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커피는 거창한 사건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면 하루의 첫 장면이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몸을 이끌고 그 냄새를 맡는 순간 하루의 시작을 느낀다. 그런데 커피에 대한 평가는 늘 극단으로 갈라진다.
'커피는 독이다, 몸 망친다'는 사람도 있고, '커피 덕에 오래 산다'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들을 쭉 따라가 보면 적당한 양의 커피는 대체로 해롭다기보다 이로운 쪽에 조금 더 가까운 편이다.
하루 서너 잔 이내로 마시는 사람들에게서 전체 사망률이나 심장병, 제2형 당뇨병 위험이 조금 낮게 나타났다는 보고들이 여럿 있다. 그렇다고 커피를 약처럼 떠받들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연관이 있다' 정도이지 '커피가 병을 고친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카페인은 피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잠시 가려준다
한 잔이 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주인공은 역시 카페인이다. 카페인은 뇌에서 졸음을 부르는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의 작용을 잠시 가로막는다.
그 덕분에 피곤함이 좀 덜 느껴지고 머리가 또렷해진다. 다만 중요한 점은 카페인이 피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피로를 덜 느끼게 하는 물질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래서 커피가 주는 각성은 '새로 생긴 에너지'라기보다 이미 있던 피로를 잠시 뒤로 밀어둔 상태에 가깝다.
마치 자동차 계기판의 연료 부족 경고등을 검은 테이프로 잠시 가려 놓는 것과 비슷하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채 커피만으로 하루를 버티는 생활을 반복하면 결국 몸은 더 큰 피로를 쌓게 된다.
예전에는 한 잔이면 충분했는데 나중에는 두 잔, 세 잔을 마셔야 같은 효과가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평소 마시던 커피를 하루 이틀 끊으면 괜히 머리가 띵하고 몸이 무겁고 집중이 되지 않는 날이 생긴다.
커피를 마시면 두통이 싹 가시는 것 같을 때가 있지만, 사실은 커피 때문에 생긴 두통을 다시 커피로 잠시 덮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커피를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기 어려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커피에는 카페인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커피에는 클로로젠산 같은 폴리페놀을 비롯해 다양한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런 성분들은 우리 몸속에서 활성산소를 줄이고 염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적당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서 심혈관질환, 제2형 당뇨병, 일부 간 질환의 위험이 조금 낮게 나타난다는 연구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커피가 병을 치료한다는 뜻이 아니라 커피를 적당히 마시는 생활이 건강한 생활습관과 함께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커피는 발암물질일까? 중요한 것은 온도다
또 한 가지 커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논쟁이 바로 '발암물질이냐 아니냐'이다. 예전에는 커피가 암을 일으킨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커피 자체가 사람에게 암을 유발한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커피의 온도다. 입에 닿기도 전에 뜨겁다고 느껴질 만큼 뜨거운 커피를 반복해서 마시는 습관은 식도 점막을 계속 자극할 수 있다. 결국 커피가 위험하냐 아니냐는 커피라는 이름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뜨겁게, 얼마나 자주, 어떤 생활습관 속에서 마시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고 커피에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커피 원두는 생두를 높은 온도에서 볶는 로스팅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맛과 향은 훨씬 깊어지지만 아주 소량의 아크릴아마이드 같은 물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감자튀김이나 과자, 식빵, 고기를 너무 태워 구웠을 때도 비슷한 물질이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맛과 향은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물질을 최소화하는 로스팅 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커피가 우리 몸을 여행하다 보면 간에도 도착한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분이 카페스톨이다. 카페스톨은 커피의 천연 기름 성분 가운데 하나로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담즙으로 내보내는 과정을 일부 방해해 LDL 콜레스테롤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커피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종이필터로 내린 커피는 카페스톨이 대부분 종이필터에 붙어 걸러진다. 반면 프렌치프레스나 터키식 커피처럼 커피 기름까지 함께 마시는 방식은 카페스톨이 더 많이 남는다. 그래서 LDL 콜레스테롤이 높거나 심혈관질환 위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커피를 무조건 끊기보다 종이필터를 이용한 커피를 선택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이다.
우리가 흔히 놓치는 부분은 커피보다 커피에 들어가는 첨가물이다. 설탕과 각종 시럽, 휘핑크림, 프림이 듬뿍 들어간 커피는 사실 커피라기보다 디저트에 더 가깝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흔히 마시는 아메리카노처럼 설탕이나 크림을 넣지 않은 블랙커피가 가장 좋은 선택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커피가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오전에 한 잔만 마셔도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만 마셔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불안감이 심해진다.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도 수면과 신경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습관적인 섭취는 권장되지 않으며, 불면증이나 불안장애, 부정맥, 역류성 식도염이 있는 사람도 커피 때문에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결국 커피를 대하는 태도는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함께 살피는 것이다.
커피를 끊어야 하는지는 병명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보면 더 분명하다. 커피를 마신 뒤 이유 없이 불안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손이 떨리고, 밤잠을 설치거나 속이 쓰리다면 몸은 이미 "이 정도 카페인은 나에게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로스팅과 카페스톨, 알고 마시면 더 건강하다
그렇다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커피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대안이 바로 디카페인 커피다.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의 대부분을 제거했지만 커피 특유의 향과 맛, 그리고 폴리페놀 같은 유익한 성분은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한다.
불면증이나 가슴 두근거림, 불안감, 속 쓰림 때문에 커피를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다만 디카페인도 카페인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므로 카페인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면 저녁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결국 커피에 대한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대부분의 건강한 성인에게 적당한 양의 커피는 크게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일부 질환의 위험을 조금 낮추는 쪽과 연관된다는 근거들이 꾸준히 쌓여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모든 근거 위에 항상 올라가는 문장은 하나다.
"사람마다, 몸마다 다르다."
좋은 원두를 너무 태우지 않고 적당히 볶아, 가능하면 종이필터로 내린 커피를 하루 한두 잔 정도 즐기고, 설탕과 크림은 조금만 넣거나 아예 빼며, 무엇보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듣는 것. 그것이 오늘날 의학이 말하는 가장 건강한 커피 습관이다.
많이 마실수록 좋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끊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 몸이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한 잔. 그것이 의학이 말하는 가장 건강한 커피이고, 우리가 오래도록 향기롭게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커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약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