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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은퇴를 앞두고 고민 중인데, 선명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반 백 년 이상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삶. 그들이 주는 편의를 선뜻 거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들은 이제 낭만적인 전원 생활을 꿈꾸는 때를 지나 서비스, 의료 시설 등을 고려하는 나이가 되었다.

초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친구들 중에는 90대 노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이들이 제법 많아졌다. 노부모님들은 대부분 건강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의료 시설을 수시로 드나든다. 게다가 결혼 적령기에도 주택이나 직업 문제로 인해 결혼을 하지 못한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 직업을 가졌어도 도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결혼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1960대 초중반에 출생한 세대는 이렇게 낀 세대가 되어버렸다. 이 세대는 이순의 나이가 넘어도 독립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자녀와 부모라는 두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물론, 둘 다 별 일 없이 잘 감당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 친구들은 대부분 끼어 살고, 나도 '언제나 독립된 삶을 살아갈까? 그것이 가능하긴 한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 견딘다.

나는 길들지 않는다 마우야마 겐지 / 바다출판사 / 15,000원
나는 길들지 않는다마우야마 겐지 / 바다출판사 / 15,000원 ⓒ 바다출판사

마루야마 겐지의 <나는 길들지 않는다>라는 다소 급진적(?)이고 지극히 작가 주관적인 책을 읽었다. 그 중 '직장에 길들지 말라'는 글에 이런 글이 있다.

'농업에는 정년도 없다. 명예퇴직도 해고도 없다. 늙어 체력이 쇠한 탓에 출하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을 수확할 수 없다 해도, 자신이 먹는 정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기후 변화와 먹을거리를 둘러싼 대혼란의 시기를 상정하고 쓴 글이다. 하지만, 자급자족의 삶과 독립된 삶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면, 노년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면 최소한의 먹을거리는 자급자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나 독립된 삶을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내게 마루야마 겐지의 글은 매혹적이었다.

고구마줄기와 머위 줄기 고구마 줄기는 껍질을 벗겼다. 머위는 삶은 후에 껍질을 벗기고 심줄을 빼내야 한다.
고구마줄기와 머위 줄기고구마 줄기는 껍질을 벗겼다. 머위는 삶은 후에 껍질을 벗기고 심줄을 빼내야 한다. ⓒ 김민수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폭염이 시작되었다. 며칠 동안 내렸던 비로 흠뻑 젖었던 화분도 오전 폭염에 말라가고, 폭염에 화분에 심었던 것들이 시든다. 그 중 하나가 고구마 이파리다. 화분이기에 고구마를 거둘 기대는 접었고 줄기나 보고 혹시 꽃이나 피면 구경할까 싶어 지켜보았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줄기를 보니 다 해도 겨우 두어 젓가락 나올 정도다. 담벼락에서 자란 머위는 그래도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실하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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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두어 젓가락이라도 맛이나 보자. 머위도 있으니까 더하면 한 기 반찬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머위는 삶아서 물에 담가 두었다가 까야 하고, 고구마 줄기는 그냥 까야 한다. 양이 많을 때는 소금물에 담가서 까는 방법도 있지만, 얼마 안 되니 그냥 바로 깐다. 비가 온 뒤라서 고구마 줄기가 잘 벗겨진다.

거친 손 고구마 줄기를 깐 후에 손톱과 손에 풀물이 들었다.
거친 손고구마 줄기를 깐 후에 손톱과 손에 풀물이 들었다. ⓒ 김민수

그래도 시간이 걸리고, 결국 풀 떼가 손톱과 손가락에 끼기 시작한다. 풀을 만지고 흙을 만지다 보면 손은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고구마 줄기를 벗기는 일은 섬세한 일에 속하니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하기도 그렇다. 도심에서 생활하면서 손에 풀 떼가 끼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고구마 줄기를 벗기며 은퇴 후의 삶을 구상해 본다.

자급자족할 만큼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과 집이 있으면 좋겠다. 이것이 이뤄졌다 가정하고 은퇴 후의 삶을 상상해 본다.

'문명의 이기와 자본주의의 편리함은 많이 포기해야 할 것이고, 육체 노동의 즐거움과 흙과 씨앗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며 살아야 할 것이다. 자연의 시간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이고,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을 천천히 관찰하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사진과 글로 풀어내고, 자연의 해가 질 무렵이면 이른 저녁을 먹고 독서를 하다 잠에 들 것이다.

그리고 해 뜨기 30분 전에 일어나 해맞이를 하며 하루를 열고, 산책하며 어제와는 또 다른 자연을 어제와는 또 다른 나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자연 혹은 내가 가꾸는 작은 밭에서 일용할 양식을 얻고, 소박한 밥상에 감사하며 하루를 열어갈 것이다. 그렇게 아침과 점심과 저녁은 어제와 다를 바 없지만, 단 한 번 밖에는 없는 소중한 하루로 살아가고 싶다.'

시아노타입 풀꽃들을 이용한 작품
시아노타입풀꽃들을 이용한 작품 ⓒ 김민수

이런 삶을 살려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삶으로부터 자립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노년기의 삶이라도 길들여지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고민 끝에 먹는 것은 자급자족하되 취미 생활도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크게 비용이 들지 않는 선에서 이런저런 작업들을 배워가고 있다. 꼭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해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기에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드로잉 크리이에터 드로잉
드로잉크리이에터 드로잉 ⓒ 김민수

동판작업 성산일출봉과 강변이라는 제목의 동판화(100*100mm)/ 수제종이에 찍음
동판작업성산일출봉과 강변이라는 제목의 동판화(100*100mm)/ 수제종이에 찍음 ⓒ 김민수

요즘은 시아노타입, 드로잉, 동판화 등을 독학으로 익히고 있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여기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은퇴할 즈음이면, 기술적인 것들은 마스터할 것이고, 은퇴 후에는 철학을 담은 작품을 내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모든 것들이 은퇴 후 자급자족하는 삶을 준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자급자족하는 삶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주어진 하루를 무의미하거나 무력하게 보내지 않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으므로.

길들지 않은 삶, 길들여진 삶. 나는 지금껏 길들여진 삶을 살면서 길들지 않은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다.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야 얼마나 많이 길들여진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을 비우지 못하면, 은퇴 후의 삶은 고작 연명하는 삶이 될 것이다. 얼마나 살지 알 수는 없지만, 초고령화 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은퇴 후에도 이십 여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그 시간을 길들여 진 채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화분과 작은 텃밭에서 거둔 고구마 줄기와 머위 줄기를 벗기다 손은 거칠어지고 풀 떼로 흉해졌지만, 이런 소소한 노동이라도 할 때 사람은 사람다워지는 것 같다. 사람다워지니 이야깃거리도 나오고.

#은퇴#초고령사회#농업#취미#시아노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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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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