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자기방어 훈련을 기획, 진행하는 바운더리스쿨 삐삐의 신율 활동가 ⓒ 신율 제공
어릴 적 일본의 실용서를 번역한 호신술 교본이 유행했었다. 어디가 상대방의 급소인지, 갑자기 누군가 끌어안거나 손목을 붙잡았을 때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그림으로 설명한 책이었다. 나한테 이런 상황이 생기면 기억해뒀다 써먹어야겠다 싶었다.
이후에도 호신술은 자기방어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려나왔다.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언니네트워크에서였다. 페미니즘을 접목한 자기방어는 신체 훈련이기도 했지만, 일상 훈련이기도 했다. '오지 마세요', '그만하세요' 등의 말로 위험 상황이 시작되기 전에 상황을 내가 통제하는 경험이자, 머리로 아는 것과 다르게 몸으로 기억하는 경험이었다. 한 번이라도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이 좋은 걸 몰랐다니.
바운더리스쿨 삐삐는 '이 좋은' 자기방어 훈련을 위해 설립한 단체다. 여성과 소수자에게 강요하는 성역할에 저항하며 안전과 경계를 심리적, 언어적, 신체적으로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삐삐의 신율을 만난 건 그가 2박 3일 일정의 자기방어 훈련 캠프와 연이은 강의를 마친 직후였다. 신율과 나눈 페미니즘, 자기방어,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삶 이야기.
자기 방어 : 경계를 설정하라!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제주에서 살고 있고요. 제주여민회에서 성평등 교육을 하고, 동료들과 같이 바운더리스쿨 삐삐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어요."
- 2007년에 처음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을 접하게 됐다고요. 어떤 프로그램이었어요?
"언니네트워크 페미니즘 캠프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를 만났어요. 10대 청소년을 위한 자기방어 프로그램을 하는데, 기획단으로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죠. 당시 20대 초반이었고, 재미있어 보이면 무조건 할 때였으니까 얼른 승낙했죠. 10대 소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성별 고정관념에 맞는 움직임이 아닌 것들을 해보는 시간이었어요. 담력을 키운다면서 3M 다이빙 풀에서 떨어져보는 시간도 있었고, 야밤에 산에 오르기도 하고요. 한참 브레이크 댄스가 세상을 휩쓸었을 때여서 여성 브레이크 댄서에게 춤을 배우기도 했어요."
-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 자기방어를 접했나요?
"그 경험이 너무 좋았는데 끝나는 게 아쉬운 거예요.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한 친구와 여성 태권도 연맹 사범님들에게 연락해서 시즌 3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어요. 그때는 세상에 재미있는 게 별로 없던 시절이라, 16주짜리 프로그램도 사람들이 하러 모이더라고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는 완전히 놓고 있다가, 귀촌한 친구에게서 지방의 젊은 여성 청년들이 자기방어 훈련을 너무 하고 싶어하는데 와서 가르쳐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예산도 없고 할 사람도 없다면 그냥 내가 가서 하자 싶어서 갔는데 하다 보니까 또 너무 재밌어요. 이걸 전문 강사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배우다가 샌프란시스코에도 간 거죠."
- 샌프란시스코 임팩트 베이에어리어(IMPACT Bay Area.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개인 안전, 경계 설정, 호신술 등을 가르친다) 프로그램이었죠. 거기서 바운더리라는 개념을 배워왔는데, 지금 삐삐의 활동에 기초가 된 것 같아요.
"맞아요. 그전에도 기존 성별 고정관념과 다른 물리적 대응, 말이나 기세는 훈련했지만, 경계라는 개념으로는 자기방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가서는 신체 훈련을 더 하고 싶어었는데 자꾸 경계를 설정하라('set the boundary')는 주문이 오는 거예요. 신체 훈련 중간에도 펜 빌려달라는데 거절하기, 차 빌려달라는 요청에 거절하기 같은 종류의 훈련을 계속하고요. 그때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는데, 이후에 같이 프로그램을 들은 동기끼리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나중에야 바운더리의 개념을 이해한 것 같아요. 그 개념을 더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살아남기

▲자기방어 훈련을 기획, 진행하는 바운더리스쿨 삐삐의 신율 활동가 ⓒ 신율 제공
- 저하고는 구면이죠. 대학 총여학생회에서 만난 사이예요. 제게 언니네트워크를 소개해 준 사람이기도 하고요.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도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었어요?
