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초여름 활짝 핀 무궁화
초여름 활짝 핀 무궁화 ⓒ 이완우

지난 6일, 임실 옥정호 붕어섬에서 멀지 않은 신덕면의 산골 농장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초여름의 햇살을 머금은 분홍색 무궁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임실 지역에는 '구구새가 울면 비가 오고, 뻐꾸기가 울면 날씨가 좋다'는 전언(傳言)이 있다. 아침부터 뻐꾸기 소리가 들려서인지, 날씨가 좋았다.

산골 농장에서 백봉오골계의 생태를 2시간 정도 관찰하려고, 산골 농장의 김금산(67세, 임실 신덕면)씨에게 허락을 받아두었다(관련 기사 : '월든 호숫가'가 이랬을까, 자연이 주는 대로 거두는 곳).

산골 농장 블루베리 밭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백봉오골계 이완우
 산골 농장 블루베리 밭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백봉오골계
산골 농장 블루베리 밭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백봉오골계 ⓒ 이완우

김금산씨는 멀리서 다른 일을 하고, 기자는 백봉오골계 닭들이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블루베리 밭으로 갔다. 닭들이 처음에는 경계하고 피하더니, 이내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AD
백봉오골계는 일반 닭보다 온순하고 호기심이 많다고 한다. 닭들이 밭 고랑과 이랑에서 '땅질(흙질)'을 한다. 발로 땅의 흙을 뒤로 차면서 파헤쳐서, 지렁이나 먹이를 찾고 다닌다. 날개를 활짝 펴고 홰를 치기도 한다. 지난 밤에 내린 비로 밭 고랑에 고인 물을 부리로 한 모금 마신 뒤 하늘을 쳐다보는 '물질'을 하기도 했다.

블루베리 밭에 80마리 방사하는 닭 무리가 암탉이 70마리, 수탉이 10마리 정도 되었다. 유기물이 풍부한 블루베리 밭에서 먹이가 풍부하니, 닭들은 먹이 경쟁이 필요하지 않은 듯하였다.

닭들의 서열 경쟁이나 먹이다툼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단지 수탉이 자기가 마음에 두는 암탉을 다른 수탉이 관심 보이거나 함께 있으면, 다가가서 벼슬를 쪼아서 쫓아냈다. 좁은 공간에서의 '생존을 위한 투쟁'인 경쟁이나 다툼은 볼 수 없었고, 이곳 수탉들의 가끔 벌이는 다툼인 '사랑을 위한 싱거운 소동'이 평온한 생태계의 가벼운 출렁거림이었다.

 산골 농장 블루베리 밭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백봉오골계
산골 농장 블루베리 밭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백봉오골계 ⓒ 이완우
산골 농장 블루베리 밭. "꼬오? 끼이요오?!", 백봉오골계 수컷이 가끔 힘차게 계명성(鷄鳴聲, 닭 우는 소리)을 펼쳤다. 이완우

이곳 산골 농장에서는 방사하는 닭들의 사료값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한다. 방앗간에서 벼에서 왕겨를 벗기고 현미를 도정할 때 나오는 쌀겨인 미강(米糠)을 구해와서 깻묵 가루와 함께 이삼 일에 한 번씩 간식을 준다고 한다. 예로부터 농가에서는 "미강은 닭의 살을 찌우고, 깻묵은 털을 곱게 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곳 농장 닭들은 하루 종일 스스로 활동해서 지렁이와 풀씨 등 풍부한 주식(主食)을 찾았다.

늠름한 수탉이 닭 무리 가운데를 거닐다가 가끔 깃털을 한껏 세우고 목을 길게 빼며 부리를 들어 올렸다. "꼬오— 끼이요오—!" 힘차게 계명성(鷄鳴聲, 닭 우는 소리)을 펼치는 모습이 블루베리 밭의 평화와 여유를 확인하는 듯하였다.

김금산씨는 "어미 닭이 품어서 부화한 병아리는 데리고 다니며 발로 밭을 후벼파서 지렁이를 잡아내어 병아리가 쉽게 먹게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인공부화한 병아리는 처음에 세상에 나와서 먹이를 찾을 수 없고 어쩔 줄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차츰 다른 닭들이 먹이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게 된다. 닭들도 멘토와 환경이 중요하다고 게 산골 농부의 지론이었다.

