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13일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촉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논어> 자로편에서 섭공(葉公)은 공자에게 정치의 요체를 물었다. 섭은 초나라의 변방이었다. 백성들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을 불러들여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 절박한 질문에 공자의 답은 의외였다.
"근자열(近者悅), 원자래(遠者來)." 가까운 사람이 기뻐하면 먼 사람이 스스로 찾아온다는 뜻이다. 사람을 더 모으고 싶다면 먼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붙잡으라는 이야기다. 공자는 외연 확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순서를 분명히 했다.
2500년 전의 이 짧은 문장은 오늘날 정치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정치학에서도 기존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기반 유지(base mobilization)' 전략과, 지지 기반을 넓히는 '외연 확장(outreach)' 전략을 함께 가져가는 균형이 선거 이후 국정 운영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기존 지지층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다. 최근 여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경전도 이 오래된 원칙, 그리고 이 보편적인 정치 이론에 비춰볼 필요가 있다.
먼저 분명히 할 점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보수 원로나 야권 인사들과 폭넓게 만나며 국민통합을 강조한 것은 대통령으로서 자연스러운 행보다. 조갑제 전 <월간 조선> 편집장과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을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했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도 회동했다. 여야 대표들과의 만남,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회동 추진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은 특정 진영만의 대통령이 아니다. 협치와 국민통합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책무이며, 정치적 반대편과도 대화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국정 운영의 기반을 넓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공자가 말한 '원자래' 역시 오늘날에 비유하면 이러한 외연 확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외연 확장 자체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함께 가야 할 '근자열' 역시 같은 무게로 실현되고 있느냐다.
계엄의 밤을 함께 지킨 사람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에는 무장 군인들이 투입됐고, 시민들이 몸으로 계엄군을 막아섰다.
몇 달 뒤, 그날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났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는 이른바 '수거 대상' 명단이 적혀 있었다. 올해 2월 MBC와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 명단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이준석 전 개혁신당 대표와 함께 유시민 작가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다. 체포 이후 신병을 이송·처리하는 절차까지 적시된 문건이었다는 점에서 실제 신변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유 작가가 몸담아온 유튜브 방송 '뉴스공장' 역시 계엄 당일 검열 대상이 됐다는 정황이 이후 방송에서 언급됐다.
분명한 것은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민주당과 범여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평론가와 시민사회 인사들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며 정권교체 필요성을 적극 주장했던 축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나라가 존폐 기로에 섰던 그 밤, 체포 대상 문건에 이름이 오르면서도 자리를 지킨 사람들, 다시 말해 '근자' 중의 근자다. 어려울 때 곁을 지킨 사람이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다. 위협을 감수하며 그 밤을 함께 넘긴 사람들의 직언이라면, 그 무게는 여느 비판과 같을 수 없다.
오늘날 정치에 이를 비유해 본다면, 공자가 말한 '근자'는 단순히 대통령의 측근이 아니라 정권의 형성과 유지 과정에서 오랫동안 함께해 온 지지층과 동지들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 '근자열'이 먼저인가

▲지난해 2월 11일 이재명 대표의 <겸손은 힘들다> 유투브 방송 출연에 12.3일 계엄 당시 여의도 국회 현장을 찾아 맞섰던 시민들의 글들이 공개되며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 겸손은힘들다 방송 갈무리
공자가 '원자래'보다 '근자열'을 먼저 말한 이유는 결국 신뢰 때문이다. 정권을 함께 만든 사람들이 충분한 신뢰를 느끼지 못한다면,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들 역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도 저렇게 대하는데, 우리는 과연 끝까지 신뢰받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생기는 순간 외연 확장의 효과는 오래가기 어렵다. 반대로 오래 함께한 사람 역시 외연 확장을 곧바로 배신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정치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결국 '근자열'은 대통령과 지지층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서로가 상대를 여전히 '근자'로 인정할 때 비로소 '원자래'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공자의 말은 특정 진영을 우대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신뢰를 잃지 말라는 원칙이다. 기존의 신뢰 위에서 새로운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가 원자보다 근자를 먼저 챙기라 한 이유를, 오늘날 정치에 비유해보면 이렇게 풀어볼 수 있다. 근자는 지금의 권력을 함께 만든 지지층과 동지들에, 원자는 새롭게 다가오는 국민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원자는 근자가 잘 대우받는 모습을 보고서야 다가올지 말지를 가늠하기 마련이고, 근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다가오다가도 발길을 돌릴 수 있다. 물론 이는 공자의 원문 해석이라기보다 지금의 상황에 빗대본 비유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이 관계가 대통령에서 근자로 향하는 일방향 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유시민 작가 같은 이들이 오래 곁을 지켜온 '근자'라면, 유시민 작가의 입장에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그를 지지해온 진영은 자신이 오랫동안 함께 만들어온 '근자'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신경전은 "대통령이 옛 동지를 홀대한다"는 일방적 서사보다, 서로가 서로의 근자로 여겨온 두 축이 외연 확장이라는 새로운 변수 앞에서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를 둘러싼 진통에 가깝다.