"몰랐어요. 여성주의가 뭔지 몰랐고, 저는 늘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다른 반에 가서 이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공연을 하느라 바쁜 학생이었어요."
- 총여학생회에서 만난 사람끼리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하죠, 잘 지내다가 대학에 와서 나쁜 친구들을 만났다(웃음).
"그러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을 만나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예를 들면 대학 남자 선배들과 갈등이 많았잖아요. 인정받고 싶기도 한데 그들과 계속 갈등이 생기고, 그때는 페미니즘의 언어가 없었으니까 그냥 남자가 '꺼드럭댄다'고만 생각하고.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겪는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나 관점이 없는 채로 계속 대학 시절을 혼란스럽게 보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세상을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보고, 그러면서 세상의 싫은 점이 더 많이 보이고, 학내 성폭력 사건도 친구들이 저한테만 와서 말한다든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대학이 다 폭력으로 점철된 공간으로 느껴지고. 원래 밝고 웃긴 걸 좋아하는 기질인데 그런 것들을 잘 다루지 못해서 상태가 안 좋기도 했어요."
- 대학 졸업 당시 여성주의 활동을 주업으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전혀 못 했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2011년에 졸업했거든요. 학내에서 여성주의 총여가 11년 만에 기독교 계열의 비운동권 선본으로 교체된 해였죠. 페미니즘이 환대받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학교 다니는 내내 총여학생회 폐지를 시도하는 움직임을 겪었어요. 페미니즘으로 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시대적으로 못 했던 것 같아요. 저보다 두세 학번 위 사람들은 또 감각이 달랐어요. '성폭력 교수/형에 처하라' 이런 티셔츠를 입고 교내를 활보하는(웃음) 그런 캠페인을 했었던 사람들이니까 기세가 좋았죠.
그런데 그 시절은 제 시절이 아니었던 거예요. 매일 같이 노는, 좋아하는 언니들은 그런 걸 만들어냈던 사람들인데, 저는 우울하고 학교에서 되게 한 줌이고, 유의미한 걸 못 만들어낸다는 자괴감이 있었어요. 유일한 롤 모델은 성폭력 상담소의 활동가였는데, 그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니 많은 야근과 주말 근무와... 나는 저건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청 똑똑하게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도 못 하겠고. 활동가를 못 한다면 여성주의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직장을 몇 년 다녔죠?
"3년 정도 일반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뒀어요. 조직 문화에 대한 분노도 있고 신체적으로 병도 있었고요. 아픈 다음에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어요. 페미니스트로서 활동을 못 한다는 자괴감이 아니라 그냥 이 사회에서 내가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반성매매인권활동 이룸에서 2년 조금 넘게 일하고, 공무원 시험도 준비해 보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기간도 있었고요."
- 그러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왔어요.
"너무 어리둥절했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고? 실제로 많은 여성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여긴다고? 이게 무슨 천지가 개벽할 일인가(웃음)."
- 그 뒤에 자기방어 훈련 제안도 들어오고, 다시 활동하는 계기가 됐군요.
"네, 성평등 교육과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 자리가 미투운동 이후에 많이 생기기도 했고요. 페미니즘 리부트 덕분에 저도 이 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근근이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말 꼭 넣어주세요, 근근이(웃음)."
-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제주로 이주했어요.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죠.
"좌절이 컸죠. 연고가 없는 곳으로 오니까 생계 곤란이 있었고, 처음에는 왜 내려왔을까 후회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제주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선배 이주자이자 문화기획자이자 페미니스트들을 만나서 긍정적으로 상황을 돌아보게 됐죠. 서울에 있을 때는 제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훨씬 더 많이 의식했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의 상은 되게 똑똑하고, 담론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최저치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어쨌든 페미니스트라고 하는데 실수할까 봐 두려운 감각. 어떤 건지 알죠? 그러다가 제주에 오니까, 갑자기 아무개가 된 거예요. 나를 알던 사람이 아무도 없어."
