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30일, 청소년 예술진로 체험 프로그램 '대학로 꿈잼학교'가 열렸다. ⓒ 이규승
"그냥 연기한 건데... 이상하게 마음이 계속 뛰었어요."
지난 6월 30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소년 예술진로 체험 프로그램 '대학로 꿈잼학교'의 나도 배우'에 참여한 한 학생이 수업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무대 위에서 대사를 길게 외운 것도, 여러 날에 걸쳐 공연을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낯선 상황 안으로 직접 들어가 상대 배우의 눈을 바라보고 자신의 말로 반응한 경험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몸에 남았다. 학생의 두근거림은 연극을 '본 것'과 연극을 '겪은 것' 사이의 차이를 보여준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배우를 경험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었습니다."

▲대학로 꿈잼학교 '나도 배우'를 진행한 플레이그룹 댐잼의 유은지 대표 ⓒ 이규승
플레이그룹 잼잼 유은지 대표는 '대학로 꿈잼학교'의 수업을 준비하며 내세운 목표다. 그는 수업을 통해 대사를 능숙하게 외우고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대신, 학생들이 낯선 상황 안으로 들어가 직접 보고 듣고 반응하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것은 배우라는 직업을 설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험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그가 청소년들에게 전하려는 배우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조금 다르다. 배우는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눈앞에서 처음 벌어진 것처럼 상황을 받아들이고, 상대가 건네는 말과 행동에 정직하게 반응하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이다.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준비한 표현을 꺼내놓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에 가깝다.
'나도 배우'는 정해진 대사를 나눠주고 발표를 연습시키는 일반적인 연극 수업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학생들은 객석에 앉아 배우의 연기를 바라보는 대신 직접 장면 안으로 들어간다. 걷고, 서고, 숨을 쉬며 자신의 몸을 관찰하다가 어느 순간 학교폭력 사건이 벌어진 교실의 같은 반 친구가 된다. 관객으로 시작한 학생은 사건을 지켜본 목격자를 거쳐 자신의 말과 행동을 선택하는 당사자로 바뀐다.
수업의 중심에는 플레이그룹 잼잼의 연극 〈민석이의 두 번째〉가 놓여 있다. 작품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을 다루지만, 그가 더 오래 바라본 사람들은 사건 곁에 있던 친구들이다.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나는 상관없지", "내 일이 아니니까"라며 물러나 있었던 사람들이다. '나도 배우'의 120분은 그 무심한 거리를 청소년 스스로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이다.
대사를 외우기 전에 걷고, 서고, 숨을 쉰다

