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 chandan_siddu on Unsplash
불과 5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를 포함한 지구촌은 과잉 노동을 경계하고 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였다. 2017년 무렵 등장한 '워라밸'을 시작으로 욜로와 소확행이 뒤를 이었고, 초저금리와 자산 폭등이 겹친 2020년 초반에는 청년들 사이에서 '파이어족'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몇 년 전 갓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필자의 아들도 그 무렵 "젊을 때 좀 고되게 일해 벌고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도 싶어요"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2026년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AI 시대가 도래하며 전문가들은 앞다투어 '노동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먼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필자의 가정만 봐도 그렇다. 첫째는 AI 등장 직전, 취업 시장이 가장 뜨거웠을 때 취업에 성공했지만, 둘째는 원하던 대학과 학과에 합격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AI가 불러 온 취업난 앞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졸업을 미루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은 성스러운가
이쯤에서 '노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먹고사는 노동은 필자에게도 늘 불편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노동 즉, 일하는 행위는 부정보다는 긍정, 때로는 '성스러운 것'에 가까웠다. 물론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대인의 노동이 여전히 과하다는 데는 관련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어쩌면 필자 역시 과잉 노동의 당사자였다. 회사원 시절엔 주 6일제가 당연했고, 주 5일제가 막 자리 잡을 무렵 자영업자가 되면서 그마저도 누리지 못했다. 자영업을 접고 다시 직장인이 된 지금도 주말엔 '투잡러'로 일을 이어가니, 35년 경제활동 중 온전한 주 5일을 누린 해는 한 손에 꼽는다.
언젠가부터 주말 부업 때 짬짬이 이어폰으로 교양과 시사 오디오를 듣는다. 자영업 시절 가게에 갇혀 시사와 뉴스에서 멀어졌던 경험 탓에 생긴, 일종의 뒤늦은 벌충인 셈이다. 그렇게 몇 해 전 알게 된 문장 하나가 인상 깊었다.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뜻의 19세기 독일 소설의 제목으로, '정직한 노동이 인간의 내면을 구원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라고 한다(훗날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 강제수용소 정문에 새겨져 역사상 가장 악랄한 기만의 표어로 변질되었다). 이 문구는 1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의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Republic) 시절, 국가적 정책 슬로건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노동'에 대한 찬미는 이뿐만이 아니다. 톨스토이는 "육체노동은 인간의 의무이자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했고, 동서양의 격언 또한 대부분 노동을 미덕으로 그린다.
그런데 이런 미화가 지나쳤다고 느꼈을까. 언젠가부터 반대의 목소리도 들렸다.
'근로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이 파격적인 주장은, '근로의 미덕과 의무'라는 개념이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효율적으로 부려 먹기 위해 고안한 가짜 도덕이라는 시각에서 나왔다. 심지어 종교계가 경계해온 '나태'조차, 지배 계급이 교리를 이용해 노동자를 통제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한 장치였다는 학설이 사회학과 역사학 일각에서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처럼 인간 사회를 지탱해온 가장 아름다운 덕목인 '노동'은 여전히 각광받는 철학이면서도, 어느새 의문의 대상이 되었다.
과잉자본, 그리고 노동의 종말
2026년 지금, 우리 사회에는 서로 어색한 두 화두가 공존한다. '과잉자본'과 '노동의 종말'이다.
2025년 6월 코스피 지수는 3000을 돌파했다. 재테크에 어두운 필자가 찾아보니, 당시 코스피 3000은 "한국 증시가 구조적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는 상징이자 "언젠가는 가지만 쉽게는 못 간다"던 오랜 통념을 깬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026년 7월 현재, 지수는 그때의 두세 배인 9000 을 오르내리고 있다.
유발 하라리, 마이클 샌델(공정하다는 착각), 알랭 드 보통(불안) 같은 지식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 풍요의 시대, '과잉자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넘치는 돈의 풍요를 만끽하고 있는가. 신기하게도 행복보다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필자 또한 다르지 않다.
포모(FOMO)의 등장

▲포모(FOMO)뜨거운 주식 시장에 불안해 하는 우리들 ⓒ 권성훈
주식에 무지했던 필자도 이제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는 말을 안다. 중요한 기회나 흐름에서 나만 빠질까 봐 느끼는 불안을 뜻하는 이 신조어는, 뜨겁게 달아오른 주식 시장에서 나만 소외될까 불안해하는 심리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역대급 풍요'의 시대를 살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우울한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묘한 우울감을 보이던 아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울하지 않을 수가 없어. 오십 후반에 여전히 힘들게 일하고, 하루 쉬는 것도 눈치 보이는데, 누구는 주식으로 앉아서 돈 벌어 유럽 여행 갔다 왔대, 차도 바꾸고."
풍요의 시대에 '노동의 종말'이 거론되고 '포모'라는 말이 등장하며,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묘한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 연재를 기획하며 몇 사람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제법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다. 오로지 '정직한 노동'으로, 때로는 남들 보기에 가혹할 만큼 가족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노동 현장에 갈아 넣어온 이들이 전하는, '돈이 돈을 버는' 지금 이 시대에 '노동의 종말'이 거론되는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노동의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음 회차부터 전해 드리고자 한다.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