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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출근해 업무에 집중하고 있던 6월도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아내에게서 다급한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수상한 낌새가 포착됐어."
사진 한 장과 함께 온 메시지였다. 처음엔 사진 속 형체가 무엇인지, 어느 공간인지 단번에 가늠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화면을 조심스레 확대해 본 순간, 의문의 실체를 마주하고 말았다. 장소는 아들 방 베란다 창문 너머의 에어컨 실외기 옆. 그 좁은 틈새에 웅크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하얀 비둘기였다.
에어컨 실외기에 찾아온 불청객
녀석은 실외기 안쪽에 몸을 숨긴 채 미동조차 없었다. 아내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한참을 지켜봐도 꿈쩍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전화 너머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둥지를 틀고 알을 품는 것 같아."
아내의 말에 내 입에서는 절로 "아뿔싸"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도심 속 비둘기는 무분별한 번식과 배설물 문제로 미움을 받는 골칫거리가 아니던가. 평소 호감이 없던 녀석이 하필 우리 집 베란다에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에 깊은 한숨이 앞섰다. 게다가 위치가 실외기라니. 당장 올여름 에어컨은 어쩌나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밀려왔다.
그로부터 일주일 남짓 흘렀을까. 아내에게서 이번에는 짧은 동영상 하나가 날아왔다. 화면 속에는 솜털조차 채 자라지 않은 작은 새끼 비둘기 두 마리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간밤에 매섭게 들이친 비에 둥지도, 여린 새끼들도 흠뻑 젖은 모양이었다.

▲새끼 비둘기 한쌍실외기 뒤에 둥지를 튼 비둘기의 새끼 한 쌍 ⓒ 정지현
아내는 새끼들만 덩그러니 남겨둔 부모 비둘기를 향해 원망을 쏟아냈다. 저대로 두면 깃털도 없는 새끼들이 저체온증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아내는, 급기야 계란판을 오려 새끼들 머리 위로 작은 지붕을 만들어 주었다. 들이치는 빗줄기라도 피하라는 다정한 응원이었다.
이튿날 오전, 다시 아내의 메시지가 울렸다. 있어야 할 새끼들이 보이지 않는 텅 빈 둥지 사진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간밤에 길고양이의 습격을 받은 건 아닐까, 아니면 난간 아래로 추락해 버린 건 아닐까.
불길한 상상에 오열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자, 아내는 이내 '크크' 웃으며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새끼들이 하루 새 조금 컸다고, 빗방울을 피하려 실외기 안쪽 더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기고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 두 불청객 덕분에 우리는 한동안 무더위와 기나긴 눈치 게임을 해야 했다.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팬 쪽은 아니었지만, 행여나 녀석들에게 해가 갈까 노심초사하며 더위를 꾹 참았다. 하지만 7월의 본격적인 폭염 앞에서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에어컨 전원을 켰는데, 웬걸, 미지근한 바람만 맴돌았다. 수리기사님을 불렀고, 통화 상으로는 비둘기가 원인일 확률이 높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비둘기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실외기의 진짜 문제는 냉매 가스 부족이었고, 가스만 주입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기사님은 둥지 속 녀석들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레 가스를 채워 주셨고, 아내는 새끼들이 작업 중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작은 울타리를 쳐서 막아주었다.
기막히고도 따뜻한 여름날의 동거
무사히 수리를 마친 에어컨은 이제 시원한 바람을 훅훅 내뿜는다. 에어컨을 켤 때마다 녀석들의 동태가 슬쩍 신경 쓰이지만, 다행히 크게 불편해 하는 기색은 없다.
알아보니 새끼 비둘기가 둥지를 떠날 만큼 자라려면 4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7월 초에 처음 마주한 녀석들은 늦어도 8월 초쯤엔 날아오를 것이다. 싫으나 좋으나 앞으로 최소 2~3주는 더 이어가야 할 불편한 동거다.
도심 속 비둘기가 골칫거리 새인 것은 맞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우리 집 창틀에 깃든 한 생명으로, 또 비바람을 피해 새끼를 지키려는 그 부모를 보며, 우리 가족이 기꺼이 감수한 약간의 불편함은 오히려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이지만, 부디 녀석들이 남은 기간 무탈하게 자라 푸른 하늘로 힘차게 날아갔으면 좋겠다. 물론, 녀석들이 무사히 독립하고 나면 두 번 다시 실외기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철저한 방어선 구축 작업을 하겠지만 말이다. 그전까지는, 이 기막히고도 뜨거운 여름날의 동거를 기꺼이 응원해 볼 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