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친구들은 기차를 타고 복귀했으나 나는 혼자 임시수도기념관으로 향했다. 점심은 돼지국밥을 먹었다. 역시나 부산에서 먹는 돼지국밥은 맛이 있다.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의 식감도 좋았고, 양념에 무친 부추와 마늘, 양파를 국밥에 넣고 먹으니 육수가 더욱 맛이 났다.
임시수도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임시수도를 기념하여 1984년에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 중심 건물이었던 대통령관저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1926년부터 도지사 관사로 운영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벽돌로 지은 2층 가옥으로,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거처하던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의 집무실과 응접실 등이 재현되어 있다. 또한 2012년부터는 대통령관저 뒤편에 자리 잡고 있던 옛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를 재단장하여 새로운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이 전시관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수도기념관 ⓒ 여경수
1948년 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승만 세력과 한국민주당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립하였다. 당시 국회의 다수세력이던 야당은 의원내각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였으나, 1950년 3월에 부결되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총선 결과, 국회의 다수세력이 이승만 대통령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에 국회 선거로는 대통령에 재선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1948년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52년 1월, 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은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이후 야당은 다시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각각 다시 제출하였다.
그 후 1952년 7월, 야당안과 정부안을 발췌하여 절충한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와 같이 발췌개헌이라 불리는 1952년 헌법의 개헌 배경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국민직선제 도입을 둘러싼 다툼이었다. 당시 개헌은 야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으나,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 정도의 행위였다.

▲대한민국임시수도 대통령관저 ⓒ 여경수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이 제정된 이후 해방 이전까지 수차례에 걸쳐 헌법 개정이 있었다. 이승만 탄핵과 같은 노선 갈등도 없지 않았으나, 그 개헌들은 대체로 여러 갈등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지향하는 과정이었다. 이에 견주어 보면, 1952년 발췌개헌은 통합이 아니라 한 사람의 권력 연장을 위한 개헌이었다는 점에서 임시정부의 헌정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한민국임시수도 중앙청 - 현재는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여경수
또한 1952년 헌법 개정은 공고 절차 없이 국회에서 의결된 데다, 임시수도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을 겁박한 채 강행된 것이다. 임시수도에서 이루어진 가장 뼈아픈 우리의 헌정사를 정확하게 소개하는 것이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위상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잘못도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임시수도 시절 중앙청으로 활용한 건물은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절 경남도청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박물관 전시물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백범 김구의 글씨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그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나라의 수장이 되었더라면,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백범 김구는 독립된 조국에서 문지기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을 막고자 애썼던 그는 정부 수립 이후 결국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