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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벽면의 액자다. 훈장 중간 '대한민국' 네 글자의 인장이 빛바랬다며 어렵게 재발급받아 훈장증과 메달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둔 것이다. 23년 전 공직에서 퇴직한 친정아버지가 국가로부터 받은'녹조근정훈장'이다. 아버지는 훈장을 보며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한 보람을 이 훈장 하나로 보상받은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하셨다. 막걸리 한잔을 걸친 후 훈장을 받을 수 있었던 과거의 무용담을 늘어놓으셨다.

수십 년 전 인허가 부서에 근무할 당시 돈다발을 들고 집까지 청탁 하러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다. 그때마다 '당연히 거절해야지. 공무원이라면... 훈장은 퇴직하면 다 주는 거 아닌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그렇게 생각했던 그 훈장이 퇴직 7개월 차인 나의 눈앞에, 우리 집 식탁 위에 놓였다. 아버지 것과 똑같은, 그러나 내 이름이 적힌 훈장증과 메달을 눈앞에서 마주하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기쁘거나 들뜨는 감정은 아니었다. 무언가 턱 가슴을 한 대 치고 가는 묵직한 무게감, 이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일들이 정말 이 묵직한 훈장을 받을 만큼 무게가 있는 일이었나 나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공직자의 거절

훈장 35년 공직생활의 성적표다.
훈장35년 공직생활의 성적표다. ⓒ 김희

돌아보면 돈다발 들고 찾아온 사람은 없었어도 내게도 유혹과 타협할 수도 있었던 순간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내게도 인가 업무를 할 때 수고한다며 들고 온 음료수 박스 안에 표시 나지 않게 들어있던 흰 봉투를 보고 화들짝 놀랐던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봐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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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은 사무실로 꽃바구니가 배달됐다. 업무와 관련된 사람의 지인이 보낸 것이었다.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결국 그 건은 소송으로 치닫는 일이 되었고 나는 당시 참고인으로 법원에 출석하기까지 했다. 만약 그 꽃바구니를 받았더라면 지금 훈장증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공직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거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식탁 위 훈장을 보며 떠올리는 순간순간들은 분명 유혹과 타협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얼마 전 직장을 다닐 때 업무와 관련되어 알게 된 분이 '식사 한 번 해요. 이제 퇴직했으니 밥 먹어도 되잖아요. 다들 보고 싶어 해요'라고 연락이 왔다.

20년 전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할 당시 구성된 단체 임원 중 한 분이었다. 그때 구성된 임원 중 일부가 지금까지 한 번씩 만나 밥 먹고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어차피 밥 먹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할 걸 알아서 연락 안 했다면서, 퇴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같이 일했을 때 웃고 울었던 이야기들을 나누자고 했다. 순간 멈칫하는 내 감정을 핸드폰 너머로 느꼈는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젠 백수잖아요. 나오세요. '

그 다정한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찡해왔다. 현직에 있을 때 무 자르듯 싹둑싹둑 자르던 인연들인데, 퇴직하고 아무 힘이 없는 백수가 되어도 예전 서슬 퍼렜던 담당을 찾아주는 소중한 인연에 '네. 한번은 봐야죠. 저 할 말 많습니다'라고 답했다. 퇴직 7개월 차 백수로 단체 임원이 아닌 옆집 이웃 언니들을 만나는 날이 기다려진다. 그렇다. 내가 훈장을 마주하며 느낀 무게감은 바로 이런 것들이 모이고 쌓였던 지난 세월의 무게였나보다. 남들은 편하게 먹는 식사 한번조차도 먹어도 될지 생각을 거듭하며, 언제가 업무로 이해관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로 마다했던 시간들이다.

국가가 준 위로

지난날, 아버지의 훈장을 보며'공무원이면 당연히 청렴해야지, 퇴직하면 다 주는 거 아닌가'라며 혼자만의 잣대를 들이댔던 자신이 정작 내 훈장 앞에서 부끄러웠다. 실제 공직을 거치고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기 위해서는 재직기간 33년 이상, 재직 기간에 성실하게 국가와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적, 거기에 불문경고 이상의 징계 처분을 받은 적이 없어야 한다. 결국 긴 세월 동안 유혹과 타협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묵묵히 결승선에 도달한 사람에게 국가가 주는 위로와 고마움의 증표를 나는 받은 것이다.

벽에 걸린 훈장을 보며 평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한 보람이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하루였다. 기억조차 없는 수많은 일들을 하며 큰 오점 없이, 부끄럽지 않게 결승선까지 도착해 받은 훌륭한 성적표다. 그러나 이제 지나온 세월의 무게는 이 훈장과 함께 묻어 두겠다.

무겁게 짓누르던 책임감도, 훈장을 받고 느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도, 훈장증에 담아 서랍 깊숙이 넣어두려 한다. 이제는 무거운 직함 대신 홀가분한 백수로 옆집 이웃 언니들과 나눌 수 있는 밥 한 끼와 다정한 수다를 기다리는 그냥 아줌마다. 평범한 동네 아줌마로 돌아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나의 후반기 인생을 살아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퇴직#훈장#녹조근정훈장#훈장증#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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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noheene) 내방

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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