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밥 먹듯 해도 월급은 똑같아요. 계약할 때 포괄임금이라고 했거든요." 많은 노동자가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했거나, 주변에서 들어봤을 것이다. 야근이 쌓이고, 주말도 반납했는데,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변함이 없다. '포괄임금제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며 그냥 넘어가는 일이 반복된다.
포괄임금, 원래는 이런 제도가 아니다
포괄임금이란 실제 근로시간을 일일이 따지기 어려운 경우에 한해, 미리 일정 시간을 가정하고 수당을 포함한 임금을 정해두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외근이 잦은 영업직이나 업무 경계가 불분명한 일부 직종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쓰였다. 근로시간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사무직, IT 개발직, 콘텐츠 제작직 등 다양한 직종에서까지 포괄임금 약정을 내세워, 아무리 많이 일해도 추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공짜노동'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기본급과 수당이 뒤섞인 임금명세서, 매달 야근해도 변하지 않는 월급, 수당 항목이 아예 구분조차 되지 않는 계약서. 이것이 수많은 노동자가 실제로 경험하는 포괄임금제의 현실이었다.

▲야근이 쌓이고, 주말도 반납했는데,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변함이 없다. ‘포괄임금제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며 그냥 넘어가는 일이 반복된다. ⓒ pixabay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미 제동을 건 바 있다. "근로시간 수에 상관없이 일정액을 법정수당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 지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그것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에 관한 규제를 위반하는 이상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0.5.13. 선고 2008다6052 판결)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 역시 임금은 실근로시간에 따른 보상이라는 원칙하에 임금을 계산해야한다는 입장이다.
2009년과 2010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약정한 임금이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산정된 법정수당에 미달하는 때에는 그 미달되는 법정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즉, 포괄임금 약정을 맺었더라도 실제로 일한 시간에 따른 수당보다 적게 받고 있다면, 사용자는 반드시 차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장의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노동자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직접 권리를 주장하기는 어렵고, 노동청에 신고하더라도 '포괄임금 약정이 있다'는 이유로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판결은 있었지만, 현장 감독관이 따를 구체적인 지침은 없었다.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컸다. 고용노동부의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아래 '포괄임금제 지침'이라 함)은 바로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등장했다.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
2026년 4월,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제 지침을 발표했다. 이는 국정과제 95번으로 제시된 '포괄임금제 원칙적 금지' 방향을 구체화한 것으로, 노·사·정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의 합의를 바탕으로 마련되었다.
지침의 핵심은 이렇다. 어떤 형태의 포괄임금 약정을 맺었더라도, 사용자는 반드시 실제 근로한 시간에 따른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정금액이 법정수당보다 적다면 차액을 지급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임금체불로 처리된다.
또한 사용자는 임금대장과 임금명세서에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항목별로 구분해 기재해야 한다. 노동자 개인별로 근로일수, 근로시간수, 연장·야간·휴일근로시간수를 모두 적어야 하며, 수당 구분 없이 한 덩어리로 묶어 지급하는 방식은 현행법에 반한다고 명시했다.
지침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포괄임금을 써온 사업장에는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 제도'나 '재량근로시간 제도' 같은 특례 제도를 활용하도록 유도한다. 감독관이 사건을 처리할 때 임금대장과 임금명세서가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하도록 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침의 한계
고용노동부의 포괄임금제 지침은 그간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해 온 기업에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의의가 있으나, 실제로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근절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첫째로, 근로시간 측정이 가능한 업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측정이 불가능한 업무에 한하여 적용할 수 있다. 즉,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한 경우에는 애초부터 포괄임금을 도입할 수 없다. FLEX 등 인사노무 시스템(출퇴근·근태 관리 소프트웨어)의 도입으로 근태관리의 고도화가 가능한 현실에서 '근로시간 측정 여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오남용을 감독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로, 현재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에게 근로시간 관리 의무가 분명하지 않다. 사용자가 근로시간 관리를 하지 않으면, 임금체불 여부를 사실상 확인할 수 없다. 임금체불 사건에서 실제 근로시간은 노동자 측이 입증해야 하는데, 사용자가 근로시간을 관리하지 않았다면 그 입증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포괄임금 오남용을 효과적으로 단속하려면, 사용자에게 근로시간 관리 의무를 법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고정OT 제도 악용에 대한 조치 기준이 없다. 현재 일부 기업은 기본급보다 고정 연장수당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노동자의 통상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포괄임금제를 악용하고 있다. 이처럼 시간외수당 지급 회피 이외의 방식으로 제도가 오남용되는 것에 관한 규제 기준은 지침에 담겨 있지 않다. 통상임금이 낮아지면 연장수당, 퇴직금 등 각종 법정수당 전반이 줄어드는 만큼, 이 문제는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그에 대한 비용을 치르듯, 사용자 역시 노동자의 근로 제공에 대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공짜노동 근절'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현장에서 포괄임금제를 실질적으로 단속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의 시간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임혜인 님은 공인노무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