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포역 근처에서 책 얘기를 풀어내고 있는 김신곤 공저자 ⓒ 김슬옹
로마 신화의 야누스는 문(門)을 지키는 신이다. 하나의 몸에 두 얼굴을 달고, 한 얼굴은 지나온 과거를, 다른 얼굴은 다가올 미래를 바라본다. 시작과 전환의 신이다. 인공지능(AI)이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우리 일상을 감싸는 시대, 세 명의 학자가 바로 이 야누스를 표제로 삼은 책을 내놓았다. 신간 <디지털 야누스의 두 얼굴>(2026년 4월 출간)이다.
정보시스템(IS)을 평생 연구한 김준우 교수, 보안을 파고든 김정덕 교수, 그리고 AI의 기회와 그림자를 집요하게 추적해 온 김신곤 교수. 세 사람은 때로는 산길을 함께 오르는 트레킹 동반자로, 때로는 술 한잔을 앞에 두고 논쟁하는 학문적 동지로 이 책을 빚어냈다고 한다. 기술을 차가운 서버실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라는 체계(사회-기술 시스템) 안에서 바라보려는 시선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그중에서도 인공지능 분야를 이끈 공동 저자 김신곤 교수는 필자의 훈민정음 해례본 강의를 두 번 들은 인연으로 이 책에 더 호기심이 갔다. 지난 11일 필자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 책 담론을 나눴다.
- 책 제목이 '야누스의 두 얼굴'입니다. 왜 하필 두 얼굴인가요. 첫 장에서는 '기회가 곧 위기'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우리는 흔히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합니다. 케네디 대통령도, 처칠도 위기(危機) 안에 위험과 기회가 함께 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저는 그 화살표를 반대로도 돌려보자고 제안합니다. 기회를 놓치는 순간, 그것은 곧바로 위기가 됩니다.
2024년 11월, AI 반도체의 선두 엔비디아가 인텔을 밀어내고 다우지수에 편입됐습니다. 25년 만의 '간판 교체'였지요. 인텔은 엔비디아 인수 기회도, 오픈AI 투자 기회도 놓쳤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과거 3차원 반도체 양산 기술과 안드로이드 투자 제안을 그냥 흘려 보낸 적이 있습니다. 놓친 기회가 그대로 위기로 돌아온 것입니다.
AI는 인류에게 유례없는 편익을 안기는 동시에, 소외와 편향과 보안 위기라는 그림자를 함께 드리웁니다. 빛이 강렬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지요. 이 빛과 그림자를 한 몸에 지닌 존재, 그것이 바로 야누스입니다. 어느 한쪽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막연한 공포에 매몰되지도, 맹목적 낙관에 취하지도 말고, 두 얼굴을 동시에 '직시'하자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 AI의 본질을 우리 전통 사상인 '천지인(天地人)'으로 풀어내신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능이란 결국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적응해야 할 환경은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 전통의 천지인 사상에서 그 답을 빌려왔습니다. 하늘(天)은 '시간'이고, 땅(地)은 '공간'이며, 사람(人)은 곧 '사회'입니다.
인간의 지능은 시간에 적응하기 위한 '예측' 능력이자, 공간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최적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지식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언어 능력, 남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학습 능력, 거기서 새로운 지식을 길어 올리는 추론 능력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이 과정을 흉내 내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지요.
여기서 꼭 짚고 싶은 구분이 있습니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근육'을 대체한 생산성 혁명, 곧 물리적 세계를 바꾼 혁명이었습니다. 반면 AI 혁명은 인간의 '두뇌'를, 지능 그 자체를 확장하는 혁명입니다. 지적 세계를 바꾸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AI를 산업혁명의 연장이 아니라, 그와 구별되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 'AI 문명'으로 봅니다."
- AI를 둘러싸고 '두머(비관론)'와 '부머(낙관론)'의 논쟁이 뜨겁습니다. 규제는 어떻게 가야 할까요.
"이 논쟁은 이제 철학을 넘어 기업의 생존과 국가 안보를 가르는 분수령이 됐습니다. 한쪽에는 두머(doomer)가 있습니다. AI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요슈아 벤지오 같은 이들이지요. 이들의 두려움은 단순한 기술 비관론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의 작동 원리를 정작 인간 스스로 이해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하는 '블랙박스'에 대한 근원적 무지에서 나옵니다.
반대쪽에는 부머(boomer)가 있습니다. 얀 르쿤, 앤드루 응 같은 이들은 AI야말로 기후 위기와 난치병을 풀어줄 구원 투수라고 봅니다. 실제로 알파폴드는 인간 과학자들이 50년간 매달린 단백질 2억 개의 구조를 며칠 만에 예측해 냈지요.
