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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모델링 후 스테이 하미의 모습
리모델링 후 스테이 하미의 모습 ⓒ 주간함양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다. 100년 된 고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역과 가문의 역사, 가족들의 서사가 공간 안에 담겨 있다.

1920년대에 지어진 한옥이 세월의 흔적을 품은 채 새로운 시간을 맞이했다. 어린 시절 한 가문의 추억이 켜켜이 쌓였던 공간은 이제 함양을 찾는 여행객들이 잠시 머물며 쉬어가는 한옥숙소 '스테이 하미'로 다시 태어났다.

경남 함양읍 교산리 위성초등학교 인근에 자리한 스테이 하미는 단순히 오래된 집을 고친 숙박시설이 아니다. 한 세기를 버텨온 한옥의 역사와 전통을 살려 한 가족이 지켜온 기억을 이어가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들의 추억을 담도록 새 생명을 불어넣은 공간이다.

 옛사진_교산리 한옥의 옛 모습. 집 앞에서 대가족이 함께 사진을 남겼다.
옛사진_교산리 한옥의 옛 모습. 집 앞에서 대가족이 함께 사진을 남겼다. ⓒ 주간함양

1950년대 한옥에서 자란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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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옥은 1920년대 풍천노씨 가문에서 지은 집이다. 노행석(37)씨의 증조할아버지가 지곡면 개평마을 풍천노씨 대종택의 형태를 본떠 지었다. 당시로서는 제법 큰 규모였다. 노행석씨의 아버지 노정환(71)씨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자랐다.

"조부님은 당시 읍내 중심가에 사셨는데, 양조장을 운영하셨어요. 가족들과 전국에 흩어져 사셨던 형제분들께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계셨는데, 지금의 교산리 한옥을 세울 당시에는 현재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조금 작은 크기의 한옥이 양쪽으로 있었고, 오른쪽 집은 막내숙부가, 왼쪽 집은 조부님의 집사가 사셨지요. 지금은 오른편 집 뒤편의 일부만 보이고 나머지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어요. 이 집은 당시 '한들'이라 불리던 교산리 한복판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노정환씨)

노정환씨는 다섯 살 무렵까지 이 집에서 조부모와 함께 지냈다. 할머니가 안채에서 손자를 품에 안고 놀아주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가족이 부산으로 이주하면서 고향을 떠났지만, 어린 시절 한옥 앞에서 찍은 흑백사진 한 장은 평생 고향을 잊지 않게 하는 추억으로 남았다.

은퇴 후 다시 고향에 돌아와 살고 싶었던 노정환씨에게 가장 큰 고민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었다. 관리인이 떠난 뒤 수년 동안 방치되면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고, 세월을 견디지 못한 목재 곳곳이 썩어갔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결심했지만, 오래된 한옥을 고칠 업체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아들 노행석씨 부부가 본격적으로 힘을 보탠 것도 그 무렵이다. 대전에 살고 있는 노행석씨와 이예지(30)씨는 평소 전국의 감성숙소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즐겼다. 다양한 한옥과 숙소를 경험했던 기억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큰 밑거름이 됐다.

"처음에는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런데 별채를 하나씩 직접 고쳐가며 머물다 보니 한옥의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함양도 자주 오게 되고 자연스럽게 정이 들었습니다." (노행석씨)

 드론으로 촬영한 스테이 하미
드론으로 촬영한 스테이 하미 ⓒ 주간함양

한옥 매력 살리되 현대적 공간으로

부부는 부모님과 상의 끝에 가족만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함양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쉼터로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리모델링을 시작해 6개월가량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올해 5월 말 문을 열었다.

리모델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한옥다움'이었다. 오래된 대청마루와 서까래, 마당에 심겨져 있던 나무들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집 앞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역시 이 공간의 상징이라 생각해 손대지 않았다. 대신 현대적인 편의시설을 더해 한옥의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주방이 있던 자리는 객실로 바꾸고 새 주방은 거실과 단차를 두어 공간감을 살렸으며, 통창을 설치해 사계절의 풍경을 실내에서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바닥난방과 냉난방 시설, 도시가스까지 갖춰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완성했다.

 디테일을 최소화 한 침실의 모습
디테일을 최소화 한 침실의 모습 ⓒ 주간함양

실내 인테리어와 가구는 아내 이예지씨가 직접 꾸몄다. 군더더기를 덜어낸 미니멀한 디자인에 따뜻한 조명과 차분한 색감을 더해 호텔 같은 편안함과 한옥 특유의 분위기를 동시에 담아냈다.

본채는 최대 4명, 별채는 2명이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이 공간을 조성하면서 '쉼'에 초점을 맞췄다. 창가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마당에서 불멍을 즐기고, 야외 자쿠지에서 계절을 느끼며 온전히 휴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숙소 안에 별도의 화구를 두지 않았다.

 리모델링 전 한옥 본채의 모습
리모델링 전 한옥 본채의 모습 ⓒ 주간함양

이예지씨는 "요리를 하면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결국 누군가는 쉬지 못하게 된다"며 "이곳에서만큼은 모두가 온전히 함께 쉬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대신 이용객들에게 함양의 맛집과 지역 식당을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지역 곳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아버지의 고향 나도 좋아하게 돼"

노행석씨는 아버지의 고향집을 고치면서 함양을 새롭게 알게 됐다고.

"이 집 때문에 처음 함양에 왔는데, 접근성도 좋고 도시가 정말 깨끗하더라고요. 상림공원을 처음 봤을 때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자주 오다 보니 함양이라는 지역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마당에 조성된 불멍존
마당에 조성된 불멍존 ⓒ 주간함양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지은 집, 어린 시절 추억을 간직한 공간, 그리고 기억을 이어받은 아들 부부가 함께 만들어 간 이곳 스테이 하미는 세대를 이어 가족의 추억을 품은 공간을 넘어, 누군가에게 여행의 쉼표가 되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드는 장소가 되고 있다.

노정환씨는 "가족의 흔적이 남은 공간을 지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이 한옥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쉼을 선물하는 공간으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테이 하미 입구
스테이 하미 입구 ⓒ 주간함양

 야외에 설치한 자쿠지
야외에 설치한 자쿠지 ⓒ 주간함양

 차분하고 깔끔하게 디자인 한 거실
차분하고 깔끔하게 디자인 한 거실 ⓒ 주간함양

 통창으로 설계해 개방감을 높였다
통창으로 설계해 개방감을 높였다 ⓒ 주간함양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에도 실렸습니다.


#‘감성숙소’로#다시#태어난#풍천노씨#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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