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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주변을 가득 심은 해바라기 아버지가 좋아하는 해바라기가 만개한 밭 주변 전경
밭주변을 가득 심은 해바라기아버지가 좋아하는 해바라기가 만개한 밭 주변 전경 ⓒ 김희

7월의 밭은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고추, 콩, 참깨, 들깨, 옥수수가 제철을 만나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어 초록 물결이다. 거기에 밭 주변으로 가득 심은 해바라기가 만개해 한 폭의 그림과 다름없다. 평생 제대로 된 땅에서 농사 지은 수확물을 자식들에게 보내주고 이웃과 나누며 살고 싶어 하던 엄마가 원하던 그 모습대로다(관련기사: 엄마의 놀이터 "여기서 5년만 즐겁게 지내다 갈란다").

지난해에 이어 팔순이 된 엄마의 밭농사도 나와 같은 2년 차다. 한 땅을 일구고 있지만, 엄마와 나의 농사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무럭무럭 자라는 고춧대 사이에 엄마는 대파 모종을 심었다. 대파와 고추가 동반식물(서로 가까이 심었을 때 성장을 돕거나 병해충을 막아주는 등 서로에게 이로운 영향을 주고받는 식물 조합)이라고 했다.

"엄마, 꼭 대파를 심어야 해?"
"대파를 고추 사이에 심으면 고추에도 좋댜."
"누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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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 뿌리에서 나오는 유익한 미생물이 고추의 치명적인 병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주고 해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영상을 보셨다고 했다. 팔순이 된 엄마는 농사와 음식에 관심이 많아, 유튜브를 보고 새로운 음식 만들기에도 진심이다. 밭에서 나오는 수확물이 많아 주위에 충분히 나눔을 하고도 남아 장아찌 만들기를 하는 엄마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팔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엄마는 느리지만 늘 바쁘다. 새로운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 때면 엄마의 오랜 주방은 새로운 요리 연구소로 변신한다. 하지만, 이 많은 수확물과 장아찌들이 향하는 곳은 결국 한 곳이다. 바로 서울에 사는 자식들의 식탁이다.

밭전경 열흘전에 가서 엄마와 같이 토마토순치기를 싹 했는데, 익은 토마토들을 보내주셨다
밭전경열흘전에 가서 엄마와 같이 토마토순치기를 싹 했는데, 익은 토마토들을 보내주셨다 ⓒ 김희

서울과 엄마가 있는 고향을 오가며 지내고 있는 내가 밭에서 엄마와 같이 대파 모종을 심고 콩잎을 잘라주고 다시 서울로 온 지 열흘이 채 되지도 않는다. 서울로 오는 버스 짐칸에 밭에서 캔 감자와 수확물들을 너무 잔뜩 실어 운전기사님께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서울에 사는 동생들에게 소분해서 나눠준 지가 얼마 되지 않는데, 엄마가 전화했다.

"야야, 토마토가 잘 익었다. 오이도 많이 달렸다. 택배로 보낼 테니, 나눠 먹어."

가져온 수확물이 아직 냉장고 야채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더운 여름날 느린 걸음으로 상추를 수확하고, 대파를 다듬고, 토마토가 터질까 조심하며 상자 박스에 담았을 엄마를 생각하니아직 채소가 남아 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네. 알겠어요. 동생들이랑 나눠 맛있게 먹을게."

밝은 목소리의 대답에 엄마가 한시름 놓은 것 같은 기분이 전달되었다. 힘든 데 보내지 말라고,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대답을 들을까 걱정하셨구나 싶었다.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마트나 시장에 가면 지천으로 널린 게 토마토, 오이, 상추지만, 사실 엄마가 보내주는 채소는 겉으로는 같아도 그 무게가 다르다.

아침 일찍 밭에 나가 수확해 다듬고, 신문지로 싸서, 상자에 담아 택배를 보내기까지 엄마의 수고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상자를 싸면서 토마토, 오이가 자식들의 식탁에 올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잘 도착하기를 바랐을 거다.

7일 현관문 앞에는 묵직한 우체국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가르자, 열흘 전 다녀온 밭의 정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 줄기에 달려있던 흔적과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못생겼지만 탱글탱글한 토마토와 가시가 그대로 살아있는 오이, 투박한 손으로 깔끔하게 다듬은 대파, 흙 내음을 담은 상추들까지, 신문지에 겹겹이 싸여 상자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가 보낸 택배상자(1) 상자안에는 토마토,오이,대파,상추,고추들이 겹겹이 누워있다.
엄마가 보낸 택배상자(1)상자안에는 토마토,오이,대파,상추,고추들이 겹겹이 누워있다. ⓒ 김희
엄마가 보낸 택배상자(2) 상자안에는 토마토,오이,대파,고추가 종류별로 겹겹이 들어있다.
엄마가 보낸 택배상자(2)상자안에는 토마토,오이,대파,고추가 종류별로 겹겹이 들어있다. ⓒ 김희

얼마 전 고추밭에서 대파 모종을 심으며 엄마가 말했던 '동반식물', 어쩌면 엄마에게 자식들은 평생을 정성으로 가꾸고 보듬어야 하는 동반식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밭으로 갈 때는 늘 무릎과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나가면서도, 그저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고 생각만으로도 즐겁다는 팔순의 엄마.

"엄마가 보낸 보물 상자가 도착했다. 각자 가지러 오셔."

동생들과 모여있는 단톡방에 상자 사진을 찍어 올렸다. 엄마의 오랜 소원이던 놀이터 밭에서 보내온 채소들로 우리 오 남매의 올여름 식탁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풍성할 것이다.

'엄마, 보내준 귀한 선물, 동생들과 잘 나눠 먹을게. 그러니 아프지 말고, 우리 곁에 오래오래 든든한 동반 식물로 계셔주셔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밭농사#엄마#자식#엄마마음#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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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noheene) 내방

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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