세계는 지금 두 갈래 길에 서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질서'를 앞세워 세계 최초의 AI법을 발효했고, 미국은 '속도'를 패권 전략으로 삼아 '안전한 혁신'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규제해야 할 것은 '엔진'이 아니라 '비행'입니다. 비행기가 위험하다고 엔진 개발 자체를 막지는 않습니다. 대신 조종사 자격을 검증하고 안전한 항로를 설계하지요. AI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가'를 규제해야 합니다.
AI는 본래 가치 중립적입니다. 유토피아의 도구가 될지, 디스토피아의 무기가 될지는 전적으로 인간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직시하고, 이를 안전하게 다룰 사회적 합의와 정교한 거버넌스입니다."
- 딥페이크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강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생성형 AI가 만든 딥페이크는 이제 단순한 가짜 정보를 넘어섰습니다. 유네스코가 경고한 '인지 위기(cognitive crisis)', 즉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인류의 기본 인식 체계 자체가 무너지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가짜 뉴스와 딥페이크는 구분해야 합니다. 가짜 뉴스가 이익을 노리는 '악의적 목적'이라면, 딥페이크는 그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둘이 결합하면서 파괴력이 차원을 달리하게 됐지요.
미국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목소리를 흉내 낸 투표 거부 전화가 돌았고, 슬로바키아 총선에서는 가짜 음성 파일이 승패를 갈랐으며, 조작된 펜타곤 폭발 사진 한 장이 세계 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습니다. 15초 표본만으로 목소리를 복제하는 시대입니다.
민주주의는 '공유된 사실'과 '시민의 합리적 판단'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딥페이크는 이 두 기둥을 동시에 무너뜨립니다. 판단의 근거가 오염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사회의 신뢰 자본을 고갈시키지요.
그래서 입체적 방어가 필요합니다. 콘텐츠에 출처를 추적할 워터마크와 기술적 서명을 붙이고, 플랫폼에는 선제적 탐지 책임과 강력한 법적 제재(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처럼)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 개개인의 미디어 문해력이 관건입니다. 맹신보다 검증을 전 국민의 생존 기술로 익혀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 한글 이야기를 여쭙겠습니다. 한글이 디지털과 AI 시대에 특히 적합하다고 쓰셨는데요.
"한글은 원리적으로 디지털 친화적인 문자입니다. 창제 원리부터 과학적이기 때문이지요. 발음 기관을 본뜬 기본 자음에 획을 더해 소리의 세기를 표현하는 가획 원리(ㄱ→ㅋ, ㄴ→ㄷ→ㅌ처럼), 그리고 초성·중성·종성을 하나의 음절로 모아 적는 규칙성, 이 명확한 규칙성 덕분에 컴퓨터가 한글을 알고리즘적으로 조합하고 분해하기가 무척 쉽습니다. 유니코드 체계에서 모든 한글 음절이 수학적으로 계산되어 배치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중국어의 병음-한자 변환이나 일본어의 가나-한자 변환 같은 별도 과정도 필요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AI 시대에 이 강점이 더 빛난다는 점입니다. 책에서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AI의 언어 인식 정확도가 한글은 약 97%로 영어(약 72%)나 중국어(약 68%)보다 훨씬 높습니다. 한글이 '1음소 1음가' 원리를 거의 완벽하게 지키는, 곧 소리 나는 대로 쓰는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소리와 글자와 코드가 거의 완벽하게 동기화되는 것이지요.
한글은 15세기의 창조물이지만, 마치 21세기 디지털 세상을 위해 태어난 문자처럼 보입니다. 세종대왕이 '누구나 쉽게 익히게 하라'며 만든 그 글자를, 이제는 인공지능마저 배우고 활용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세 저자는 땀 흘려 오른 산 정상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기술이 결코 차가운 코드 속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야누스의 두 얼굴 앞에서 그들이 끝내 붙든 질문은 하나다. 기술의 숲에서 어떻게 인간의 길을 잃지 않을 것인가. 김신곤 교수의 답은 명료했다. 빛을 지혜롭게 누리되 그림자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내면의 방패'를 갖추는 것, 그것이 디지털 야누스와 함께 살아갈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김신곤 교수는 융합적 지식이 녹아있는 훈민정음과 그것을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배운 덕에 이런 융합적 책을 집필하게 됐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필자로부터 훈민정음 해례본 배운 인사치레가 아님을 책 내용이 증명한다.

▲《디지털 야뉴스의 두 얼굴》 표지 @이담북스 ⓒ 이담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