양쪽 모두 집토끼를 놓치고 산토끼를 좇는 정치는 결국 아무도 남지 않는 정치가 된다. 어려울 때 함께한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는 모습을 보인다면, 새로 마음을 열고 다가온 사람들 역시 그 광경을 지켜보며 같은 불안을 느낄 수 있다. '근자'가 기뻐하지 않는 상태에서 쌓아 올린 '원자래'는, 파도 한 번에 무너지는 모래성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유시민이 짚은 지점, 그리고 그가 서 있는 자리

▲15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 ⓒ 매불쇼 캡쳐
이런 맥락에서 유시민 작가가 최근 던진 비판도 다시 읽어볼 여지가 있다. 그는 지난 3월 이른바 'ABC론'을 제시하며, 뉴이재명 현상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일부 인사들이 이를 이용해 오랜 핵심 지지층을 몰아세우는 흐름을 문제 삼았다. 최근 7월에도 그는 대통령의 외연 확장 기조를 두고 "증축이 아니라 재건축"이라 비유하며, 이 방식이 진영 전체를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그를 이 국면의 순수한 피해자로만 보기는 어렵다. 그는 당내 사안에 목소리를 내온 인물이기도 하다. 올해 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 추진됐을 때 유시민·김어준 모두 이를 지지했지만, 신규 지지층의 반발로 합당은 지난 2월 무산됐다. 이 국면에서 두 사람의 발언은 지지층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시민의 최근 비판이 '이해관계 없는 원로의 순수한 충언'이라기보다, 당내 사안에 목소리를 내온 인물의 발언이라는 점은 균형 있게 짚을 필요가 있다.
다른 목소리도 있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특정 진영만 만나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오래된 지지층과는 이미 신뢰가 쌓여 있어 굳이 공개적 제스처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다만 이런 반론이 성립하려면 적어도 근자들이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지금의 논란은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토론과 전쟁은 다르다
진영 내부의 이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부딪치며 논쟁하는 것은 건강한 정치의 조건이다. 문제는 그 논쟁이 토론의 선을 넘어 전면전으로 번질 때다.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싸움으로 변질되는 순간 그 결과는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지금의 갈등이 계속 격화된다면 대통령도, 민주당도, 진영 전체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는 어느 한쪽의 패배가 아니라 양쪽 모두의 파국이다.
공자는 정치를 묻는 질문에 화려한 통치술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순서를 답했다. 가까운 사람을 먼저 기쁘게 하라. 그러면 먼 사람은 스스로 온다. 공자의 말은 근자만 기쁘게 하라는 뜻이 아니다. 근자에 머무르라는 뜻도 아니다. 근자를 기쁘게 한 뒤 원자를 얻으라는 순서의 문제였다. 그는 끝내 먼 사람을 데려오는 구체적 방법은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가까운 사람 이야기만 했을 뿐이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순서를 잊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연 확장 노력은 분명 필요한 정치다. 다만 그 노력이 오래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신뢰 위에 새로운 신뢰를 쌓아야 한다. 국민 통합은 지지층을 버리고 반대편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을 안심시키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품는 일이다. 그것이 공자가 말한 '근자열'의 정치이며, 2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리더십의 원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