 ⓒ 안사을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짐을 옮겼다. 낮잠을 자야 하는 시간을 놓치면 서로 힘들기 때문이다. 침구와 식기 도구 등 주방 세제를 제외한 모든 것을 챙겨 와야 하는 곳이라 옮길 것들이 적지 않았다. 아기 침구는 휴대용이 따로 없어서 집에서 쓰던 퀸사이즈 매트를 챙겨 오느라 요란을 떨기도 했다. 안전하게 엉덩이를 씻길 수 있는 아기 비데 의자까지 화장실에 놓고서 작은 이사를 완료했다.

일단 첫 번째 걱정은 사라졌다. 집에서도 잘 못 자는 아이가 낯선 곳에서 잘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암막 커튼도 없는 상황에서 다행히 아이는 아빠의 자장가와 함께 무난히 잠들었다. 엄마와 아빠를 닮아 유목민의 피가 흘러, 낯선 곳에서 오히려 더 잘 자는 것 아니냐며 아내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집에서 쓰던 침구 그대로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곳에서 다행히 잘 자던 아이
집에서 쓰던 침구 그대로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곳에서 다행히 잘 자던 아이 ⓒ 안사을

확실히 불편한 점은 있었다. 공간이 분리가 되어있지 않은 원룸 형태였기에 온 가족이 계속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잠들어 있을 때 화장실을 가는 것이 제일 조마조마했다. 평소에는 아이가 자고 난 후 못다 한 집안일을 하거나 샤워 등을 하곤 했는데,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아이 취침 전에 모든 것을 해 놓아야 했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교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작은 공간에서 함께 자는 바람에 아이가 깨서 울면 함께 깰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집보다 깨는 횟수는 오히려 조금 적었다. 새벽 공기에 어우러진 잔잔한 파도 소리가, 소나무 숲을 두텁게 덮어주었던 진한 구름이 우리와 함께 아이를 재워주었나 보다.

작은 방에서 셋이 함께 잠을 청하니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것 같다고 아내가 말했다. 평소에는 일상의 유지를 위해 따로 자면서 교대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여행을 오게 될 때라도 온 가족이 함께 자야 하는 상황을 일종의 기회로 생각하며 즐기자고 화답했다.

바다와 아이 바다를 향해 슈퍼맨 놀이를 시켜주고 있길래 재빨리 실루엣을 담았다.
바다와 아이바다를 향해 슈퍼맨 놀이를 시켜주고 있길래 재빨리 실루엣을 담았다. ⓒ 안사을

싱그러웠던 녹색 단풍 터널

첫 번째 외박 여행을 성공적으로 다녀온 뒤 자신이 붙은 우리는 며칠 지나지 않아 2박 3일의 여행을 또다시 떠나게 되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 숙소와 여행지가 한가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일정을 서두르기도 했다. 두 번째 여행지는 내장산 국립공원 생태탐방원이었다.

특화야영장과 다르게 생태탐방원 숙소는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신 생태교육(유료)을 꼭 신청해야만 숙소를 예약할 수 있다. 각 국립공원마다 장소의 특색이 드러나는 생태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처럼 아이가 너무 어려서 코스를 소화할 수 없거나 개별적인 일정과 맞지 않을 경우 비대면 교육을 선택할 수 있어서 유연하게 여정을 짤 수 있다.

내장산 생태탐방원 2박3일 동안 묵었던 하늘채 숙소
내장산 생태탐방원2박3일 동안 묵었던 하늘채 숙소 ⓒ 안사을

내장산 여행은 처음이었다. 한여름 평일에 찾은 내장산은 대단히 한가로웠다. 내장사와 가장 가까운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한 후 유모차를 꺼냈다. 눈앞에는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할 만한 풍경이 펼쳐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빽빽한 진녹색 하늘이었다. 아이는 몸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뱃심을 이용하여 행복한 소리를 질러 댔다. 바다를 보며 지르던 소리와는 또 다른 색깔이었다.

내장사에 도착하니 마침 타종 중이었다. 산을 온통 울리는 강렬하고도 부드러운 소리에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는 아이를 안은 채 이마에 머리를 대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타종이 지속되었던 꽤 긴 시간 동안 둘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 또한 아무 소리 내지 않고 그 울림 속에 함께 있었다.

단풍 터널 산책 7월 중순 한낮임에도 그늘이 짙어, 온도에 민감한 아기와도 충분히 걸을 만했다.
단풍 터널 산책7월 중순 한낮임에도 그늘이 짙어, 온도에 민감한 아기와도 충분히 걸을 만했다. ⓒ 안사을

내장사에서 풍경 소리, 목탁 소리가 어우러진 산사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엄마와 아이
내장사에서풍경 소리, 목탁 소리가 어우러진 산사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엄마와 아이 ⓒ 안사을

아이가 자야 할 때가 가까워오고 있어 서둘러 숙소로 돌아갈 것을 아내에게 제안했다. 아내는 괜찮으니 조금만 더 있자고 했다. 다시 겪지 못할 수도 있는 고즈넉한 산사에서의 순간이기에 나 또한 동의 했다. 아내는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눈앞의 풍경과 다양한 소리, 향기에 대해 가만가만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이틀 동안 욕심 내지 않고 같은 숲길을 연달아 걸었다. 산 바람이 시원하긴 했으나 아이의 등판에 잠깐씩 한여름의 열기가 새겨지기도 했다. 매번 편도 20분 정도의 산책이었으니 너무 심한 고행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여행 중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이 이 아이에게 시나브로 인내심을 길러주는 좋은 스승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육아#육아일기#고사포#내장산#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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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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