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희은 에세이 <그러라 그래> 책 표지 ⓒ 이혁진
양희은 에세이 <그러라 그래>는 가수로서 50년을 넘긴 그의 자서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책은 인생 70세의 삶을 반추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내용이다. 1999년부터 진행하는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발행하는 <월간 여성시대>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이다. 최근 방송을 통해 우연히 그의 목소리를 듣고 책을 골랐다.
'찬란한 노후' 이면에는 슬픔과 고통이
그는 나이를 초월해 방송진행자와 가수로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방송과 공연을 떠나서는 매일 한집에서 친정엄마와 남편과 알콩달콩 사는 일상적인 주부로 변신한다. 연예인으로서 특별한 구설수 없이 살아온 그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노후는 더욱 찬란해질 것이다. 방송진행이 주업이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며칠 무대 공연을 대비해 연습하고 있다. 가수라는 직업 못지않게 라디오 생방송을 27년이나 길게 진행하다니 그의 저력과 내공이 새삼 부러울 정도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30세 전후해 찾아온 시한부 삶 선고와 교통사고 등 슬픈 이면을 갖고 있다. 에세이에는 이를 극복하고 뚝심 있게 살아온 우리가 몰랐던 그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그는 자신이 살면서 겪은 시행착오들은 자기 성찰의 밑거름이었다고 자세를 낮추고 있다.
책 제목 <그러라 그래>는 그의 인생이 오롯이 함축돼 있다. 체념하는 듯한 표현 같아도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으며,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중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젊을 때 그는 코미디언을 꿈꾸었다. 그의 꿈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가만 보면 웃기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그는 코미디언을 통해 자신처럼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즐겁게 하고 싶었다. 비록 코미디언이 되지못했지만 그는 가수로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1973년 대학 시절 양희은은 당시 우리들의 우상이었다. 나같이 통기타 치는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캠퍼스와 동아리에서 수없이 전파했다. 그의 대표곡 <아침이슬>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였다.
희망은 '따뜻한 위로와 공감'에서 생긴다
지금은 가수보다는 방송 진행자로서의 이미지가 깊어 보인다. 청취자들의 편지를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푸근하다. 그리고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밥 해 먹이고 베푸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넉넉함은 아마도 젊은 시절 알아주는 사람 없이 외롭게 고생하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또한 그가 내내 강조하는 것은 겸손함이다. 그의 노년이 특히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이다. 세상이 자신을 힘들게 해도 수긍하며 어리석게 사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역시 젊음을 예찬하는 글이다.
"봄꽃을 닮은 젊은이들은 자기가 젊고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젊은 날에는 몰랐다. 그걸 안다면 젊음이 아니지, 자신이 예쁘고 빛났었다는 것을 알 때쯤 이미 젊음은 떠나고 곁에 없다."(22쪽)
같은 세대의 이야기여서 에세이는 속도감 있게 읽힌다. 에세이는 내 하루 일상을 엿보는 느낌도 있다. 그처럼 매일 반복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어서다. 친정엄마 나이(97)와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나는 그녀의 효심과 정성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아버지께 하면서 갈등과 애증을 겪고 있다.
그의 공연과 노래를 듣고 팬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단다. "건강하셔야 해요. 그래야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는 팬들의 이 조언을 노후인생의 지침으로 삼아 열심히 건강히 살고 있다.
그는 여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인생이 내게 베푼 모든 실패와 어려움, 내가 한 실수와 결례, 철없었던 시행착오도 다 고맙습니다. 그 덕에 마음자리가 조금 넓어졌으니까요. 무대에서 뵐 때까지 제발 강건히 버텨주세요."
이 에세이는 대중가수 양희은의 인생사지만 자기 관리와 성장, 나아가 대인관계 등의 주제로 확장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울림이 크다. 따라서 지혜롭게 살고 싶은 우리 노년들과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중장년들에게 적잖은 위로가 된다. 그는 특별히 가진 것 없어도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야말로 노후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세상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신이 했던 것처럼 희망을 결코 잃지 말라면서 이렇게 위로했다.
"세상엔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 못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땐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하늘을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