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무원 김지영씨의 철밥통 지키기'라는 제목으로 가상의 새내기 공무원에 대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유튜브 영상이 공개 하루 만에 조회 수 83만 회를 넘기며 화제를 모았다. 개그우먼 이수지 씨가 새내기 공무원의 하루와 애환을 풍자해 대중의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영상 댓글에는'눈물 나게 공감된다' '이게 현실이다'라는 현직 공무원들의 공감이 이어졌다.
화면 속 개그우먼의 익살스러운 연기를 보며 대중은 웃고 지나치겠지만, 나는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평생을 몸담았던 공직에서 퇴직한 선배의 눈에는 그 풍자가 다소 과장되고 익살스러울지언정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공직에 들어선 1990년만 해도 공무원이라는 신분은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자부심으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 후배들이 마주한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새내기 공무원들을 사지로 모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시대가 변할수록 더욱 거칠어지는 악성 민원이 단연 우선으로 손꼽힌다.
몇 해 전 내가 근무하던 조직에서도 임용 1년 차 새내기 공무원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불법 주정차 과태료 이의신청과 단속 항의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었다. 학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일부 민원인들이 쏟아내는 지속적인 폭언, 막말, 협박은 혼자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거대한 폭력이다. 그 아까운 신규 직원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선배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무력감에 한동안 손에 일을 잡지 못했었다. 자식 같은 직원의 죽음 앞에서 선배들은 무책임했다는 부담과 부끄러움으로 오랫동안 마음이 짓눌렸다.
공직에 몸담았던 지난 35년 세월 동안 세상은 빠르고 눈부시게 변했다. 물론 공직 내부에서도 직원들의 역량 강화, 친절에 대한 교육 등 여러모로 변화와 노력을 기울여왔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공직 사회를 탈피해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여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은 행정기관의 정당한 절차를 존중하고 사회통념에 어긋나지 않게 상식적으로 공무원을 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다수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무색해질 만큼 최근 일부 민원 창구의 풍경은 도를 넘어섰다. 정당한 행정절차조차 무차별적인 비난으로 일색하고, 담당 직원의 신상을 털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폭탄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실정이다. 공직 사회에 첫 발을 딛고 친절이라는 두 글자 뒤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새내기 창구 직원들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공직 사회 일각의 미숙한 응대나 고압적인 태도가 창구를 찾는 민원인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잘못을 막기 위해 기관마다 다양한 방식의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공무원의 친절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사회적 과제가 바로 악성 민원이다.
결국 공무원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리다. 정당한 절차와 제도를 넘어 공무원을 감정 해소의 대상으로 삼는 일부 문제는 분명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함께 상식적이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행정을 집행하는 공무원과 서비스를 받는 국민 모두가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지금도 다양한 공공기관 창구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공무원들도 결국에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여느 직장인들과 같은 일선 노동자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점을 서로가 기억할 때 비로소 민원 창구의 거칠고 아찔한 풍경도 사라지지 않을까...
유튜브 속 새내기 공무원의 모습이 그저 호기심으로 웃고 보는 화제 영상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창구에서 벌어지는 악성 민원의 불편함을 우리 모두가 엄중하게 바라보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공직 사회 내부에서는 선배와 상사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이제 막 사회 첫발을 딛는 새내기 직원들을 민원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하고, 외부에서는 창구를 찾는 국민이 청년 공무원들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어야 한다.
공무원들 또한 이러한 안전한 환경 속에서 안심하고 국민에게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결국 서로서로 지켜주고 존중할 때 악성 민원은 설 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국민이 있는 현장의 최일선에서, 주민센터의 민원 창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무원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의 일상이 유지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언제 어떻게 거친 민원과 마주할지 몰라 불안감을 안은 채 일선을 지키며 국민을 마주하고 있을 현장의 후배들에게 35년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말해주고 싶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사회를 지키고 지탱하고 있는 후배들의 땀방울은 절대 가볍지 않으며 이 사회가 유지되는 귀중한 가치라고 말이다. 마주하는 현실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당당하게 공직자의 길을 걸어가 주길 바란다. 이제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후배 공무원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