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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랑 아아 부탁드려요."
"네? 팥빙수요?"

오전 9시, 팥빙수를 주문하는 내게 카페 사장님이 놀란 표정으로 재차 확인을 했다. 주말 치곤 이른 시간에 빙수를 주문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사장님은 나를 연신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셨다.

요즘 아침 5시 30분이면 벌써 동이 트고 날이 훤하다. 한낮의 폭염을 피해 밭일을 하려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동생의 주말 텃밭, 지난 주말 토요일(11일)이 바로 그날이다(이전기사: 4년 전부터 준비한 귀농준비,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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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텃밭이나 밭농사를 조금이라도 지어본 경험자들이라면 하나같이 겪는 일, 바로 '잡초와의 전쟁'이다. 농작물인지, 풀을 키우는 것인지조차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일주일 사이 밭은 초록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돌아서면 풀, 돌아서면 잡초라더니 해도 해도 너무하다.

뒷집 어르신은 매일 같이 밭을 돌보는데도 어느새 풀이 자라있다며, 혀를 차셨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돌보는 주말 텃밭은 오죽할까. 그나마 잡초가 자라는 걸 최대한 막아보겠다고 들깨를 뿌리고, 콩을 심고, 단호박을 밭 가운데 떡 하니 심었었다. 콩과 단호박과 들깨, 그리고 자라는 풀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밭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렇지만 심어둔 작물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잡초와의 한판 승부를 시작했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서둘러야 해 양손으로 정신없이 풀을 뽑다 보니 금세 온몸은 땀으로 젖고 손가락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손길보다 자연의 생명력이 이겼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쌓아둔 뽑은 잡초들(멀리 호박덩굴이 보인다) 잡초인지 작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주말텃밭, 작물을 지키기 위해 마구 잡초를 제거했다.
쌓아둔 뽑은 잡초들(멀리 호박덩굴이 보인다)잡초인지 작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주말텃밭, 작물을 지키기 위해 마구 잡초를 제거했다. ⓒ 김희

그렇게 땀범벅이 되어 잡초와의 전쟁에서 백기 투항을 하고 싶을 때쯤, 무성한 풀더미와 호박 덩굴 사이로 단단한 무엇인가가 여러 개 보였다. 단호박이었다. 잡초에 치이고 잎을 제때 잘라주지 못해 햇볕을 쬐기도 힘들었을 텐데, 호박들은 초록빛으로 단단하게 자라고 있었다. 어찌나 대견하고 고마운지.

자주 찾지 못해 미안하기만 한데 그 거센 잡초와 마주해 밀리지 않고 단호박들이 열리고 콩꼬투리가 올망졸망 달리고 있었다. 순간 잡초에 손들고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작물들을 구해야겠다는 책임감으로 다시 호미를 꽉 잡았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남아 있는 기운을 모조리 쏟아부으며, 콩과 호박 주변의 잡초들을 뽑았다. 단호박 줄기에서 뻗어 나와 콩을 사정없이 휘감고 있던 꼬불꼬불한 호박 덩굴손들을 떼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눈으로는 줄기에 달린 단호박 개수를 세면서 말이다.

애단호박 2개 잡초와 호박덩굴아래 익기전 애단호박이다. 눈에 띄자마자 강된장이 떠올랐다.
애단호박 2개잡초와 호박덩굴아래 익기전 애단호박이다. 눈에 띄자마자 강된장이 떠올랐다. ⓒ 김희

그런데 내 시선을 사로잡은 녀석들은 따로 있었다. 짙은 초록빛 단호박들 사이에 숨어있는 아직 덜 익어 연두색 빛을 띠는 애단호박 2개다. 예전에 단호박이 익기 전에 따서 음식을 만들면 식감이 아삭하고 씹는 맛이 좋다고 했던 친정엄마의 말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메뉴가 정해졌다. 바로 친정엄마가 만들어주던 '강된장'이다. 된장에 물을 조금 붓고 각종 채소를 넣어 빡빡하고 되직하게 끓여 먹는 강된장은 특히나 여름철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최고의 반찬이다.

마침, 며칠 전부터 이웃에 살고 있는 동생이'더운데, 엄마가 해준 강된장에 밥 비벼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참이었다. 아직 줄기에 달린 애단호박 2개의 위치를 눈으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기왕 시작한 거 내가 너희를 확실하게 구해주겠다며 그렇게 잡초와의 3시간 치열한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안경을 흐리고 눈을 가렸고, 등줄기에는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의 작업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미리 위치를 확인해 뒀던 애단호박 2개를 수확해 바라보니 뿌듯한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 옷에 흙이 가득 묻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동생과 나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시장에 가서 우리가 건진 2개의 호박을 사려면 3천 원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 호박으로 만든 강된장의 가치는 그 값을 훨씬 뛰어넘는다. 나와 동생에게 분명 어릴 적 엄마 품에서 먹던 따스함과 그리움을 소환해 줄 테니 말이다.

잡초와의 사투끝에 먹은 팥빙수 한그릇 잡초와의 전쟁을 끝내고 내게 필요한건 온몸이 시원해질 정도의 차가움과 당보충이었다.
잡초와의 사투끝에 먹은 팥빙수 한그릇잡초와의 전쟁을 끝내고 내게 필요한건 온몸이 시원해질 정도의 차가움과 당보충이었다. ⓒ 김희

찬물에 얼굴 한번 씻고도 벌겋게 달아오른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옷에 묻은 흙은 툭툭 털어내고 차에 올라타 에어컨을 가장 세게 틀고 근처 카페를 찾은 것이었다. 그때 동생과 나에게 필요한 건 그 어떤 보약도 아닌 뼛속까지 시원한 차가움과 당 충전이었다.

카페 사장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차 확인했던 이른 아침의 주문 메뉴에는 이런 숨은 사연이 있었다. 한입 가득 넣은 팥빙수의 달콤함,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 잡초와 사투를 벌인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달콤한 빙수가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것을 즐기고 있는데 동생이 물었다. "언니, 다음 주는 언제 올 거야? 토요일? 일요일?" 일주일 뒤 더 자라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잡초들과의 전쟁 선포 날짜를 동생이 물어보는 거였다.

- 강된장 레시피

동생과 나눠먹을 강된장 며칠전부터 먹고싶다던 동생의 표정이 밝아질걸 생각하고 만들었다.
동생과 나눠먹을 강된장며칠전부터 먹고싶다던 동생의 표정이 밝아질걸 생각하고 만들었다. ⓒ 김희

- 재료(냉장고 야채칸 남은 재료 활용): 호박, 당근, 대파, 마늘, 양파, 잔멸치
잔멸치를 먼저 덖어두고, 야채들은 잘게 썰어 볶는다(식용유 약간).
볶은 야채들이 잠길 정도만 약간의 물을 넣고 된장, 고추 3:1 비율로 풀어 끓인다.
거의 마지막에 덖어둔 잔멸치를 넣고 되직할 때까지 약불에 저어가며 끓인다.
※ 팁: 물의 량이 작기 때문에 자주 저어준다. 눌러붙을 수가 있어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강된장#잡초와의전쟁#애단호박#잡초#주말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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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noheene) 내방

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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