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6 하반기 경제성장전략 당정협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이거 제대로 못 쓰면 역사에 또 죄인이 되지 않을까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조심스러웠다. 기자가 올 한해동안 예상되는 정부의 추가 세수의 활용 방안을 묻자, 그가 꺼낸 말이다. 구 부총리는 추가로 확보되는 재원을 단기적인 지출에 소진하기 보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미래 투자에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14일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핵심은 '3·4·5 비전'이다. 장기적으로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3%대로 끌어올리고, 한국을 세계 4대 수출국으로, 국민소득 5만 달러 시대를 앞 당기겠다는 것이다(관련기사:
"3% 성장·수출 4강·소득 5만 달러"... 반도체 호황을 경제 대도약으로 https://omn.kr/2j266).
오랜만에 보는 구호였다. 성장률부터 수출대국, 5만달러 등은 구호(?) 만큼이나 쉽지 않다. 정부의 공식 발표 하루 전날인 지난 13일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만난 구 부총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모두 발언에서 "최근 수출이 굉장히 좋다"며 "1월부터 5월까지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해 12개월 흑자를 능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이 좋은 상황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올해 성장률 전망을 3%로 높인 배경을 설명했다.
"2.9%라고 할 바에는 3% 목표로 삼자"
정부가 다른 전망기관보다 성장률을 높게 잡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반도체 수출과 기업 설비투자, AI 관련 투자를 근거로 들었다. 구 부총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나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6%, 일부 기관은 2.9%까지 가는데, 2.9%라고 할 바에는 3% 정도를 목표로 삼아 정부도 총력 대응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투자가 이뤄지도록 규제 완화와 인허가 절차도 대폭 개편하겠다"며 "3%에는 정책적 의지도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전망에는 단순한 예측뿐 아니라 정책 목표도 들어가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3% 성장을 달성하고, 내년부터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가 본격화되면 중장기 잠재성장률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구 부총리의 판단이다.
실제 정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올해 우리나라 실질 성장률을 3%, 경상성장률을 12.3%로 전망했다. 수출 증가율은 40%,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2900억 달러로 예상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4만 달러에 근접하고, 국가채무비율은40%대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구 부총리는 거시지표만 놓고 경제를 낙관하지는 않았다. 그는 물가와 환율, 금리, 청년 고용을 주요 위험요인으로 꼽으며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높은 경제성장은 정부의 세수에도 파란불이 들어왔다. 당초 정부가 전망했던 세수보다 추가로 100조원에 가까운 추가 세수가 들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추가 세수의 활용방안에 대해, 그는 "정부 안에서도 생산성을 높이고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부분에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면서 "진짜 잘 쓰려고 정부 내에서도 머리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사용처는 3대 메가프로젝트와 초혁신경제, 청년, 지역, 미래 인력 등이다. 여기에 센서반도체와 액추에이터(로봇구동기), 로봇용 소형 배터리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도 포함됐다. 구 부총리는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국가가 미래에 대비하는 부분에 돈을 많이 써야 한다"며 "일부는 양극화 해소에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3대 메가프로젝트, 정부는 전력·용수부터 깔아야... 주 52시간 예외, 이상-현실 사이 타협 쉽지 않아"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연합뉴스
정부의 핵심 사업인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한 정부 재정의 역할과 주 52시간제 예외 여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구 부총리는 "정부는 인프라를 한다"며 전력과 용수, 부지 공급을 대표적인 역할로 꼽았다. 그는 "기업이 가동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인프라를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기업 투자 속도와 입지에 따라 정부 투자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 정확한 금액을 산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반도체 생산시설과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지역의 전력·용수 인프라에는 재원을 우선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속도를 빨리 내야 하기 때문에 정부 투자도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또 이들 신규 반도체 공장에서 주 52시간제 예외를 둘 것인징 대해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구 부총리는 "노동 관련 이슈는 굉장히 예민하다"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정부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관련 입법 추진 역시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특별법을 비롯해 군부대 이전과 각종 인허가·규제 특례 등 여러 법률을 동시에 손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법 개정 사항이 수십 건일 수도 있고 상임위원회도 흩어져 있을 수 있다"며 "국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일괄적으로 처리할지, 개별 상임위에서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질문에는 AI가 일자리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구 부총리는 "회계사 같은 경우도 아주 초급 회계사들은 고용을 계속 줄이는 것 같다"며 "AI 시대에 초기 단계, 초급 단계의 고용이 줄어드는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정부 대책으로는 AI 활용 교육을 제시했다. 단순히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업무에 맞는'에이전트 AI'를 학습시키고, 이를 생산성 향상과 창업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구 부총리는 "청년들이 에이전트 AI를 잘 쓴다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기회도 엄청날 것"이라며 "한국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창업까지 고용 경로를 다원화하면 단기적으로 줄어드는 고용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즈베키스탄과 몽골 방문 경험도 꺼냈다. 그는 "AI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보내달라는 수요가 굉장히 많았다"며 국내 청년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강조했다.
