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흥사 벌 받는 호랑이해남 대흥사의 침계루 건물 처마 밑에 벌 받고 있는 호랑이 벽화에 있다. ⓒ 정재학
우리나라 산사를 찾아다니다 보면 유난히 호랑이 이야기가 많고 주제 또한 다양하다. 당연히 산중에 자리하고 있어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맹수인 호랑이를 다루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교는 살생을 금지하지만, 산속 최고의 맹수였던 호랑이를 결코 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때로는 수행자의 벗이 되었고, 때로는 깨달음을 일깨우는 스승이 되었으며, 때로는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었다.

▲대흥사 두륜산영암 월출산에서 뻗어 나와서 달마고도 분기점에서 봉긋 솟아오른 산이 두륜산이다. ⓒ 정재학
이번 여정은 '사찰에서 호랑이를 다루는 방식'을 찾아보는 탐방이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난 6월 27일~28일 양일간 전남 일원의 사찰을 돌아다녔다.
대흥사의 참회하는 호랑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해남 대흥사였다. 이 사찰이 위치한 해남이 어딘가. 땅끝이다. 우리나라 내륙 서부의 최말단 지역이다. 영암 월출산에서 뻗어 나와서 달마고도의 분기점에서 봉긋 솟아오른 산이 두륜산이다. 지명도 백두산의 두(頭)와 중국 곤륜산의 륜(輪)을 빌어 붙여진 거란다.

▲대흥사 표충사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영정이 모셔져 있다. ⓒ 정재학
대흥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유선여관'이 먼저 반긴다. 임권택 감독의 작품인 영화 <장군의 아들>, <서편제>, <취화선> 등의 촬영장으로 유명세를 달렸는데 요즘에는 카페를 필두로 복합시설로 변모하여 예전의 고풍스러운 맛은 없어졌다. 대흥사는 또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유정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가 있어 더 유명하다.

▲대흥사 명부전 백호대흥사 명부전에는 백호 벽화그림이 그려져 있다. ⓒ 정재학
하여튼 이곳도 두륜산 자락에 있어 호랑이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았다. 산신각에도 명부전에도 안팎으로 벽화에서도 호랑이, 나한들의 품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호랑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필살기 호랑이는 따로 있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호랑이 벽화 그림이다.

▲대흥사 침계루대흥사 북원 대웅보전으로 가기 위해 금당천 심진교를 건너 만나는 2층 누각 건물이 침계루다. ⓒ 정재학

▲침계루 벌 받는 호랑이대흥사 침계루 2층 처마 밑 좌측 포벽에 벌 받는 호랑이 벽화그림이 그려져 있다. ⓒ 정재학

▲침계루 가재 그림침계루 처마 밑 우측 포벽에 그려진 가재 그림 ⓒ 정재학
대흥사의 가람배치는 특이하다.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원과 남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원 대웅보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금당천 심진교를 건너야 하는데 처음으로 만나는 2층 누각 건물이 침계루다. 이 건물 전면 2층 처마 밑 포벽에 양쪽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한쪽은 큼지막한 가재가 한가운데 떡하니 그려져 있고, 다른 한쪽엔 문제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벌 받는 호랑이살생하지 말라는 스님의 말을 어기고 가재를 잡아먹어 나뭇가지에 매달려 벌 받고 있다. ⓒ 정재학
초록 단청배경 위로 화면 중앙에 소나무 기둥이 사선으로 그려져 있고 좌우로 가지가 뻗어 있었다. 그런데 좌측 가지가 더 길고 풍성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뭇가지 위에 네 다리가 꽁꽁 묶여 있는 호랑이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 눈을 비비며 다시 봐도 호랑이다.
그제서야 웃음이 빵 터졌다. 그렇다면 '왜 호랑이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걸까?' 그 이유를 찾아보니, 전남전통설화집(1995년)에 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곳 스님이 호랑이랑 같이 살았는데 법회를 하면서 호랑이에게 살생하지 말라고 혼냈다고 한다. 그래서 쫄쫄 굶고 있던 차에 금강천에 꼬리를 내려놓고 있었는데 가재가 꼬리를 치는 통에 그만 못 참고 잡아먹어 버린 거란다. 그래서 호되게 야단맞고 저리 나무에 묶여 벌 받는 중이란다.'
재미있다. 하지만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분명하다. 비록 산의 왕일지라도 잘못하면 벌 받는다. 힘이 크다고 마음까지 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한 존재일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도 대흥사의 호랑이는 부끄러움을 아는 호랑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정말로 참회하고 있지 않은가. 얼마만큼 참회해야 저 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호랑이를 제압한 스님

