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특혜 혐의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법정에서 '마키아벨리'를 꺼내 들었다.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재판장) 심리로 열린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대장동·위례 개발 특혜 및 성남FC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유 전 본부장은 "당시에는 모를 수 있다. 이재명 명령이면 다 들어야 하니"라며 "다시 보니 이건 마키아벨리 방식(권력 유지나 목표 성취를 최우선으로 삼는 성향 의미)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언급했다.
15일 유시민 작가가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해 이재명 대통령의 통치 방식을 설명하며 '마키아벨리'라는 표현을 사용해 큰 화제가 됐다. 공교롭게도 비슷 표현이 법정에 유 전 본부장 입을 통해 등장한 것.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사건 이후 당시 이재명 시장의 지시 구조를 되짚어 보면서 이를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언 과정에서 당시 직접 경험한 사실과 사건 이후 형성된 판단이 뒤섞이자 이진관 재판장은 "있었던 일과 증인의 생각을 구별하라"고 지적했다. 10년도 훨씬 지난 사건에 대해 유 전 본부장이 너무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것에 대한 재판장의 의문이었다.
유동규, '마키아벨리' 왜 꺼냈나?
'마키아벨리' 발언은 성남도시개발공사 이사회 의결안에서 대장동 사업협약안이 제외된 경위를 묻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진상 전 실장 측 변호인 정승일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이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재판에서는 '추측'이라고 했다가 이번 재판에서는 '사실'이라고 말한 점을 추궁했다.
- 정승일 변호사 : "22부(대장동 사건 1심 재판부)에서는 추측이라고 하고, 이 사건에서는 왜 사실이라고 바꿨느냐"
- 유동규 전 본부장 : "이사회 의결안은 그대로 성남시에 보고하게 돼 있다. 성남시 의결안 보고하는 건데 굳이 이재명이 빼라고 했다는 거다. 그 당시 이재명이 빼라고 한 걸 들었다. 이재명이 빼라고 한 게 아니면 뺄 수가 없다."
이에 정 변호사는 "그 내용을 이후에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냐"고 재차 물었고, 유 전 본부장은 "나중에 재판을 하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는 취지로 답했다. 유 전 본부장은 "당시에는 모를 수 있다. 이재명 명령이면 다 들어야 하니. 다시 보니 이건 마키아벨리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유 전 본부장이 사건 이후 과거의 이재명 시장의 지시 구조를 마키아벨리적 방식이라고 해석했다는 의미다.
"직접 우려된다고 말한 것과 증인이 생각한 것은 다르다"
경험한 사실과 사후 해석이 뒤섞이는 모습은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성남시
1공단 결합·분리개발을 둘러싼 신문에서도 나타났다.
유 전 본부장은 항소심 패소 뒤 성남시 내부에서 사업 지연과 정치적 부담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재판장은 이재명 당시 시장이 실제로 한 말과 주변 사정을 토대로 추론한 내용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전 본부장은 "구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한 것"이라고 답하면서도, 이재명 당시 시장이 직접 "우려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비슷한 장면은 서판교터널과 용적률 문제를 두고도 반복됐다.
유 전 본부장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요구가 성남시 결정에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김만배가 요구하는 것은 이재명이나 정진상이 거의 다 들어주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재판장은 이 표현 역시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유 전 본부장은 김만배의 요구와 성남시의 최종 결정이 일치했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 이진관 재판장 : "김만배가 요구하니까 이재명이 '내가 들어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수도 있고, 김만배가 증인에게 말했을 수도 있고, 실제 처리가 비슷하게 돼서 추측했을 수도 있다. 방금 말한 것은 무슨 취지인가."
- 유동규 전 본부장 : "성남시에서 김만배가 한 이야기가 결정돼서 오니 놀란 것 같다."
이 재판장이 "'김만배의 요구를 이재명이 들어줬다'고 추상적으로 말하면,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직접 대화가 있었던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자, 유 전 본부장은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달라진 진술에 "기억인가, 상황에 따른 추정인가"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법정에서 정 전 실장 측은 유 전 본부장이 다른 사람의 진술이나 문건을 본 뒤 자신의 과거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특히 1공단 분리 결재 과정에서 누가 시장실에 들어갔고, 정진상과 사전에 어떤 협의를 했는지를 두고 유 전 본부장의 답변이 구체화된 점을 지적했다.
유 전 본부장은 자신이 황무성 당시 사장과 유한기 본부장을 시장실에 들어가게 한 것은 기억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 재판장은 "기억이 나서 답한 것인가, 상황이 이래서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라고 물었고, 유 전 본부장은 "기억이 나서 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 시장실에 들어간 인물을 묻는 질문에 유 전 본부장은 "유한기, 황무성, 그 밖에도 개발본부 몇 명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기억하는 내용과 통상적인 업무 구조에 따른 추정이 다시 섞인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은 사건 초기에는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을 '의리'라고 생각했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과거 상황이 하나씩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저만 주범으로 만들고 거기서 끝낸다는 것이 검찰(1기 수사팀) 입장이었다. 그것이 의리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였다. 재판이 진행되다 보니 하나씩 단위별로 떠오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유동규 전 본부장)
이 재판장은 일반 증인이 직접 경험한 사실과 이후 형성된 생각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을 전공하거나 재판을 많이 받았으면 다를 텐데 일반인은 구별하지 못한다. 그냥 모두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진관 재판장)
이날 유 전 본부장은 이 대통령을 '마키아벨리'에 빗댔다. 그러나 이날 법정에서 벌어진 핵심 쟁점은 이 대통령과 정 전 실장의 지시에 관한 진술이 직접 경험에 따른 것인지 사건 뒤 형성된 해석인지를 가리는 데 있었다. 재판부가 "있었던 일과 증인 생각을 구별하라"고 거듭 요구한 이유다.
재판부는 8월 31일 열리는 다음 공판에서 정영학 회계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