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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도심의 불빛이 하나둘 꺼질 무렵, 오토바이 한 대가 마지막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몇 시간 뒤면 그는 다시 공장 문을 연다.

30대 후반으로 강원도 강릉에 거주하는 J씨는 낮에는 알루미늄을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자영업자이고, 밤에는 배달 기사다. 그의 하루는 이른 아침 공장에서 시작해 새벽 1시에 끝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쉬는 날은 없다. 오히려 토요일과 일요일은 주문이 몰려 더욱 바쁘다. 날씨가 나쁠수록 배달 주문은 늘어나고, 그의 노동도 길어진다.

그가 이렇게 두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빚을 갚기 위해서다.

 밤낮없이 달리는 가장. 낮에는 알루미늄 가공업을, 밤에는 배달 일을 하며 새벽까지 오토바이를 모는 자영업자의 모습. 가족의 생계와 개인회생 변제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 18시간 가까이 일하고 있다.
밤낮없이 달리는 가장. 낮에는 알루미늄 가공업을, 밤에는 배달 일을 하며 새벽까지 오토바이를 모는 자영업자의 모습. 가족의 생계와 개인회생 변제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 18시간 가까이 일하고 있다. ⓒ 진재중

미래를 준비하던 공장, 빚을 버티는 일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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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만 해도 그는 자신의 기술 하나면 충분히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알루미늄을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기술은 오랜 경험으로 다져온 경쟁력이었고, 거래처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설비를 늘리고 사업장을 확장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워 두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이 있었고, 성실하게 일하면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원자재 시장이 요동치면서 그의 계획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주원료인 알루미늄 가격이 급등했지만 거래처에 납품하는 제품 가격은 원가 상승만큼 올릴 수 없었다.

결국 늘어난 원가 부담은 모두 그의 몫이 됐고, 사업 확장을 위해 준비했던 자금은 회사를 지키기 위한 운영자금으로 바뀌었다. 은행 대출로 버티던 그는 결국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출까지 이용하게 됐고, 미래를 향한 투자였던 사업 계획은 빚을 갚기 위한 생존의 시간으로 바뀌고 말았다.

 잘나가던 사업장은 원자재 가격 급등과 경기 침체를 견디지 못한 채 빚더미에 올랐다. 한때 확장을 꿈꾸던 공장은 이제 생존을 위한 일터가 됐다.
잘나가던 사업장은 원자재 가격 급등과 경기 침체를 견디지 못한 채 빚더미에 올랐다. 한때 확장을 꿈꾸던 공장은 이제 생존을 위한 일터가 됐다. ⓒ 진재중

빚을 갚느라 잃어버린 가족의 일상

결국 부부는 법원의 개인회생 절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 명의로 마련했던 집마저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잃게 되었고, 남은 빚을 정리하기 위해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출발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도 가족을 지탱한 것은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을 책임지는 동시에 법원 변제금까지 마련하기 위해 맞벌이에 나섰다.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부부는 가족의 미래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다시 일어설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휴일이 싫어요,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아이들과 보내야 할 시간은 배달 시간으로 바뀌었고, 가족의 추억은 매달 법원에 납부하는 변제금으로 대신하고 있다.

부부에게는 두 자녀가 있지만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난 기억은 오래전 일이 됐다. 주말은 쉬는 날이 아니라 변제금을 마련하는 날이다.

 여름 휴가를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 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 주말도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쉽게 누릴 수 없는 풍경이다.
여름 휴가를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 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 주말도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쉽게 누릴 수 없는 풍경이다. ⓒ 진재중

빚보다 더 무거운 것은 불공평한 현실

그들은 법원이 정한 변제금을 단 한 번도 미루지 않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다. 외식도 줄이고, 여행도 포기하고, 사고 싶은 것도 미룬다. 성실하게 빚을 갚는 것이 다시 일어서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깊은 자괴감이 밀려온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죽도록 일해서 한 푼도 빠짐없이 갚고 있는데, 세금을 교묘하게 피하고 재산을 숨기거나 빚을 갚지 않은 채 버티는 사람들을 보면 허탈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허무함이 묻어 있었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희생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 법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사회를 보며 그는 깊은 불공평함을 느낀다고 했다.

"빚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회생도 성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다하는 사람만 계속 희생하는 사회는 너무 억울합니다."

그는 특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기준과 같은 책임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회를 바랄 뿐이다.

 부모가 생계를 위해 일터를 지키는 사이, 두 아이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달려야 하는 부모에게 가장 미안한 순간이다.
부모가 생계를 위해 일터를 지키는 사이, 두 아이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달려야 하는 부모에게 가장 미안한 순간이다. ⓒ 진재중

오토바이에 실은 것은 생계가 아닌 가족의 미래

오늘도 그는 오토바이에 오른다. 누군가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에서 주문 버튼을 누르지만, 그 한 건의 배달은 누군가에게는 아이들의 내일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노동이다.

그는 자신의 빚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성실하게 갚기 위해 하루 17시간 가까이 일한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빚 자체가 아니다.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이 더 큰 대가를 치르고, 책임을 외면한 사람이 더 편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다.

새벽 1시, 마지막 배달을 마친 그는 다시 집으로 향한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일도 같은 하루를 준비한다. 그는 오늘도 돈을 벌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기 위해 달리고 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배달 노동. 낮에는 자영업을 운영하고 밤에는 오토바이에 올라 생계를 이어가는 한 자영업자의 지친 일상은 고금리와 경기 침체 속에서 버티는 소상공인의 현실을 보여준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배달 노동. 낮에는 자영업을 운영하고 밤에는 오토바이에 올라 생계를 이어가는 한 자영업자의 지친 일상은 고금리와 경기 침체 속에서 버티는 소상공인의 현실을 보여준다. ⓒ 진재중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하며

지난 15일,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밝힌 메시지는 그의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이 대통령은 빚을 졌지만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파산·면책 등 제도를 통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장기간 빚의 굴레에 갇힌 채 경제활동에서 멀어지는 것은 개인의 고통을 넘어 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못 갚는 빚 때문에 사람이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지적은 빚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버티고 있는 그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새벽까지 오토바이를 몰며 가족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달리는 그의 바람은 거창하지 않다. 개인회생 절차를 시작한 뒤 지난 2년 동안 그는 매달 정해진 변제금을 빠짐없이 납부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3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 있다. 그 긴 시간을 견디며 그는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좌절하지 않는 사회다.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빚의 무게 때문에 희망까지 잃지 않도록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빚의 굴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새벽길을 달리는 그가 꿈꾸는 가장 소박하지만 간절한 바람이다.

#개인회생#고물가#빈부격차#가정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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