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 ⓒ 이영일
성교육은 모든 청소년에게 보장돼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장애 청소년들이 적절한 성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거나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야 뒤늦게 지원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교육의 공백을 메우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통합 성교육을 꾸준히 실천해 온 기관이 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다.
2014년부터 탁틴내일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는 단순히 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 장애 청소년과 비장애 청소년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포용적 성교육 모델을 구축해 눈길을 끈다.
특히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포괄적 성교육과 성행동 지원 체계를 마련하며 우리 사회의 건강한 성문화 정착을 위한 지역 거점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자는 15일 오후 직접 센터를 방문해 김보람 센터장으로부터 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원들을 만나봤다.
10년 넘게 이어온 통합 성교육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 내에 마련된 체험관 성교육 모습 ⓒ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통합'이라는 철학이다. 센터는 위탁 운영을 시작한 초기부터 장애 청소년과 비장애 청소년 모두가 동등하게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 프로그램을 설계해 왔다. 장애 청소년 동아리와 비장애 청소년 동아리를 꾸준히 운영해 왔으며 최근에는 같은 교실에서 함께 배우는 통합 성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센터가 처음 문을 열 때부터 가장 중요한 방향은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모두가 평등하게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어요. 이제는 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 비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을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함께 배우는 통합 성교육이 목표입니다."
김보람 센터장 장애 학생의 특성에 맞는 교육과 비장애 학생의 특성에 맞는 교육은 각각 필요하지만 결국 같은 교실 안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배우는 것이 진정한 통합교육이라며 "쉽고 재미있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성교육을 만드는 것이 센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보람 센터장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포괄적 성교육 매뉴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 이영일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의 전문성은 발달장애 청소년 성교육 분야에서 더욱 빛난다. 센터는 2021년부터 3년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발달장애인을 위한 포괄적 성교육 매뉴얼을 개발했다.
1차 연도에는 기본 매뉴얼을 제작하고 2차 연도에는 현장 시범사업을 진행했으며 3차 연도에는 개정판을 제작해 전국 6개 권역을 순회하며 교사와 실무자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현재 해당 자료는 현장 교육자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비장애 청소년에게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하다면 발달장애 청소년에게도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어요. 매뉴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전국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교육하고 공유하면서 실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를 뒀습니다."
이 같은 센터의 노력은 기존 비장애 중심으로 개발돼 온 성교육 콘텐츠의 한계를 보완하며 장애 청소년 성교육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고가 나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권리이기 때문에 배우는 것

▲기자가 방문한 15일 오후, 센터 직원들이 한참 회의중이었다. ⓒ 이영일
센터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장애 청소년 역시 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김 센터장은 "현장에서는 아직도 장애 학생의 성교육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차원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장애 청소년도 자신의 몸과 관계를 이해하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성교육을 받아야 하는 주체"라고 말한다.
이어 "예방 중심의 교육이 결국 청소년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성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모든 청소년에게 보장돼야 할 권리"라고 강조했다.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는 최근 장애 청소년의 성행동 지원에도 전문성을 넓혀가고 있다.
학교에서 성기를 만지는 행동이나 온라인에서 낯선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등 성 관련 행동이 나타났을 때 학생만 별도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성교육 전문가와 특수교사, 통합학급 교사, 상담교사, 보호자, 필요에 따라 특수교육 교수와 치료사까지 함께 참여해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고 맞춤형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성행동 지원 컨설팅'을 운영하고 있는 것.
"아이들은 이유 없이 행동하지 않아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특성과 환경을 함께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장애 학생의 성 관련 문제를 전문적으로 지원할 체계가 거의 없어 센터로 상담과 지원 요청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같은 다학제 협력 방식은 처벌이나 통제보다 이해와 예방 중심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교육 현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의 찾아가는 성교육 모습. ⓒ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
포용의 문을 열다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는 프로그램 홍보 방식에서도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많은 교육 프로그램이 '초등학교 6학년 대상' 등 처럼 안내하지만 장애 학생과 보호자들은 실제 참여가 가능한지 망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김센터장은 말한다.
"사람들은 별도의 안내가 없으면 비장애 학생만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인식 자체가 또 다른 분리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면 장애 학생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 맞죠. 오히려 비장애 학생만 대상이라면 그렇게 명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이 같은 철학은 센터의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대표 프로그램인 '모두를 위한 월경 이야기'는 장애 청소년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되며 '시끄러운 영화관'은 관람 중 이동하거나 소리를 내더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환경을 조성해 감각 민감성이 있는 청소년들도 편안하게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다.
김 센터장은 "장애 학생이든 비장애 학생이든 누구나 와도 되고 언제든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해요. 센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월경이야기 교육 모습. ⓒ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는 현재 서울시 권역별 네트워크 체계 안에서 성북·중랑·동대문 지역을 중심으로 교육과 상담을 수행하고 있으며 상근인력 5명과 전문 위촉강사 11명이 학교와 지역사회 곳곳을 찾아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뿐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 지역기관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협력도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건강한 성문화 확산의 거점 역할도 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현재 가장 큰 과제로 장애 청소년 성교육을 지원하는 공적 시스템의 부재를 꼽았다.
"학교에서 성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아이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전문적으로 지원할 기관이 거의 없어요. "런 업무는 법적으로 센터에 주어진 역할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법인인 탁틴내일도 이러한 방향을 적극 지지해 주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우리가 하자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성교육

▲지난 15일 길음동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 사무실에 만난 김보람 센터장(가운데)과 직원분들이 기념촬영 포즈를 취해 주셨다. ⓒ 이영일
성교육은 특정 청소년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청소년이 자신의 몸과 관계를 이해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는 지난 10여년 동안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성교육'이라는 가치를 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실천해 왔다. 장애 청소년의 성교육 권리를 보장하고 지역사회와 학교, 가정을 연결하며 통합 성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온 이들의 노력은 단순한 프로그램 운영을 넘어 우리 사회의 성문화와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의미 있는 실천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적 지원체계가 여전히 부족한 현실 속에서도 '모든 청소년은 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원칙을 지켜온 성북청소년성문화센터의 실험은 이제 지역사회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는 교육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