▲현장 수업 장면 ⓒ 이규승
수업은 화려한 감정 연기나 즉흥극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주어지는 과제는 바르게 걷고, 멈춰 서고, 의자에 앉는 일이다. 배우 훈련이라고 하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일상의 동작들이 수업의 출발점이다. 그는 이 기본적인 움직임에서부터 배우의 경험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평소 어떻게 걷고 서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걸을 때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지, 가만히 있을 때 한쪽 다리에만 체중을 싣는지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학생들은 너무 익숙해 의식하지 않았던 동작을 천천히 반복하며 자신의 몸을 처음 보듯 살핀다. 몸의 습관을 발견하는 일은 곧 자신을 새롭게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
"학생들은 배우가 훈련을 시작하면 극적인 상황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부터 배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서 있는 것, 걷는 것, 물건을 집는 것, 호흡하는 것, 자신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배우 훈련이 새로운 기술을 몸에 덧붙이는 일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행동을 다시 배우고 인식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배우가 특정한 인물을 연기하기 전에 배우는 것 가운데 하나가 '중립'이다. 아직 어떤 캐릭터도 입지 않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그렇다고 힘을 완전히 뺀 채 편안하게 늘어져 있는 상태는 아니다. 언제든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즉시 반응할 수 있도록 몸과 감각을 열어놓은 준비의 자세에 가깝다.
"중립은 어떤 캐릭터성도 입혀지지 않은, 어쩌면 무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비움의 상태가 마냥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를 발끝으로 서기 위해 발가락과 종아리에 미세한 힘을 주는 순간에 비유했다. 겉으로는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몸 안에서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긴장이 이어진다. 비어 있으면서도 준비돼 있고, 고요하지만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상태다.
소리 훈련도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발음을 정확하게 고치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호흡과 침묵,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한숨부터 들어본다.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입으로 대답하기 전 몸과 호흡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핀다. 말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기 전에 이미 몸이 보내고 있던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신의 자세와 호흡을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은 익숙한 사람과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일로 이어진다. 그는 배우 훈련이 자신과 타인을 낯설고 세심하게 바라보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강조했다. 연기의 출발점이 표현 능력보다 자기 인식에 놓여 있는 셈이다.
객석이 사라진 자리, 학생은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현장 수업 장면 ⓒ 이규승
'나도 배우'가 진행되는 대학로예술극장의 스튜디오 하늘은 연습실과 공연장의 기능을 함께 갖춘 공간이다. 댄스플로어와 조명, 음향설비가 마련돼 있고 빛을 완전히 차단해 암전을 만들 수도 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걸으며 몸을 훈련하던 공간은 조명 하나와 배우의 움직임만으로 순식간에 무대가 된다. 조금 전까지 수업이 진행되던 장소가 민석이가 생활하던 학교와 교실로 바뀌는 순간이다.
공간이 달라지자 학생들의 위치도 달라진다. 안전한 거리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던 관객은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무엇인가를 보고 들었던 같은 반 친구가 된다.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의 눈빛과 호흡을 마주하고, 자신의 말과 몸짓이 다른 사람의 반응을 불러오는 순간을 경험한다. 장면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학생들의 몸이 실제로 놓이는 사건이 된다.
"보는 것이 하나의 감각이라면 몸으로 겪는 것은 감각 전체를 사용한 것이라고 봅니다."
공간의 어둠과 조명, 배우의 숨소리, 가까이서 오가는 시선과 침묵은 학생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 안에서는 무심히 던진 한마디와 사소한 움직임에도 이전과 다른 무게가 실린다. 연극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감각 전체로 겪게 되는 것이다.
〈민석이의 두 번째〉에는 민석이의 일기와 교사의 등장, 교육청 장면, 학생들의 말과 쪽지, 인물들의 갈등이 이어진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누가 옳고 그른지, 학생들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작품이 마련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고 무슨 말을 던지는지를 스스로 발견하게 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답보다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간이다.
"어떻게 바라봤으면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그 자체의 시간을 만들어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생각 없이 던진 말과 행동들이 어떠했는지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학생들은 민석이에게 각자 쓴 말을 건넨다. 누군가는 민석이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누군가는 무심하게 반응하며, 불편한 상황을 말장난으로 넘기려는 학생도 있다. 서로 다른 반응 자체가 이 수업이 던지는 질문이 된다.
작품 속에도 모든 책임을 떠안을 선명한 악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분명 가해 행동을 한 학생은 있지만, 그 학생이 전학을 간 뒤에도 민석이를 둘러싼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프로그램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름표에 머물지 않고 사건을 함께 지켜본 사람들의 책임을 질문한다. 곁에 있던 친구들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외면했으며,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괴롭힘이라는 갈등 상황에서 혹시 우리가 '나는 상관없지, 내 일이 아니니까' 하고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를 바랐습니다. 우리가 그 사건의 목격자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돌아봤으면 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지점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건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다수의 침묵이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묻는다.
관객을 참여시키는 연극에서 관객을 없애는 연극으로

▲교육이 이루어진 대학로예술극장의 모습 ⓒ 이규승
플레이그룹 잼잼은 관객이 공간을 이동하며 서사를 체험하는 이머시브 시어터 작업을 이어왔다. 그러나 그는 '나도 배우'가 기존의 이머시브 시어터와도 조금 다르다고 설명했다.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을 관객의 위치에 머물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은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서사의 일부가 된다.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대사로 말하고, 선택한 말과 행동에 따라 장면의 분위기와 인물의 관계를 바꾼다. 때로는 그 반응이 작품이 도달하는 결론에도 영향을 준다. 두 시간 안에 대본을 외우고 공연을 완성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문 배우가 준비한 장면과 조명, 음향을 활용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작품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학생들은 준비된 이야기의 빈자리를 채우며 '정말 배우가 되어봤다'는 감각을 얻는다.
수업을 이끄는 활동가들도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에 머물지 않는다. 배우로 학생들 앞에 서고, 학생을 함께 장면을 만드는 상대 배우로 대한다. 학생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기다린 뒤 배우로서 그 선택에 반응한다. 이 순간 배우라는 직업은 설명으로 배우는 대상이 아니라 상대와 호흡하며 경험하는 일이 된다.
수업 후반의 토론 역시 "학교폭력은 나쁘다"는 교훈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다. 작품 속 상황을 자신의 학교와 관계 안으로 가져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말과 행동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결국 자신과 자신의 학급을 돌아보는 것이겠죠.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것은 없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가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배우에 관한 지식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이다. 배우는 미래의 결과를 미리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는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긴 상황도 처음 만난 것처럼 받아들이고, 옆에 있는 사람의 말과 표정을 새롭게 바라본다. 그런 태도는 무대 위에서만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감각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배우를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 표현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은 매 순간 진실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학로 꿈잼학교의 두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은 다시 자신의 학교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내 일은 아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춰 선다면 연극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민석이의 같은 반 친구였다면 무엇을 보았고, 지금 우리 곁의 '민석이'에게는 어떤 두 번째 이야기가 필요할까.