▲은적사 호랑이 벽화해남 은적사 약수전 내부에 그려진 호랑이 벽화그림 ⓒ 정재학
두 번째로 해남 은적사를 찾았다. 이곳도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 아주 한적한 산사였다. 이곳 약사전 내부에 호랑이 벽화 그림이 있었다. 한 벽면에는 스님이 좌선하고 있고 호랑이가 한 앞발을 내밀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다른 벽면의 그림이 독특했다. 한 선사가 두 손으로 백호를 내동댕이치는 게 아닌가.

▲내동댕이치는 호랑이은적사 약수전에 그려진 내동댕이치는 호랑이 벽화 그림 ⓒ 정재학
사찰에는 스님과 호랑이가 맞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산속에서 사람을 해치던 호랑이가 나타나자, 스님은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싸움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었다. 스님은 자신의 수행력과 담력으로 호랑이를 제압한다. 호랑이는 끝내 스님의 위엄 앞에 굴복하고 더 이상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죽였다'가 아니라 '멈추게 했다'라는 것이다. 불교는 생명을 함부로 끊는 것을 이상으로 삼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제압하지만, 목적은 제거가 아니라 교화다. 호랑이도 결국 중생이며, 수행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사고와는 다르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준다.
불회사의 은혜 갚은 호랑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나주 불회사다. 이곳은 입구 석장승과 은혜 갚은 호랑이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를 활용한 '전통산사 국가유산 활용사업'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었다. 사찰 종각에 종이로 만든 호랑이 두 마리가 있었다. 호랑이의 입안에는 비녀(소원지)가 있었고 소원지에 소원을 적어서 호랑이의 은혜를 받는 '호랑이를 구해줘' 체험이었다.

▲은혜 갚은 호랑이나주 불회사에서는 은혜 갚은 호랑이를 주제로 전통산사 국가유산 활용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 정재학
하여튼 이 체험의 배경인 '불회사 호랑이 전설'을 들어보자.
'고려시대 원진국사가 있었다. 탁발하러 다니던 어느 날 저녁,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그런데 호랑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한 채 몹시 괴로워해서 살펴보니, 목에 커다란 비녀가 걸려 있었다.
스님은 호랑이에게 다시는 살생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비녀를 뽑아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해 겨울 호랑이가 한 처자를 물어다 놓고 갔는데 이 처자가 안동 만석꾼 김상공의 외동딸이었다. 성심껏 간호해서 집에 돌려보냈는데, 김상공이 보답으로 시주해 불회사가 중창할 수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와 보은(報恩)의 정신을 호랑이라는 존재를 통해 풀어낸 이야기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스님이 호랑이를 굴복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호랑이는 스스로 마음을 열었고, 스님은 두려움을 자비로 바꾸었다.
이번 여정을 돌아보면 세 곳의 사찰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호랑이를 다루고 있었다. 대흥사는 반성을 가르친다. 잘못한 호랑이도 벌을 통해 다시 배운다. 은적사는 절제를 보여준다. 힘을 쓰되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불회사는 자비를 보여준다. 상처 입은 호랑이를 먼저 치료한다. 흥미로운 것은 어느 이야기에서도 호랑이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랑이는 본래 야생의 존재일 뿐이다. 문제는 본능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이다. 이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욕망도, 분노도, 권력도 모두 호랑이와 같다.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고, 방치하면 사람을 해친다. 그러나 불교는 없애려 하지 않는다. 다스리려 한다. 그것이 수행이다.
오늘날 우리는 경쟁과 성과를 앞세우며 살아간다. 강해야 이겨야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찰의 호랑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정한 강함은 남을 제압하는 힘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산사의 호랑이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호랑이를 이기려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마음속 호랑이를 다스리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