 산골 농장의 장독대, 대나무가 장독 사이에 솟아올랐다. 대숲과 장독대의 공존이었다.
산골 농장의 장독대, 대나무가 장독 사이에 솟아올랐다. 대숲과 장독대의 공존이었다. ⓒ 이완우
 농장의 잔디밭으로 차차 다가오는 닭들의 무리
농장의 잔디밭으로 차차 다가오는 닭들의 무리 ⓒ 이완우

블루베리 밭 가까이에 정갈한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 사이에 대나무가 솟아 푸른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대나무의 반듯한 직선과 장독대의 둥근 곡선이 조화롭게 공존하였고, 장독대는 자연의 숨결을 머금고 있는 청정한 저장소였다.

김금산씨는 닭들이 클래식 음악이 흐를 때면 평소보다 차분해지거나, 특히 '백조의 호수'가 나올 때면 주변을 맴돌며 몰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귀띔했다. 그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며, 음악의 치유력이 종의 경계를 넘어 전달되는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

 산골 농장에서 하루 머물고 간 인연, 어느 분이 높은 나뭇가지를 횃대 삼아 잠을 자고 아침에 깨어나는 닭 무리를 보고 그린 일러스트. 산골 농장의 ‘치유의 숲’이 작은 액자에 이 그림으로 담겨 있었다.
산골 농장에서 하루 머물고 간 인연, 어느 분이 높은 나뭇가지를 횃대 삼아 잠을 자고 아침에 깨어나는 닭 무리를 보고 그린 일러스트. 산골 농장의 ‘치유의 숲’이 작은 액자에 이 그림으로 담겨 있었다. ⓒ 이완우
 정성스럽게 달걀 포장하는 산골 농부 김금산씨
정성스럽게 달걀 포장하는 산골 농부 김금산씨 ⓒ 이완우

산골 농장의 거실 탁자에서 찔레잎과 생강나무 차를 마셨다. 찔레잎(찔레순)과 생강나무는 시골 농가에서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천연차의 재료였다. 은은한 생강 향이 나면서 뒷맛이 깔끔했다.

4년 전 여름, 친구들과 이곳 산골 농장을 방문한 수원에 사는 40대 여성이 있었다. 이 농장의 황토방에서 휴식하면서, 저녁에 닭들이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서 밤을 지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농장에서는 반복되는 일상의 풍경이 도시인에게 색다른 풍경이었다. 그녀가 그린 일러스트 작은 그림은 액자에 담겨 거실에 머물렀다. 기자는 이 일러스트 그림을 '치유의 숲'이라고 제목을 붙여 보았다. 이 농장을 방문하는 이에게 치유는 스스로의 몫이었고, 농장은 언제나 무심하게 평온하였다.

산기슭 숲과 블루베리 밭에서 자유롭게 사는 이 농장의 백봉오골계는 활동량이 많아 산란 암탉이 사흘에 하나 정도 알을 낳는다고 한다. 농장에서 하루에 30개 안팎의 알을 얻어서, 도시의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면 소재지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보낸다.

김금산 씨가 백봉오골계 달걀을 하나씩 손가락 끝으로 살살 두드렸다. 달걀에서 전해지는 손가락 끝의 촉감과 소리로서 신선함을 측정한다고 한다. 아니다 싶은 달걀은 골라냈다. 신선한 달걀을 15개를 작은 골판지 달걀판에 하나씩 올리고, 냅킨 종이로 골판지와 달걀 사이 틈을 메워서 흔들리지 않게 하였다.

이날 다섯 판의 달걀 꾸러미를 포장하였다. 오후에 면 소재지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지인에게 부친다고 한다.

 초여름 산딸기 관목
초여름 산딸기 관목 ⓒ 이완우

피아노 건반을 다루듯 정성스레 달걀을 포장하던 모습을 뒤로하고, 농장을 내려와 옥정호 붕어섬으로 향했다. 산기슭 어귀, 탐스럽게 익어가는 초여름 산딸기 관목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농장을 다시 돌아보았다.

가을볕이 청명한 날, 다시 이곳을 찾아 작은 텐트 하나 치고 1박 2일의 머무름을 청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높은 나뭇가지에 횃대처럼 올라앉은 닭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깊은 밤 자리를 지키는 '불침번 닭'의 존재를 확인해 보고 싶다. 산골 농부를 따라 가을 숲에서 다채로운 버섯을 찾아보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옥정호의 바람과 햇살을 머금은 산딸기들은 자연의 속도에 맞춰 저마다의 짙고 붉은 빛깔로 영글어가고 있었다.

#산골농부김금삼#백봉오골계#백조의호수#치유의숲#찔레잎생강나무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산골 농부의 사계절

역사 문화 관광 분야의 가치를 찾아 보도합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