- 서울이 사람을 다그치는 면이 있어요.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떠나서 안정감을 찾고 다시 돌아보니 평판 사회에서 벗어난 경험이 정신적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더라고요. 서울에서는 강의를 열면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가 꼭 한 명씩은 수업에 들어왔거든요. 약간의 긴장을 유발하는 요소였는데, '쪼'대로 해보고, 프로그램도 그냥 만들어보고. 나를 모르는 곳에서 프로그램을 해본 경험이 돌이켜 보면 저에게 필요했어요."
삐삐의 시작

▲자기방어 훈련을 기획, 진행하는 바운더리스쿨 삐삐의 신율 활동가 ⓒ 신율 제공
- 나랑과 나기, 신율. 언니네트워크 회원 셋이서 '그건 선 넘은 거야' 독서 모임을 하는 걸 몇 번 봤어요. 처음에는 독서 모임인 줄 알았는데, 셋이 뚝딱뚝딱하더니 갑자기 단체를 차렸더라고요?
"사람들한테 배운 걸 알려주는 걸 좋아해서 강사 활동을 하는 건데, 저는 이걸 더 확산시키는 부분에서는 실행력이 없었어요. 그런데 나랑이 작년에 자기방어 프로그램을 듣고는 자기가 생각했던 자기방어와는 완전히 다르다, 다른 사람에게도 더 확산시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단체를 만들자! 이런 건 전혀 아니었고, 고민을 같이 심화시킬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언니네트워크에서 자기방어 운동을 자기 주제로 가져갔던 나기한테 제안했는데 덥석 문 거죠. 셋 다 어쨌든 기획을 해왔던 사람들이라 세미나를 하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단체를 만들게 됐어요. 진짜 뚝딱뚝딱이었죠."
- 그렇죠. 아무래도 활동가들 셋이 모이면... 조합이 문제가 있다(웃음). 삐삐를 만들고 수업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요. 시작하면서 청사진이 있었나요?
"자발적으로 신청한 사람들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컸어요. 지금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고용노동부에서 하는 프로그램의 구직 청년 집단, 아니면 학교 학생, 청년 집단, 신청해서 온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냥 와서 듣는 사람들이거든요. 그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페미니스트들이랑도 해보고 싶고, 자발적으로 신청한 여성들하고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누가 그렇게 모아놓고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면 내가 열겠다는 거였죠."
- 요즘 자주 하는 고민이 있다면 뭔가요?
"삐삐를 만들고 서울에서 너무 좋은 제안들이 와요. 너무 매력적이고 내가 만나고 싶었던 집단으로 구성된 장기 회차의 강의, 강의료도 높고요. 그런데 저는 지금 제주에 있어요. 그럼 이제 삶을 어떻게 꾸려갈 건가, 매주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인가? 그런 고민이 있어요.
최근에 삐삐 깃발을 만들면서 무지개 깃발로 하자고 했거든요. 내가 생각한 무지개 깃발은 6색 무지개가 끝이었는데, 프로그레스 깃발이 나왔다는 거야? 서울에 있을 때는 일상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같이 싸우면서 아는 건데. 이렇게 정보가 다르니까, 안 쫓아가도 된다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울에 가면 다시 담론을 따라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있어요."
- 이제까지 뭐 하며 사냐에 대해 자세히 계획을 세우셨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가 봐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 있나 싶어요."
- 계획을 짠다고 그렇게 되지도 않잖아요.
"맞아요. 어떻게든 또 살았고."
- 인생의 비전이 있나요? 신율이 되고 싶어 하는 상은 뭐예요?
"친구들이랑 잘 지내는 사람. 저는 이 목표에서도 바운더리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바운더리 관점이 정말 많이 도움 됐거든요. 예전보다 삶이 가뿐하다고 느끼고요. 내가 관계 맺고 싶은 동료들, 친구들과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자기 검열을 심하게, 가혹하게 했었다면 페미니즘과의 관계에서도 경계 설정을 잘하려고 하게 된 것도 있어요. 지금 하는 일이 나 자신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이 될 것 같아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정의정(왼쪽), 신율(오른쪽) ⓒ 정의정
인터뷰어 : 정의정
여성주의 문화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의 오랜 회원. 낮에는 밥을 벌고 저녁에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겨울이면 새 모이를 준다.

▲세상의 변화에는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공익활동가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국 단위의 행사입니다. 2026년에는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를 응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대의 장이 열렸습니다. ⓒ 공익활동가주간추진위원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홈페이지,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