'삼전·닉스'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해외로 빠지는 돈 막으려 도입했지만..."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주가 급락 과정에서 논란이 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대해서도 질문이 나왔다. 구 부총리는 먼저 제도 도입 배경부터 설명했다. 홍콩을 비롯한 해외시장에 2배 레버리지 ETF가 잇따라 상장되면서 국내 투자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그는 "우리 반도체 시장이 좋아지니까 해외 ETF에 투자하는 자금이 많았다"며 국내에도 관련 상품을 허용한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 반도체 종목에 상품과 자금이 과도하게 몰렸고, 시장 변동성을 키웠다는 지적도 인정했다. 구 부총리는 "정책을 한 번 도입했다고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면서, 당초 도입 목적과 새롭게 드러난 부작용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관계 부처가 시장 상황과 투자자 보호 문제를 검토해 현실에 맞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상품을 제한하거나 배율을 낮출지, 신규 상장을 억제할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가 당장 규제를 확정한 단계는 아니지만,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보완하는 쪽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또 정부가 추진중인 국부펀드는 별도 기관을 만드는 대신 한국투자공사(KIC) 안에 설치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구 부총리는 "기관을 너무 많이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고, KIC는 뭐고 또 새로 만드느냐는 국회 논란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KIC에서 한쪽은 외환보유액을 운용하고, 다른 한쪽은 국부펀드를 운용하도록 하면 기존 투자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며 "싱가포르 테마섹처럼 별도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울타리 안에서 체계적으로 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원으로는 정부 세입과 공기업 주식, 추가 세수 등을 제시했다. 국민의 자발적 기부나 상속재산의 일부를 국가에 기부하는 방안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했다. 구 부총리는 "돌아가실 때 국가에 절반, 자식에게 절반이라는 슬로건도 고민해볼 수 있다"며 "국가에 기부한 분에게 명예를 주고 국부펀드 역사에 남도록 하는 다양한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며 "작지만 알차게 시작하고 국민 참여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정부 보조금을 단순 지원이 아니라 투자 방식으로 전환할 때 국부펀드가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부동산엔 "살지 않는 집 여러 채 사는 데 인센티브 안 줘"
간담회 막바지에는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구 부총리는 "개인이 실제 살기 위해 집을 사는 것은 합리화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사놓고 살지 않는 집을 보유하거나 여러 채를 사놓는 데 정부가 금융이나 세제를 통해 인센티브를 주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다주택자를 처벌하겠다는 취지라기보다, 투자 목적의 주택 보유를 금융·세제상 우대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거래세와 보유세의 구체적인 조정 방향은 국민 토론과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확정할 예정이다.
구 부총리는 이날 정책은 발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보완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정책이라는 게 어느 한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계속 발전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3% 성장과 수출 호조를 앞세운 정부의 자신감 뒤에는 물가와 환율, 금리, 청년 고용, 부동산과 금융시장 변동성에 대한 긴장감도 동시에 묻어났다. 정부가 내놓은 '3·4·5 비전'이 거시지표의 숫자를 넘어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다음 과제로 남았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6 하반기 경제성장전략 당정협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남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